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법무부 前 차관 김법차 체포영장, 질펀한 하룻밤의 패가망신

기사승인 2013-06-19 15: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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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 500년 익스트림’]형조 참판 김법차는 삼삼한 기생 추월을 잊을 수 없었다. 만월의 밤 가평현감이 마련한 연회에서 만난 추월은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으나 방중술이 뛰어났다. 허리를 안는 듯 하면 빼고, 접물이 될 듯 하면 고개를 돌려 애간장을 타게 했다.

추월은 가평현 관기로 거문고를 잘 탔다. 보아하니 현감 박헌납이 적잖이 아끼는 흥청(興淸)인 듯 했다. 박헌납은 “대감께서 한양서 140리 길을 마다않고 오신다 하여 가평현를 모조리 뒤져 발탁한 대감만을 위한 아이입니다”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참판은 낯 두꺼운 자라고 생각했으나 싫진 않았다. 모르긴 해도 추월은 그자의 손이 적잖이 탓을 것이다.

앞서 박헌납은 가평 청평나루 거상 윤별장에게 연회를 준비토록 했다. 윤별장이 청평나루 상권을 쥘 수 있도록 포졸들을 풀어 도움 깨나 줬기 때문인지 윤별장이 입안의 혀처럼 따랐다.

“추월아, 네 낭창한 허리로 형조 참판 대감 진을 빼놓거라”

윤별장은 가평 국망봉 숯막꾼 아들로 완력깨나 쓰는 화전민 상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해 서울로 오가는 청평나루 가가호호에 숯 공급을 독점하다 시피했다. 박헌납이 3년 전 부임했을 때 다른 숯막쟁이들이 "윤별장이 왈패 등을 동원하여 현민을 괴롭히고, 숯 가격을 제 마음대로 올린다"며 동헌 앞에서 주먹 시위를 벌였다.

숯막쟁이들은 새 현감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박헌납은 판단을 하지 못해 헛기침만 하고 있었다.


그때 이방이 박헌납의 눈치를 슬슬 보며 뱅글뱅글 말을 돌렸다.

“윤별장은 우리 고을의 명망 있는 자로서, 우리 같은 구실아치들에겐 없어선 안 될 인물입죠. 관원들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패거리의 완력을 빌리기도 합죠.”

이방, “가무를 즐기기엔 윤 거상(巨商)의 한강 별전이 좋습니다”

박헌납은 이방 등 토호세력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윤별장의 손을 볼까 했다. 그러나 수만냥을 들여 현감 자리를 꿰찼는데 이런 가벼운 일로 꼬이고 싶지 않았다. 토호 한 놈 봐 준 다해서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결국 박헌납은 윤별장이 축령산 자락에 지은 그의 별전에 들었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추월의 낭창한 허리를 안은 것도 한강이 보이는 그 별전에서였다.

한데 무리하면 동티가 난다고, 숯막꾼과 청평나루 상것들이 도성 육조거리의 사헌부를 찾아가 소(訴)를 낸 것이다. 때문에 억지로 얻은 벼슬자리가 날아갈 처지가 됐다.

박헌납은 이번에도 수완 좋은 윤별장을 불러 에둘러 처지를 드러냈다. 윤별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사또께서 형조 참판을 불러만 주시면 제가 요령껏 하겠습니다.”

“수원부 유수 자리를 주신다면…" “껄껄걸 현감께서 때를 아시는 구려”

박헌납은 김법차를 부르기 위해 갖은 선을 댔다. 그리고 그가 호방하고 여색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길 듣고 바로 추월과 관기들에게 특별한 영감 한 분을 모시라고 엄명했다. 추월은 궁중 장악원(掌樂院) 여악이 되게 해달라고 조르던 중이라 그날 대감 모시기에 갖은 색기를 다했다.

한데 그날 밤, 윤별장이 속속들이 얘기를 하진 않았지만 관기 몇 명에게 앵속을 마시게 한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별전에서 벌어진 연회에서 추월은 작두를 타는 무당년 마냥 가무에 혼을 쏟아 넣었다. 그 자태 또한 고운 터라 김법차가 흥을 주체 못해 속고의가 드러날 정도로 질펀하게 놀았다.

박헌납은 이를 놓칠세라 수원부 유수가 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줄 것을 김법차에게 청탁했다. 호방한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현감께선 때를 아시는 구려”하고 답했다. 박헌납으로선 이런 쾌재가 없었다.

“제가 궁궐로만 가면 장옥정이만 못하리이까”

순조롭던 연회 접대는 며칠 안가 사달이 났다. 어떤 놈이 사헌부에 김법차의 연회를 고해 바쳤다. 환쟁이를 시켜 윤법차 등이 개차반으로 논 것을 묘사(描寫)까지 한 것을 보면 음모임에 틀림없었다. 숯막쟁이들과 청평나루의 윤별장 상권에 대항하는 자들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관례대로라면 이런 일이란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가기 마련인데 때가 좋지 않았다.

사법권을 놓고 형조와 사헌부가 대립 하는 마당에 사헌부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김법차가 친국(親鞫)을 당한다는 소문이 100리길을 한 달음에 달려왔다. 박헌납은 사색이 되어 동헌 마루에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갔다 하는데 추월이 년은 저간의 사정을 모른 채 도포 자락 붙잡고 연신 코맹맹이 소리를 해댔다.

“사또, 김법차 대감께 이년 불러줄 기별이 오지 않았는지요. 이년이 궁중 장악원만 가면 장옥정이만 못하리이까. 내 사또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아니하리이다. 참판 대감께 속히 파발마라도 띄우심이 어떠한지요.”

박헌납과 추월이 100리 밖에서 저들 나름대로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도성 안은 발칵 뒤집혔다. 김법차에 대한 사헌부의 체포영장이 떨어진 것이다. 형조 관헌들은 사헌부의 기습에 허를 찔린듯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형조 판서는 궁궐 안의 의중을 알 수 없어 대응 조차 할 수 없었다. 시사소설 작가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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