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대 백화점 브랜드 옷 알고보니 10만원짜리…소비자 등치는 '동대문 택갈이' 판친다

기사승인 2014-02-27 0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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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대 백화점 브랜드 옷 알고보니 10만원짜리…소비자 등치는 '동대문 택갈이' 판친다

[쿠키 사회]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여성의류 브랜드에서 지난해 말 내놓은 모직코트와 서울 동대문상가 한 구석에 걸려 있는 다른 모직코트. 디자인은 물론 소재와 섬유 혼용률, 안감, 단추까지 완벽하게 똑같았다. 그러나 가격은 54만4000원과 11만5000원으로 5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동대문상가의 코트를 만든 업체에 백화점에서 구입한 코트를 들고 가 물으니 “우리가 만들어 납품한 옷이 맞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유명 브랜드 업체들의 ‘동대문 택갈이’ 때문이다.

택(tag)갈이는 동대문 의류도매상에서 옷을 사다가 브랜드 라벨만 붙여 백화점 등 고급 매장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뜻하는 업계 은어다. 업계 관계자들은 “택갈이를 통해 백화점에 걸리는 옷이 얼마나 되는지 추산조차 어렵다”고 말한다.

25일 찾은 서울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두 명이 지나가기도 힘든 통로 양쪽으로 1∼3평 옷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재킷과 원피스 등 봄 신상품을 걸어 놨다. 재킷 하나를 집어 들고 백화점 납품 여부를 물었다. 주인은 재킷과 블라우스 등 서너 점을 가리키며 “이게 다 이번 봄에 유명 브랜드에 들어가는 옷”이라고 답했다.

다른 여성의류 도매업체 관계자는 “서울 보문동 신설동 등 동대문 인근 가내공장에 가면 1년 내내 택갈이 현장을 볼 수 있다”면서 “고급 매장의 100만원대 코트 중에도 택갈이 제품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봄 신상품이 몰리는 2월에는 손이 모자랄 정도”라며 “일부 고가 브랜드는 택갈이 사실을 숨기려고 안감과 지퍼 등 부자재를 다른 것으로 살짝 바꿔 제작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택갈이를 통해 브랜드 라벨이 붙으면 가격은 적게는 3∼4배에서 많게는 10배 가까이 뛴다. 브랜드 매장에서 수십만원대 코트를 2∼3개월만 지나도 ‘시즌오프 세일’이라며 반값에 팔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택갈이가 극심해진 것은 유행에 극도로 민감한 동대문 패션상가의 특성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계절보다 반년쯤 앞서 다음 계절 유행을 제시하면 이를 베껴 가장 먼저 국내에 선보이는 게 동대문 도매업계다. 동대문에 몰려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해외 브랜드 제품을 ‘카피’한 뒤 나름대로 재창작해 신상품을 선보인다. 이런 옷이 동대문 도매상점에 걸리면 국내 유명 브랜드에서 찾아와 택갈이할 옷을 고른다는 것이다. 해당 도매상과 계약한 옷 공장에 “우리 브랜드에서 이번에 내놓을 테니 다른 도매상에 납품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업체들은 택갈이가 불법은 아니라고 해명한다. 국내 여성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일부 외국 명품 브랜드도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받아다 라벨만 바꾸곤 한다”며 “국내 브랜드가 잘 만들어진 국내 옷을 공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값이면 해외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정모(22·여)씨는 “자주 샀던 백화점 입점 브랜드가 택갈이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배신감을 느껴 해외 브랜드만 이용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