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짜증 내고 4일 후 카메라 앞 눈물 뚝뚝…檢 발표로 본 조현아 재구성

기사승인 2015-01-08 10: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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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짜증 내고 4일 후 카메라 앞 눈물 뚝뚝…檢 발표로 본 조현아 재구성

지난해 12월 5일(현지시간) 0시 50분쯤 미국 JFK 공항 KE086 항공기 안. 이미 출입문이 폐쇄돼 이륙을 앞둔 상태였다. 1등석에 타고 있던 대한항공 조현아(구속·40) 부사장이 승무원 1명을 꾸짖었다.

“무슨 서비스를 이렇게 해!”

승무원이 견과류 마카다미아를 봉지 째 건네줬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 부사장이 승무원을 밀치는 등 질책이 계속되자 박창진 사무장이 나와 대신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조 부사장은 화살을 박 사무장에게 돌렸고, 이 과정에서 서비스 지침이 담긴 케이스 모서리로 박 사무장의 손등을 찌르는 등 폭행까지 행사했다.

“당장 (기장한테) 연락해서 비행기 세워. 나 이 비행기 못 뜨게 할 거야!”


2014년 대한민국의 마지막 달을 뜨겁게 달군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오전에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지고 인터넷 등을 통해 여론의 비난이 들끓기 시작한 8일 밤, 조 부사장은 객실승무본부 여모(57·구속기소) 상무로부터 전화로 국토교통부(국토부) 조사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어. (서비스) 매뉴얼 몰라서 내리게 한 게 뭐가 문제야. 사과는 내가 아니라 사무장이 해야지!”

여 상무를 중심으로 한 대한항공의 ‘증거 인멸’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 상무는 임직원들이국토부 조사에서 한결같이 ‘폭행은 없었다’는 등의 허위진술을 하도록 지시했고, 허위 경위서를 작성해 국토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여 상무는 박 사무장이 ‘땅콩 회항’ 사건 직후 작성한 최초보고서를 삭제했다. 이는 “월요일(8일)에 (박 사무장·승무원) 문책 준비하세요”라는 조 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여 상무가 박 사무장에게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15년 간 대한항공에서 근무했고, 평소 여 상무와 친분이 있었던 국토부 김 모 조사관(55·구속)은 여 상무에게 조사 상황을 여 상무에게 알렸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은폐를 민관이 손을 잡고 시도하는 순간이었다. 또 여 상무는 조 부사장에게는 “법 저촉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등 은폐 과정을 일일이 보고했다.

조 부사장이 여 상무에게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한 8일 밤, 대한항공은 ‘매뉴얼을 모르는 직원을 질책하는 건 당연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이는 비난 여론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여 상무는 다음날인 9일 사표를 냈다. 조 부사장은 “사태 잘 수습하세요”라며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이날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다른 모든 계열사의 보직까지 내려놨다.

12일 오후 3시. 조 전 부사장은 국토부 조사를 받기 위해 김포공항 내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실 앞에서 취재진 앞에 섰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처음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때 조 전 부사장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불과 4일 전에 회사 임원에게 “내가 뭘 잘못했느냐” “사과는 사무장이 해야지”라고 했던 그는 언론 카메라 앞에선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또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직접 사과하겠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무장에 대한 폭언·폭행에 대해선 “처음 듣는 얘기”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의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바로 다음 날에 ‘목격자’가 등장한 것이다.

사건 당시 조 전 부사장의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박모(32·여)씨는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 전 부사장이 사무장에게 내릴 것을 강요했고 승무원에게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기내에서 이 같은 상황을 모바일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친구에게 전했으며, 이 내용을 검찰에도 제출했다. 이 메시지는 수사의 객관적 증거로 활용됐다. 그리고 14일엔 대한항공이 박씨를 상대로도 사건 은폐를 시도했음이 드러났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은 검찰청을 들락거리는 처지가 됐다. 검찰은 17일에 그를 소환 조사했고,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날엔 여동생까지 괜한 짓을 해 비난 여론에 불만 더 붙였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 3세의 막내인 조현민(32) 대한항공 전무는 이날 마케팅 부분 직원들에게 “한 사람이 아닌 모두의 잘못”이라는 내용이 담긴 ‘반성문’을 보냈고, 이후 조 전 부사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30일 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조 전 부사장은 이날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다른 신입 수용자 4~5명과 함께 밤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5일 혼거수용됐고, 7일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이근수 부장검사)는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로 조 전 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특히 조 전 부사장이 국토부 조사 전 과정에 걸쳐 개입해 부실조사가 이뤄지도록 방해했다고 보고 그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추가 입건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