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다사다난 1994년 어떻게 그릴까? [사회편]

기사승인 2013-06-21 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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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다사다난 1994년 어떻게 그릴까? [사회편]


[쿠키 연예]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극본 이우정·연출 신원호·이하 응답 1994)의 주요 라인업이 공개됐다. 여주인공은 배우 고아라가, 남자 주인공은 유연석, 정우, 김성균 등이 맡는다. 이외에도 아이돌 B1A4의 바로와 타이니지의 민도희 등이 출연한다.

지난해 ‘응답하라 1997’에는 서인국과 정은지, 신소율, 호야, 이시언 등 연기 경험이 부족한 가수와 배우가 출연하면서 일부 연기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케이블 드라마 중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응칠앓이’ 신드롬까지 불러 일으켰다.

당시 드라마에는 1990년대 후반 유행했던 음악과 패션은 물론이고 다마고치, DDR, 연예인 책받침 등 ‘깨알’ 같은 소품과 드라마 ‘첫사랑’, 프로야구, 김대중 대통령 당선, IMF 등의 문화·사회적인 사건이 배경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응답 1997보다 3년 전의 이야기를 다룰 1994년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사회 전반을 휩쓸었던 사건과 음악을 비롯한 문화·스포츠 부분으로 나눠 찾아봤다.

김일성 사망·지존파 살인사건

1994년에는 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이 어느 때보다도 많이 일어났다. 어느 때보다도 더웠던 7월 9일 토요일 정오 북한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특별방송을 통해 “8일 오전 2시 심근경색으로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토요일을 즐기던 국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49년 동안 북한을 통치했던 김 주석의 사망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군 비상경계령이 발령됐고 휴가 중인 군인은 모두 복귀해야 했다.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라면과 생수, 생활필수품 등의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

‘지존파 살인사건’은 김일성 사망으로 혼란스러웠던 국민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안겼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은 지존파 두목 김기환이 학교 후배와 교도소 동기를 모아 ‘지존파’라는 범죄 단체를 만들었다. 지존파 일당 7명은 농가주택에 감금시설과 시체를 태우는 소각장을 갖춘 채 1993년부터 부유층 시민 5명을 연쇄 살인했다. ‘인육 살인’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납치됐다가 탈출한 피해자의 신고로 9월 세상에 드러났고 경찰은 일당 7명을 검거했다. 그중 검거 이틀 전 범행에 가담한 1명을 제외하고 6명의 조직원은 원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이 확정, 11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성수대교 붕괴·세계화 추진

1994년에는 안전 불감증으로 말미암은 인명 피해가 어느 해보다 크게 일어난 해였다. 8월 제주공항에 착륙하려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태풍 ‘더그’의 비바람에 밀려 활주로를 이탈했다. 이탈한 비행기는 인근 공원으로 추락했고 기체는 두 동강 났다. 천운으로 승무원과 승객 전원 즉시 긴급 대피했고 부기장과 승객 7명이 부상을 당한 정도로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10월 21일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한강에서 다리가 끊어지는 엽기적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했다.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무너진 것이다. 오전 7시 38분,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회사원과 등교하던 학생 등을 포함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붕괴 원인으로는 내부 결함 및 관리 감독 부실, 과적 차량 통과 등으로 밝혀졌다. 예견된 인재(人災)였다. 당일 오후 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시장이 경질됐고 24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통해 전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21일 성수대교 붕괴 이후 3일 만인 24일 오후 충북 충주호에서 유람선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ㆍ실종했다. 정원이 127명인 유람선에 134명이 탑승했고 정원초과로 엔진 과열이 발생, 불이 난 것이다. 또한 12월 7일 오후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 폭발사건이 발생해 12명이 사망했다. 한낮 도심에서의 가스 폭발사건 역시 하수관 작업을 하던 포클레인 기사가 가스관을 잘못 건드리면서 일어난 것으로 1994년은 최악의 인재(人災)가 잇달아 일어난 해로 기록됐다.

한편 문민정부는 1994년 세계화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모토로 정부조직개정안을 통과시켰고, 12월 16일 국회에서는 WTO(세계무역기구) 비준동의안이 처리돼 본격적인 세계화를 맞닥뜨렸다.

이외에도 94년 여름 서울은 38.4도라는 경이적인 더위가 찾아왔고, 넬슨만델라가 남아공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유색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선언했다.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수단의 굶주린 소녀’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윤리적ㆍ도덕적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모든 사건은 1994년 한 해에 일어난 일로 ‘응답하라 1994’가 19년 전인 1994년의 사회를 어떻게 보여주고 해석할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쏠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오대성 인턴기자 worldswith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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