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국가인권위원장 현인권, 축첩 등 인권 문제에 "뭔 소리여?""

기사승인 2013-07-21 15: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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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의금부당직청(義禁府當直廳, 요즘의 국가인원위원회) 주장관 현인권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첩의 소생인데도 주장관(主掌官)이 된 것이다.

전라도 어디 산자락에서 태어나 한성에 들어왔다가 다시 전라도 익산으로 내려가 익산향교에서 수학했다고 알려져 있는 그의 행적을 명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향안(양반 명부)에도 올라 있어 그는 분명한 호남 양반집 적손인 셈이다.

국가인권위원장, 첩의 소생이었으나 향안에 올라 ‘신분 세탁’

인조 1년. 현인권은 새임금 즉위 이후 당직청 아래 품관들을 달달 볶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직청 고유 업무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적첩(嫡妾)이나 양천(良賤) 문제에 억울함이 사무친 자들이 신문고를 울려도 못들은 척 했다. 아래 품관들은 고유 업무 일상적인 수결조차 하지 않는 주장관 현인권에 대한 불만이 목에 차 있었으나 아무도 매운 말을 건네는 자가 없었다.

적첩주무 품관 서얼이 수결 서류를 들고 현인권 집무실을 찾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고정지(藁精紙, 볏짚 보릿짚 등을 이용해 만든 한지)에 세필로 쓴 계를 바쳤다. 안동김씨 서자가 신문고에 하소연한 내용이었다.

‘경상도 풍기 세도가 김불통의 서자 김막동은 김불통의 종년 달래 소생이온데 이 자가 어깨 너머로 한학 꽤나 했는지 서얼허통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나이다. 서얼한품법(庶孼限品法)은 천하의 백성을 균등하게 두루 살핀다는 인조 임금의 즉위 선언에 따라 즉시 폐법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자의 원이니 주장관께서 사헌부에 소경연을 요청해 주시는 것이 관례이기에 이에 수결을 요구하나이다.’

계를 보던 현인권이 고양이 꼬리처럼 끝이 모아진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서 품관을 쏘아 보았다.


“서 품관. 공은 전하의 국시(國是)를 알기나 하오?”

서 품관은 당황했다.

“아 예…4대 민생 현안 말씀이십니까.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 첫 현안이 반상(班常) 질서의 확립 아니오? 그걸 아는 사람이 이 따위 되먹지 못한 계를 올린단 말이오? 공이 지져먹든 볶아 먹든 처리할 일이지…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오? 엉?”

현인권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흥분을 했다. 그리고 고정지 다발을 냅다 던졌다.

“당장 가지고 나가시오. 풍기 그 산골에서 소(訴) 하나 올라왔기로 서니 한성 당직청이 나서야겠소. 거기 경상도 관찰사가 알아서 하라 하시오. 안되면 풍기 현감에게 되돌려 보내고. 공은 품관 직위까지 올랐으면서 이런 민원쯤은 장돌림 시키면 된다는 것 알거 아니오? 내게 대드는 거요 지금!”

“어이쿠, 소인이 주청관 어른께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즉각 소각하고, 내용 일필(一筆)하여 경상도 관찰사에게 돌리겠나이다.”

이때 대청 섬돌 근처에서 수결을 받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양천 주무, 종사(宗社) 주무 품관 등이 앗 뜨거라 싶었던지 슬슬 계를 팔소매에 감추고 뒤꽁무니를 뺏다.

현인권, 권력에 민감한 사안엔 눈감아…안팎서 뭇매

서 품관을 내친 현인권은 당상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무월아, 다시 한번 그 한지를 펼쳐 보거라. 이년아, 조심히 다루어라. 네 치마폭 다루듯 말이다. 전하가 보실 종이들이다. 관기 3년이면 치마폭 주름 하나 가지 않고 사내 양물만 받아들이는 방중술을 익혀야 할 것 아니냐. 네 엉덩이 들썩이면 견지(繭紙) 하나가 넘어갈 정도 되어야 하느니라. 그년 참 엉덩이 하나는 일품이란 말이지.”

무월은 그런 현인권에게 눈을 흘겼다. 환갑 지나 콩 쪼가리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늙은 말 주제에 입만 나불거리는 그가 좀 측은하기도 했다. 무월은 부러 속치마 보이도록 비단치마를 현인권 코 앞쪽으로 들어 말아 쥐면서 견지가 쌓여 있는 쪽으로 갔다.

코는 살아 민감했던 현인권은 ‘저것이 달거리가 됐는지 암내를 폴폴 풍기는구나’ 하면서도 정작 육신이 물먹은 솜 같아 침만 삼켰다. 해구신 등 이것저것 좋다는 보약을 다 먹어도 열 손가락 차례대로 쥐었다 피는 시간 정도면 데쳐진 시금치 꼴이 되어 버리는 양물이었다.

“무월아 그 쪽에 계목지(啓目紙) 이리 가져오너라. 계사지(啓辭紙)도.”

