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황제라면, 해피아, 기레기… 신조어로 돌아본 우리의 자화상

기사승인 2014-05-16 0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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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최악의 인재(人災)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부실한 관리, 허술한 대처의 관료사회를 겨냥한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언론의 오보와 지나친 취재 경쟁을 비판한 ‘기레기’(기자+쓰레기) 등의 부정적 합성어가 잇따라 등장했다. 세월호가 만들어낸 새로운 ‘말’들은 꽃다운 생명들을 너무나 허무하게 떠나보낸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됐다.

세월호 참사 직후 침몰 원인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고를 초래한 배경에 해양수산부와 선박 업체의 유착관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수부 관료 출신들이 해운조합,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 등 유관기관에 재취업하면서 철저한 점검과 감독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피아’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등장했다.

특히 사고 10여일 뒤 해수부 위기대응 매뉴얼에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 발굴’ 같은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알려지면서 재난 컨트롤타워로서의 신뢰가 무너졌다. 이를 필두로 해수부뿐 아니라 정부 부처명과 마피아를 합성한 ‘산피아’(산업통상지원부+마피아) ‘교피아’(교육부+마피아) ‘식피아’(식품의약품안전처+마피아)등 ‘관피아’(관료+마피아)류의 단어가 재조명됐다.

사고 현장을 찾은 부처 수장들의 태도도 논란을 빚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던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응급의약품이 놓여있던 탁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다가 언론에 포착됐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던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황제라면’이란 말이 나돌았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사고 현장에서 야식으로 치킨을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치킨장관’이란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잇단 말실수도 구설에 올랐다.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은 지난달 18일 페이스북에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소리 지르고 국무총리에게 물세례를 한다.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온라인상에는 ‘미개’라는 단어를 사용한 패러디가 잇따랐다. 작곡가 김형석씨가 ‘아… 난 미개 작곡가’란 글을 남겼고 이 글에 ‘난 미개한 팬’ ‘난 미개한 직장인’ ‘난 미개한 대학생’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사고 현장에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면서 과열된 취재경쟁 탓에 ‘기레기’라는 말이 회자됐다. 속보 경쟁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쏟아내면서 현장 상황을 그대로 전하지 못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시간이 갈수록 진도 팽목항에서는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유가족이 많아졌다.

유족들을 비아냥거리는 막말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은 유족을 벌레에 빗대 ‘유족충(蟲)’이라 부르며 희롱했다.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 김호월 교수도 페이스북에 “유족이 벼슬 딴 것처럼 생난리 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유족들에게 사과하며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