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워낭소리·해운대·박쥐 계속 유출될 ‘진짜 이유’…DNA필터링 유명무실

기사승인 2009-12-1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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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워낭소리·해운대·박쥐 계속 유출될 ‘진짜 이유’…DNA필터링 유명무실


[쿠키 IT] 장면. 회사원 이모(31·서울 돈암동)씨는 그동안 인터넷 웹하드를 통해 영화를 즐겨봤다. 하지만 100원, 200원이던 영화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제휴콘텐츠’라는 이름으로 3000원, 3500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값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씨에게는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최신 영화까지 볼 수 있었던 웹하드의 ‘매력’이 사라진 것이다. 황씨가 이를 친구에게 이야기하자 친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밤 12시 넘거나 주말에 접속하면 최신작들까지 싸게 볼수 있는 거 많아.”

워낭소리·해운대·박쥐 등 잇단 영화 불법유출 사건으로 도입된 DNA필터링 제도가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웹하드와 필터링 기술 업체의 이기심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DNA필터링이란 영화내용처럼 해당 영화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점을 통해 불법 영화파일의 업로드 자체를 차단하는 기술이다, 손쉽게 피할 수 있는 파일 제목이나 길이를 통한 필터링과는 달리, 기술 적용 시 거의 100% 업로드를 차단할 수 있는 현존 최고 수준의 필터링이다.

해운대에 이어 박쥐가 불법 유출된 지난 11월 11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영제협)와 웹하드 연합체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는 “더 이상 불법 영화파일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소속 웹하드들에 DNA필터링 전면도입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영제협은 총 4개의 필터링솔루션사를 인증한 바 있다.

사실 DNA 필터링은 지난 5월부터 영제협이 웹하드들에 적용을 촉구했었다. 이는 올해 일어난 유출 사건 중 가장 큰 파문을 일으켰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국내 영화 ‘해운대’가 불법 유출되기도 전이다.

하지만 쿠키뉴스가 단독 입수한 업계 ‘로그데이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총 49개 DCNA소속 웹하드 중 37개 웹하드에 ‘권리관리정보 변경 로그’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자료는 11월 21일 필터링솔루션사들이 영제협에 제출한 것으로, 권리관리정보 변경 로그가 없다는 것은 차단·유료 조치 등 필터링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4개 솔루션사 중 A사의 솔루션을 적용하는 모든 웹하드들의 로그가 없어 눈길을 끌고 있다. 로그가 없는 37개 웹하드 중 A사의 솔루션을 적용하는 웹하드가 33개나 된다. A사는 DNA필터링의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시장점유율 선두 업체가 업계 기술의 파행 운영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고, 이런 행태가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웹하드가 필터링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항상 있어 왔으나 객관적인 로그데이터로 증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는 회원 감소를 우려한 웹하드와 더욱 많은 웹하드에 자사 시스템을 판매하려는 솔루션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현상이다.

즉, 웹하드에서는 DNA필터링을 직접 조작할 수 있기를 원하고, 솔루션사는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자사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웹하드 입장에서는 늦은 밤이나 주말 등 저작권자의 모니터링이 뜸해지는 때에 DNA필터링을 가동시키지 않을 수 있다. 공짜나 헐값에 최신 영화들이 다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 네티즌들을 유혹하고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영제협 관계자는 “현재 솔루션사들의 기술 수준은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웹하드와 솔루션사가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필터링을 하지 않는 사업자는 권고·경고 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형사고소도 제기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현재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영제협 자체 로그분석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내년이 되면 현재와 같은 폐단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솔루션 업계 관계자는 “웹하드 사업자들은 자체 서버를 통한 조작 권한을 주는 것을 구입 조건으로 제시한다”며 “전면 도입을 선언하며 언론을 통해 일제히 보도까지 됐지만 현재의 모습은 사실상 필터링도 아니다. 저작권자들과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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