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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의 시사소설] '군산 여성 실종사건'대통령에게도 보고 돼, 냉소적 반응 보여
  • 입력:2013.07.29 00:09
  • 수정:2013.07.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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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의 시사소설] '군산 여성 실종사건'대통령에게도 보고 돼, 냉소적 반응 보여 기사의 사진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세종 13년이었다. 형조에서 아뢰기를 “옥구현(지금의 전북 군산시) 수령 내아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하여 감히 아뢰옵니다. 옥구현청 내아(수령 사택)에서 나졸 정경사라는 자가 양반집 부인과 상피(相避·성관계)를 하다가 현감에게 들켜 도주했다 하옵니다. 하온데 그 부인은 군산만호(萬戶·해양경찰서 격)의 부인이라 하옵니다. 이들은 상피 후 하의만 급히 가린 채 줄행랑을 친 후, 역참 말을 빼앗아 도주했다는 장계가 올라와 있습니다.”

세종은 용포 아랫단을 올려 화(靴·신발)의 윗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종아리를 긁었다. 피부병에 시달렸던 세종은 조회 때마다 몸 이곳저곳을 긁느라 늘 어수선했지만 그럼에도 장계 내용을 놓치는 경우는 없었다.

“허, 그자들 몇 년이나 쳐 묵었소?”

형조판서 홍여방은 세종의 거침없는 말투를 아는지라 개의치 않고 말했다.

“년놈 모두 마흔이라고 합니다.”

“커, 마흔이라…거 참 재주 용하네. 판서, 판서께선 되시오? '그거' 말이오? 우리나이 망 50이면 이승의 삶이 다한 거나 마찬가진데 마흔이면 다 늙어 빠진 건데 겁도 없이 지 수령 침소인 내아에서 그 짓을 했단 말이오? 그것도 만호집 부인을? 그 나졸놈 거시기가 달라도 많이 다른 모양이오.”

오십 넘어 기력 쇠해진 홍여방은 얼굴이 붉어졌다. ‘망할, 내 아랫도리 사정은 어찌 그리 잘 안단 말인가’ 속으로 뜨끔했다.

경찰서 내실에서 성관계

세종은 화자(靴子) 속에서 검지를 빼더니 이번엔 코를 후벼댔다. 홍여방을 비롯한 신하들이 코 후비는 것을 두고 싫은 기색이 역력한 것을 알면서도 세종은 더 짓궂게 농을 쳤다.

“경들, 손가락으로 코를 파면 손가락이 시원하겠소, 콧구멍이 시원하겠소? 남자들 불쌍한 게지. 경들도 사내대장부로 태어났다고 너무 으스대지 마시오. 종국에는 콧구멍만 시원하오. 사내들은 애만 쓰다 죽는 게요. 그 만호 놈은 바보 됐겠소. 홍 판서, 그렇지 않소?”

“아…예 전하, 그 만호라는 자가 옛 군산진성(당시 군산 앞 바다 선유도에 있던 해양경찰서) 시절, 제 부인은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버려두었다 하옵니다. 그 자가 왜(倭) 밀항선을 적발하면 왜구 아녀자들만 살려주고 나머진 도륙을 냈사온데, 그 왜구녀 가운데서도 얼굴 반반한 것들은 제 첩을 삼았다 하옵니다.”

세종은 흥미진진할 얼굴이 됐다가 얘기를 끊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세종은 14명의 여인에게서 18남 7녀를 둔 호색가였다. 후궁만 아홉 명이었다. 어느 날엔가 장남 양녕대군이 시강(侍講)을 소홀히 듣고, 여색만 밝힌다고 나무랐는데 양녕이 세종에게 대들며 말했다.

“저도 이제 성인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 제가 겨우 첩 몇을 둔 것 가지고 책망하신다면 억울하옵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세종은 자녀들의 여색 문제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왜녀라…그것들이 풍속이 기이하여 뭇사내들에게 마구 대들어 살보시 한다 들었다. 맞는 게냐? 그 만호라는 자에게는 오죽했겠느냐? 나졸과 상피한 만호의 부인도 심정은 이해가 간다.”

맨 앞자리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영의정 황희가 쿨럭쿨럭 헛기침을 해댔다. 그만 하시라는 손사래나 다름없었다.

이씨 부인, 해양경찰서장 남편 임기연장 위해…



세종은 정좌하더니 명했다.