현인권은 전 임금 광해군 때 주장관 벼슬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몇 개월째 주장관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당권파가 그의 능력을 높이 사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둔 것이 아니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광해군 잔당파를 숙청 하느라 당직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얼, 축첩 등 인권 관련 사항 나 몰라라

현인권은 머리가 똑똑하기보다 질긴 들풀 같은 데가 있었다. 그 들풀이란 바람 부는 데로 몸을 움직이는 갈대와 다름없었다. 그것이 그의 관직 생활 비결이자, 서얼 신분 세탁의 비결이었다.

그가 주장관이 되고 나서 당직청은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 한가지, 서얼허통이니 축첩금지니 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내놓는 품관과 관원 등을 자른 것이 전부였다.

또 상위기관 사헌부에서 싫은 소리라도 할 기색이면 바짝 엎드려 견지에 ‘적첩 소(訴) 처리 현황’ ‘양천 소 처리 현황’의 숫자를 부풀려 당직청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의 그런 처신에 사헌부 솟을대문 문지방이 닳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인권은 인조 집권 6개월이 접어들자 그것으로서도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임기연장을 위한 비첩을 꺼내어 들었다. 바로 만인산(萬人傘)이었다.

만인산(萬人傘) 대통령에 바치며 국가인권위원장 유임 노려

“나리, 대체 이 계목지로는 무엇을 하려고 그러하시오니까? 지질이 너무 좋사옵니다. 제 스란치마 보다 더 부드럽사옵니다.”

관기 무월이가 현인권에게 고급스런 스란치마를 얻어 입은 것은, 현인권이 현저하게 기력이 떨어지면서 어떻게든 젊은 자신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인권의 입만 살아 여전히 큰소리였다.

“네까짓 년이 알아 무엇 하게. 다 소용이 있느니라. 만 사람이 인조 임금을 받들고 있는데 우리도 어찌 이 우산처럼 받들지 않겠느냐? 만인산을 만드는 데는 계사지나 계목지가 최고니라. 조심히 다루거라.”

만인산이란 만인의 이름을 수놓은 일산(日傘)을 말했다. 햇빛 가리개로 행렬의 위상을 나타내는 의장(儀仗)으로 쓰임새가 컸다.

현인권은 만인산 제작을 위해 당직청 관원에게 임금의 애민선정을 칭송하는 만인산에 이름 석자 넣기를 강요했다. 산(傘) 위와 옆면에 이름을 넣고 이것이 비에 젖어도 먹이 퍼지지 않도록 콩기름 막을 씌웠다. 그렇다고 그 답지 않게 이름만 강요한 것이 아니다. ‘만인산 헌정은 가문의 영광’이라며 각자 은자 한 냥씩을 자신에게 바치도록 했다. 은자 한 냥이면 두 달 녹봉이었다.

또 각 관찰사에게도 공문을 띄워 만인산에 이름을 올리도록 압력을 넣고, 지방 관아 당직청 지휘를 받는 관원들에겐 오승포(베나 무명) 100필을 사람 당 받아 챙겼다. 그는 그렇게 축재한 돈으로 사헌부 및 사간원 등을 들쑤시고 다니며 유임을 청탁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당권파 서인에서 애초 “민감한 사안에 눈감는 무능한 주청관”이란 소리가 나왔었으나 그 직후부터 “만인산을 전하께 받칠 정도로 충성스러운 신하”라는 칭찬을 받았다.

‘대통령은 도덕으로 다스리니 나라가 태평성대로구나’

그는 칠월 스무 하루. 현인권은 청계천 옆 무교동 사저 대청에 앉아 펼쳐 놓은 계사지에 한 자 한 자 용비어천가를 썼다.

‘임금께서는 도덕으로 다스리니, 정치가 온 나라 구석구석에 미치고, 매달 녹봉을 늘려 관원을 편안케 하니라. 또한 천 것 하나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의례로 가르치니 아랫사람이 태평성대 외치며 노래를 부르는구나. 여기 만인산은 온 백성의 천하 영도에 대한 예라. 길이 후손에 영도의 예를 새겨 바침을 기쁘게 생각함이라.’

그는 일필휘지를 스스로 감탄하고 붓을 벼루에 두었다.

그리고 미닫이문을 열어 삼월이를 불렀다. 초경을 막 넘긴 그 집 열네 살 종년이었다. 해사한 얼굴의 삼월이가 득달 같이 대청 아래 읇조리자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칠월 땡볕이 따가웠다. 대청은 맞바람이 쳐 시원했다. 현인권은 삼월이가 올라오자마자 듬썩 안아 비단금침에 뉘었다. 창졸간에 당해 정신 수습을 못한 삼월이가 강한 거부의 몸짓을 했으나 이미 처음은 아닌 듯 했다.

현인권을 끙끙거리며 발정난 개처럼 진땀을 냈다. 그러나 좀처럼 데친 시금치가 되살아날 줄 몰랐다. 현인권이 다급해 발로 걷어 찬 죽부인만 대청 앞마당에 뒹굴고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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