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니스를 사랑한 민인기 박사

기사승인 2013-09-05 14: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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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스포츠] “자, 볼 좀 아끼자. 유 캔 두잇(You can do it).”

4일(현지시간) US오픈 테니스 주니어부 남자단식 2회전이 열린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 10번 코트. 루카스 미들러(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김영석(마포고)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나직히 귓전을 때렸다. 경기 중 작전지시를 할 수 없는 테니스 규정상 한국 코치진은 아니었고, 저쪽 관중석 구석에서 들리는 노신사의 목소리였다.

매년 8월말에서 9월초 US오픈 대회가 되면 열일을 접어두고 한국선수 응원에 나서는 민인기(64·신장내과전문의) 박사. 그는 뉴욕시에서 한참 떨어진 뉴욕주 버펄로에 살지만 대회 때는 휴가원을 내고 뉴욕시로 날아온다. 벌써 15년 남짓 해온 일이다.

그는 취미로 테니스를 치지만 한국선수를 응원하는 재미가 더 크다고 한다. 경기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가 지르는 응원내용은 정곡을 찌른다. 선수가 다소 느슨하면 “볼을 아끼자”라던가, 추격이 필요할 때는 “여기서 잡자”, “계속 밀어붙이자”며 격려한다. 혹 선수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돼 코치에게 응원의 수위까지 문의했다고 한다.

1976년 미국으로 이민왔던 민 박사와 한국 테니스와의 인연은 1993년 버펄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좋아하던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가 한국선수와 첫 만남을 가졌고,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이형택, 박성희 등 한국선수들이 잇달아 US오픈에 출전하자 응원단장을 자임하게 된 것이다.

하도 열띤 응원을 펼치자 어떤 해에는 선수 부모인줄 착각한 매니지먼트사 사장이 계약문제를 문의했다고 한다. US오픈에 만족 못한 그는 윔블던과 호주·프랑스 오픈 등 메이저대회를 쫓아다니며 한국선수들을 격려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는 2000년 US오픈 16강에 처음 진출한 이형택의 경기였습니다.” 당시 세계랭킹 200위권에 불과했던 이형택은 어렵게 예선전을 통과해 본선 16강까지 올라 뉴욕의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다고 한다.

한국 테니스 사랑이 지극하지만 민 박사는 조국의 테니스 경기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수년째 메이저대회 본선무대에 뛰는 선수가 나오지 않자 주니어육성에 써달라며 4년째 1만달러 정도의 장학금을 테니스협회에 기탁해왔다.

또 이번 대회 기간중 뉴욕시 한인테니스 동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주니어선수 육성을 위해 동포사회가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보자”며 제안하기도 했다. 뉴욕=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완석 기자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