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심판 해킹” 엄포 놓은 어나니머스…잡고 보니 ‘중고생’

기사승인 2014-04-16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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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지난달 국제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를 자처하며 한국 정부를 해킹했던 장본인은 평범한 중고생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16일 어나니머스를 빙자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정부 기관을 해킹하겠다고 위협하고 정부통합전산센터에 해킹을 시도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강모(17·고3), 배모(14·중3)군과 대학생 우모(2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과 함께 해킹을 준비한 필리핀인 J군(15)을 추적하기 위해 필리핀 당국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군은 지난 3월 1일 한국 정부 해킹을 결심하고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배군 등을 끌어들였다. 이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해킹 예고 글을 올렸고, 3월 16일에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도 예고 영상을 띄웠다.

동영상은 막내인 배군이 제작했다.

동영상은 어나니머스 가면을 쓴 외국인이 영어로 “한국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국민을 억압하고 있어 4월 14일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장면은 영어 문장을 입력하면 발음을 해주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확보한 음성과 인터넷에 나도는 어나니머스 관련 영상으로 만들었다. 제작 과정에서 J군이 배군의 영어 문장을 다듬어주기도 했다.

대학생 졸업반인 우씨는 고3 학생인 강군의 지시에 따라 외국 사이트에 해킹 관련 홈페이지를 만든 ‘단순 가담’ 혐의로 입건됐다.

이들은 SNS 상에서 닉네임으로만 대화해 우씨는 자신이 나이가 한참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해킹을 모의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J군은 3월 18일 어떤 해킹이 통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부통합전산센터에 등록된 모 기관 홈페이지에 해킹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J군은 한국 정부 기관 홈페이지의 URL이 ‘go.kr’로 끝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탓에 ‘go’를 빼먹어 엉뚱한 사이트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해킹 공격 일을 4월 14일로 정한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다만 이들이 공격을 모의할 때 “블랙데이(짜장면을 먹는다는 4월 14일)에 하자”는 언급이 있었다.

이들은 3월 22일 자신들의 공격 예고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다른 어나니머스를 자처하는 이들이 공격을 부인하고 나서자 부담을 느꼈고 다음날 공격 계획을 철회했다.

이들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줄줄이 검거됐다.

범행을 주도한 강군은 경찰에서 “나는 어나니머스가 맞다”고 진술했지만 J군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해킹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강군은 해킹을 결심한 동기에 대해 그다지 논리적인 이유를 대지 못했고 어나니머스는 실체가 없어 강군이 실제 어나니머스인지 알 수도 없다”며 “모두 어린 초범이지만 사회적으로 큰 불안감을 조성해 행정력 낭비를 초래한 점 등을 고려해 입건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