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마더 혜레사’ 김혜자도시락, 아드님이 만든 게 아냐

기사승인 2014-11-18 06: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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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마더 혜레사’ 김혜자도시락, 아드님이 만든 게 아냐

"‘김혜자 진수성찬 도시락’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GS리테일이 지난해 12월 출시한 제품으로 가격은 3500원입니다. 이 도시락은 출시 이후 지난달까지 총 220만개가 팔려 최근 1년간 GS25에서 팔린 도시락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제품의 인기는 겉포장과 달리 내용물의 양이 크게 적거나 질이 형편없을 때 쓰는 ‘창렬푸드’ 열풍에서 비롯됐습니다. 창렬푸드는 그룹 DJ DOC 출신 가수 김창렬의 이름을 빌린 편의점 즉석식품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포장지 모델로 나섰다가 ‘과대 포장’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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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은 김혜자도시락이 타사 제품보다 내용물이 알차다고 입을 모읍니다. ‘마더 헤레사’ ‘혜자푸드’ 등의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죠. 그러더니 올해 중순부터 인터넷엔 김혜자도시락은 김혜자 아들이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어머니 이름을 걸고 도시락을 만들기 때문에 양과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 소문은 커뮤니티 게시판, 블로그, SNS를 타고 빠르게 퍼졌습니다. 네티즌들은 소문을 퍼나르는데 그치지 않고 살을 붙였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김혜자 아들 임현식씨가 식품 사업이 어려워져서 엄마에게 이름 좀 빌리면 안 되냐고 물었다. 김혜자는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서 망설이다 ‘대신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마라. 재료나 양에 대해 양심적으로 해라’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김혜자 도시락이 나왔다.”

네티즌들 중 상당수는 이 소문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김혜자와 김혜자의 아들 임현식씨가 어떤 공장에서 담소를 나누며 나란히 찍힌 사진이 첨부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정성에프엑스 대표 임현식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소개 글도 함께 올랐습니다. 이렇게 임씨와 식품업체 대표라는 직함이 연결되자 ‘김혜자 도시락은 아들이 만들었다’라는 이야기에 설득력이 부여된 겁니다. 네티즌들은 “엄마 욕 안 먹이기 위해서라도 잘 해야겠네” “허튼짓 하면 패륜” “아들 교육 잘 시켰네요” 등의 댓글을 달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김혜자도시락과 김혜자 아들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사진은 임씨가 과거에 운영하던 김치 공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임씨는 한때 김치를 주로 생산하는 업체 대표였습니다. 당시 찍힌 사진을 본 네티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후 인터넷에 퍼트렸으리라 추측할 수 있겠네요.

GS리테일 관계자는 17일 “김혜자와 도시락 제조에 관한 계약을 했을 뿐이고, 아드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네티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홍보에는 도움이 된다”며 웃었습니다.

‘잘못된 소문’은 왜 진실로 둔갑한 걸까요. 소문이 퍼지는 과정은 찌라시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누군가 툭 던지면 이를 본 사람은 자신의 느낌이나 상상력을 보탠 후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근거 없는 우스갯소리가 기승전결까지 갖춘 그럴듯한 이야기가 됐습니다.

올해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덴마크우유는 유통기한 표기란 옆에 적혀 있는 검수관의 이름에 따라 우유 맛이 다르다는 잘못된 소문이 돈 것이죠. 업체에 확인한 결과 장인으로 거론된 김현복씨는 포장상태를 점검하는 생산직 직원이었습니다. 김혜자도시락의 경우처럼 맛과는 관계가 없었죠.

소문을 만들어내고 또 믿게 된 네티즌들. 질 좋은 상품에 소비자들이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만큼 과대 포장이 당연시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 건 아닐까요. 식품 업체들이 과대 포장의 유혹에 빠지기보단 소비자의 신뢰를 쌓는 쪽을 선택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