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아이 혼내며 ‘너도 저렇게 될래?’…쓰레기와 함께 자존심도 버렸어요”

기사승인 2015-06-23 05: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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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아이 혼내며 ‘너도 저렇게 될래?’…쓰레기와 함께 자존심도 버렸어요”

“어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백화점 화장실에서 낮은 한숨이 울려 퍼졌다. 백화점 청소를 하는 50대 강모씨의 나지막한 한탄이다. 새하얀 세면대 위에는 검은 아이스커피가 여기저기 쏟아져 있었다. 이를 닦다 만듯한 휴지도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다른 고객이 볼까 세면대를 정리하는 그의 손은 재빠르면서도 서글펐다.

강씨는 주변 눈치를 보다 “화장실 안에 음료수 쏟아 놓고 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청소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지만 정말 힘든 건 일부 고객들의 멸시”라고 어렵게 입을 뗐다.

그는 “한번은 세면대에서 용변을 본 아이를 씻기는 고객을 본 적 있다”며 “놀란 마음에 ‘다른 손님들도 같이 쓰는 곳인데 이러시면 안 된다’고 정중하게 말했지만 ‘청소부면 청소나 하지 왜 참견을 하느냐’는 날 선 핀잔만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강씨는 짧은 몇 마디만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고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걱정된 탓이다. “혹시 이 얘길 듣고 누가 항의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진다”고 말하는 그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상처 난 자존심도 빠듯한 생계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서 청소를 하는 60대 전모씨는 지난해 벌어진 굴욕적인 상황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만한 아이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모녀 고객 때문이다.

전씨는 “마트 화장실에 들어서면서 엄마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딸을 타박하기 시작하더라. 근데 딸이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니까 엄마가 짜증이 났던지 나를 앞에다 두고 ‘너도 공부 안 하다가 커서 청소나 할래?’라고 아이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고 밝혔다.

전씨는 “엄마가 나중에야 눈치가 보였는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딸과 손을 씻으며 영어로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못 알아들을 말을 하며 중간 중간 나를 쳐다보고 웃던 순간이 너무 치욕스러워 잊히지 않는다”고 전했다.

전씨는 이후 속상한 마음을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고 한다. 아픈 남편을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 가장인 그는 “형편이 어려운 자식들에게 말한다 해도 같이 가슴 아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혼자 삭히는 수밖에…”라고 말했다.

모욕적인 인신공격에 무방비로 방치된 청소노동자들을 들여다보면 구조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이 주로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는 청소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처사에도 크게 반발하거나 항의할 수 없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가 청소노동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50대 김모씨는 자식 또래의 학생들에게 타박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탄했다.

그는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도 건물이나 시설이 오래돼 티가 잘 안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청소 좀 깨끗이 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그 속상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 아들 같은 아이들이 ‘화장실에 들어갈 건데 미리 휴지통을 비워 달라’ 혹은 마시고 있던 커피를 주며 ‘대신 버려 달라’는 이야기를 하면 내가 청소를 하는 사람인지 머슴이 된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며 “물론 일부 학생들만 이런 행동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를 한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꿈을 꾸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청소부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다시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러 나섰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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