“형조판서는 옥구현감과 군산진 만호를 파직토록 하시오. 전라관찰사도 엄중 문책하시오. 왜구가 옥구를 거쳐 중부 내륙까지 들어와 노략질을 해대던 것이 태조 때의 일인데 그 관문이었던 옥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소. 더구나 옥구현과 인근 태인, 임피, 흥덕, 정읍현 나졸 500여명이 동원돼 나졸이 나졸을 잡는 해괴한 일이 어찌 벌어질 수 있소? 왜구로 인해 서남해안 일대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들었소. 게다가 명 화적(중국 해적)이 우리 바다를 노략질해 그들에게 우리 수군이 피살됐다는 장계를 본지가 엊그제요. 만호에서 나졸에 이르기까지 기강이 무너져 그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 아니오. 단순 상피사건이 아니니 정확히 파악하여 조치토록 하시오.”

세종은 명군이었다. 농지거리를 하면서도 뼈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남편 좌천 막으려 돈 궤짝 싸들고 경찰청 방문

그 시각. 전주성내 전라관찰사 홍전북은 관내 나장, 역졸, 사령 심지어 봉군(봉화대를 관리하는 경찰)까지 총 동원해 정경사를 쫓고 있었다. 그는 군산진 만호의 처 이씨 부인으로부터 청탁을 받은바 있었다. 그 여인은 남편이 선유도 섬 아낙과 별선(別船)에서 행음을 하고, 왜녀들과 선상 난교를 벌일 때도 제 남편 감싸며 돈 궤짝을 싣고 와 만호 임기 연장을 청탁했었다.

홍전북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큰 일 날 뻔 하지 않았는가. 그 여자, 우수 띤 얼굴로 주안상 대접한다 했을 때 거절하길 백번 잘했지…내 불쌍하다 하여 텁석 물었다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빠질 뻔 하지 않았는가? 만호 그놈 당해도 싸다만, 부하 잘못 만나 또 좌천 되게 생기지 않았나. 정경사 이 놈부터 당장 잡아 들여 주리를 틀어야 할 텐데…년놈이 그리 좋아 지냈으면 어디서 복상사라도 해버렸으면 어찌 찾누.”

관찰사의 예측은 정확했다. 정경사와 이씨 부인이 옥구현청 동헌 내실에서 정사를 벌인 뒤 복상사한 채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추군이 온 사방을 뒤지고 다닐 때 역으로 옥구읍내로 들어와 동헌에 숨어들어 순검의 눈을 피했다. 목이 달아나게 된 옥구현감과 아전들이 동헌을 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아에 이어 외아에서 보란듯이 정사를 벌인 셈이다.

장경사는 군산만호 수군이었을 때 이씨 부인과 내연 관계를 맺었다. 이씨 부인이 관찰사에게 뇌물을 가져갈 때 장경사의 호위를 받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상피관계가 됐다. 그가 수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하자 뭍의 나졸로 옮겨준 것도 이씨 부인이었다.

그리고 태어나 여자로서 처음 몸정을 나누다시피 한 이씨 부인은 정경사에 푹 빠졌고 좀처럼 헤어 나올 줄 몰랐다. 그러던 차에 정경사가 처에게 꼬리가 잡히자 이씨 부인을 멀리하게 됐고, 격분한 이씨 부인이 현감에 모든 사실을 털어 놓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천인 신분으로 족보 세탁을 통해 간신히 나졸이 됐던 정경사는 이씨 부인에게 애걸복걸하며 매달렸으나 육정에 눈이 먼 이씨 부인은 정경사에게 도망가 살자고 제의했다.

그날도 이씨 부인을 달래느라 황망 간에 내아에 들어 칠월 땡볕 아랑곳 않고 운우지정을 나누다 일이 커진 것이다.

두 남녀, 마약 흡입하고 성관계

복상사 전 이씨 부인이 앵속에 비상을 섞은 환을 황음에 좋다며 정경사에게 먹였다.

“사랑이 애절하여 죽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지요. 화인(火印) 입어 살아가느니 몽환 속에 죽는 것이 낫습니다. 두렵습니까?”

정경사는 몸의 이상을 느꼈으나 앵속 때문에 남근만 살아있을 뿐 사지를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남근은 육모방망이 못잖게 크고 단단했다.

이씨 부인은 그를 뉘여 놓고 그의 몸 위로 앉아 마음껏 교성을 질렀다. 옥색 치마로 옥문을 가린 채였다. 정경사는 뿌리와 입만 살아 있었다.

“마님…나졸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개짐승만도 못하게 살았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상비약만 주시면 해독할 수 있습니다. 제발…”

보름 후 옥구 상피사건의 전말이 다시 세종께 올려졌다.

“나라가 온 조선 여인들을 상피하게 만들겠구먼. 무능한 관리들이 저들 좋자 하고 콧구멍 파더니 코피 터트렸어. 군산진 만호를 흑산도로 귀양 보내 다시 뭍을 밟지 못하게 만들거라.”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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