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눈 뜨니 12시” “수학영역에서 포기”… 인터넷으로 몰린 수포자들

기사승인 2014-11-13 16: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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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지금 일어났어요. 게임이나 하렵니다.”

“수학영역까지 마치고 그냥 돌아왔어요.”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전국 85개 지구 1216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진행 중인 13일 오후 1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수포자’들의 쉼터로 변했습니다. ‘수포자’는 수능을 포기한 수험생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입니다. 수능시험일이 임박할 때까지 공부하지 않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고교 3학년생이나 재수생에게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수능시험일인 이날 수포자는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오전 8시10분까지 시험장으로 입실하지 못했거나 1교시 국어영역, 2교시 수학영역에서 시험을 포기하고 점심시간 때 시험장 밖으로 나온 수험생들이 모이면서 수포자의 넋두리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능을 포기한 사유도 제각각입니다.

[친절한 쿡기자] “눈 뜨니 12시” “수학영역에서 포기”… 인터넷으로 몰린 수포자들


“재수생인데 눈을 뜨니 열두 시였다.”

“곧 영어영역이 시작될 지금 나는 PC방에 있다. 게임이나 하겠다.”

“수학B 30번 문항 빼고 대부분 쉬웠다. 물론 30번 문항까지만 풀고 나왔다.”

“정상적으로 시험에 응시한 것으로만 알고 있을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1년 전 서울 관악구(서울대 소재지)로 입성하겠다는 포부를 이 게시판에 적었는데 이렇게 포기할 줄은 몰랐다. 부끄럽다.”

네티즌 대부분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들이 수포자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의 커뮤니티 사이트 활동에서 그동안 수능을 준비한 수험생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험표를 공개하거나 시험장인 학교 복도에서 사진을 촬영한 경우도 있습니다.

커뮤니티 사이트 네티즌들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나 다음을 기약할 격려를 건네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습니다. 대부분 조롱 일색입니다. “불효자” “실패자”라는 조롱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권하는 범죄 수준의 댓글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올해 1교시 원서 접수자는 63만9667명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시험장에 나타난 수험생은 59만4617명입니다. 전체의 7.04%인 4만5050명은 결시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영역별 시험지를 빼돌리기 위해 여러 곳으로 원서를 제출한 학원 관계자나 대학입시에 대한 의지 없이 원서만 냈던 진짜 수포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부, 또는 다수가 지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넋두리를 늘어놓고 다른 네티즌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험은 오후 5시에 끝납니다. 저녁에는 더 많은 좌절과 울분이 커뮤니티 사이트로 쏟아지겠죠. 조롱보다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건 어떨까요. 수능시험일마다 전해지는 비극적인 소식이 오늘만큼은 없길 바랍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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