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졌다 하면 ‘사상 초유’…답 안 보이는 그대들은 ‘대한민국 검찰’

기사승인 2013-10-24 0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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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졌다 하면 ‘사상 초유’…답 안 보이는 그대들은 ‘대한민국 검찰’

[쿠키 사회] ‘사상 초유의 검찰 스캔들’이 1년간 끊이지 않고 있다. 성추문 검사, 뇌물 검사, 현직 중수부장과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 음란 동영상 간부,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국정감사장 내분 사태까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모두 사상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11월 벌어진 성추문 검사 파문이 시작이었다. 서울동부지검에서 실무수습을 받던 전모 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 등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찰 조직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비슷한 시기 김광준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이 터졌다. 검찰과 경찰이 각각 김 부장검사를 수사하는 초유의 ‘이중 수사’ 사태도 빚어졌다. 검사들의 각종 추문에 퇴진 압박을 받던 한상대 당시 총장이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지시를 내리면서 이른바 ‘검란(檢亂)’이 발생했다. 한 전 총장이 사퇴하면서 사태는 봉합됐으나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검찰 개혁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부터 논의됐던 검찰 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한상대 채동욱 두 총장도 자체 검찰 개혁을 추진했다. 채 전 총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 중심의 검찰개혁심의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일부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한 이후 검찰 자체 개혁도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정치권의 검찰 개혁 논의 역시 실종 상태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박 대통령의 검찰 개혁 공약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6개월 동안 활동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급기야 지난 21일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를 두고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수뇌부에 항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법조계는 추문으로 얼룩진 검찰을 바로잡기 위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나승철 서울변호사회장은 “검찰 개혁은 중수부 하나를 없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주문하는 의견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행정 권력이 검찰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의 위상과 지위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행정부적 특성과 사법부적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검찰의 기형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행정부에서 검찰을 독립시켜 법원 같은 사법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막이’ 채동욱 총장 낙마에 균열…국감서 완전 결별

조영곤(55)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53) 여주지청장은 지난 6개월간 돈독한 ‘수사 파트너’였다. 사석에서 “형님” “석열아”라고 부를 정도로 절친한 선후배 사이기도 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지난 6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할 때도 조 지검장은 수사팀 의견을 지지하고, 공소장을 직접 검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국정감사장에서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벌였고, 지금은 서로를 향해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 지검장은 지난 4월 10일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했다. 윤 지청장은 같은 달 18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에 임명됐다. 특별한 근무 인연이 없던 두 사람을 직속 상하관계로 연결시킨 건 채동욱(54) 전 검찰총장이었다. 조 지검장은 채 전 총장과 서울대 법대 77학번 동기로 ‘30년 지기’다. 윤 지청장은 채 전 총장 휘하에서 숱한 비리 사건을 처리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채 전 총장이 지난달 급작스럽게 낙마하면서 균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총장이라는 ‘바람막이’가 사라지자 수사팀은 ‘이번 수사가 힘들어질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윤 지청장은 국감장에 나와 “채 전 총장 퇴임 이후 대검에 보고를 올리면 대부분 법무부로 자동으로 넘어가 장관 재가를 받아 처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조 지검장의 입지 역시 좁아졌다. 수사팀 안팎에서는 “지검장이 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에 조 지검장은 국감에서 “저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사람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윤 지청장은 지난 15일 밤 국정원 직원 체포·압수수색 보고서를 들고 조 지검장 집을 찾아갔지만, ‘불가’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17일 상부 모르게 영장을 집행했고, 그 결과 직무 배제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당일 저녁 두 사람은 외부에서 맥주를 마시며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이 언론에 ‘수사팀이 의도적으로 보고를 누락했다’고 발표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윤 지청장은 이를 ‘수사를 망가뜨리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보고도 안 하고 공소장 변경도 임의로 신청했다는 식으로만 브리핑이 안 나왔어도 제가 모든 것을 안고 가려고 했다”고 했다.

윤 지청장은 지난 21일 예상을 깨고 국감장에 나타났다. 검찰 지휘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출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지청장은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다 말씀드리겠다”며 전국에 생중계되는 자리에서 신랄하게 조 지검장을 몰아붙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얘기도 여과 없이 공개됐다. 조 지검장은 “아끼는 후배가 이렇게 항명으로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윤 지청장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두 사람이 완전히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검찰 간부는 “국감이 결정적이었다. 조 지검장으로서는 수사팀을 배려하고, 지원해줬다고 여겼는데 수사를 막는 당사자로 지목된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지검장은 “할 말은 있지만, 언론을 통한 진실 공방은 논란을 키울 수 있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檢수뇌부, 국정원수사팀 손 보나

검찰 수뇌부가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이끌던 국가정보원 특별수사팀을 ‘손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사팀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혼란만 키우고, 수사의 원만한 마무리도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23일 “현 수사팀에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데 다수의 간부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여러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직무 배제된 윤 지청장을 대신할 후임 수사팀장 인선과 함께 경력 10년 이상의 고참 검사를 추가로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은 수사팀 보강이다.

그러나 수사팀 내부 장악과 조직 기강 확립을 목적으로 한 포석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수사팀은 주임검사인 박형철 공공형사부장과 공공형사부 검사 2명, 특수2부 검사 1명, 형사1부 검사 1명이 전담하고, 일부 지원을 받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기소 등 큰 현안을 마무리한 뒤 수사팀원을 다소 줄였다. 현재의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 체포·압수수색 등을 자체 결정만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윤 지청정과 뜻을 같이했다는 게 검찰 수뇌부 인식이다. 수사를 총괄하게 돼 있는 이진한 2차장 검사는 수사팀에 영향력을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이다. 윤 지청장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이 차장을 수사 책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검찰 수뇌부는 결국 공안부 경험이 많은 새로운 팀장과 그 뒤를 받쳐줄 검사를 투입해 남은 수사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재판을 담당케 하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기존 팀원을 교체하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 측이 윤 지청장의 수사팀장 복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수사팀을 다시 구성하면 반발할 게 자명하고, 검찰 내부에서도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에서 선뜻 결론을 못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장이 공석이기 때문에 후임자를 인선하고,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여러 여건상 당장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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