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일본산 공포’에…‘검사 시연’해도 “못믿어”

기사승인 2013-09-03 01: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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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일본산 공포’에…‘검사 시연’해도 “못믿어”

[쿠키 사회] 2일 오전 서울 목동 식품의약품안전처 서울지방청. 유해물질분석과 이남경 보건연구사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온 갈치를 갈아 특수 비커에 담고 고순도 게르마늄 반도체 검출기에 넣었다. 검출기와 연결된 방사능 검출 스펙트럼에 결과가 떴다. 미검출. 검사 과정을 시연한 식약처 윤혜정 과장은 “수입되는 일본산 수산물은 이런 검사를 모두 거친다. 방사능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참석한 소비자단체 대표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본 방사능 공포…수습 나선 정부=식약처는 이날 소비자단체를 대상으로 ‘방사능 안전관리 정책 설명회’를 열었다. 방사능 검사 및 수입 수산물 검역 과정을 시연하고 정승 식약처장은 수산시장에서 회까지 먹었다. 물론 국내산 회였지만 수산물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로 수입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공포가 확산되자 정부가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검사 시연이나 회 먹기 이벤트가 국민 불안을 잠재울지는 의문이다. 애초 소비자들의 공포가 정부로부터 안전을 보증받은 ‘방사능 기준치 이하 검출 수산물’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기준치 이하 방사능이 포함된 수산물을 당신은 기꺼이 먹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국내 소비자 대다수는 고개를 젓고 있는 상황이다.



◇수입 수산물 검사 어떻게=식약처는 현재 일본산 농수산물과 가공식품을 들여올 때 일본 정부로부터 검사증명서 혹은 생산지증명서를 받고 있다. 또한 수입품 박스의 표시 사항을 점검하고 수출 송장도 확인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방사능 정밀검사도 시행하고 있다. 2011년 3월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일본산 수입식품 6만6857건에 대한 방사능 검사 결과 방사능이 기준치를 넘은 부적합 수산물은 없었다. 수산물 1만3212건 중 131건에서 2∼5베크렐(Bq/㎏) 수준의 방사능이 미량 검출됐다.



문제는 방사능이 미량 검출된 수산물이다. 방사능 기준치를 넘지 않아 시장에 유통된 물량은 지난 2년간 3011t이다. 누군가 3000t이 넘는 ‘미량 방사능’ 수산물을 먹었다는 얘기다. 국내 유통 구조 특성상 다수는 ‘미량 방사능 오염’ 사실은 물론 일본산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소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정부 발표에도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방사능 미량, 안전한가?=설명회에 참가한 한국원자력의학원 진영우 박사는 ‘기준치 이하 미량 방사능’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가 소비자단체 대표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은 “방사능이 극미량이라도 검출된 수산물은 국민불안 해소를 위해 유통을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장도 “누가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을 먹고 싶어 하겠나. 국민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량 방사능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는 “국가가 정하는 방사능 기준치라는 것은 의학적 안전치가 아니라 관리 기준치”라며 “방사능 피폭량과 암 발생률은 비례한다. 방사능이 들어 있는 음식은 무조건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력공학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식품 전문가들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모 국립대 식품공학과 한 교수는 “현재 방사능에 대한 우리 기준 100베크렐(Bq/㎏)이 절대 낮은 게 아니다”면서도 “지금 기준을 갖고 문제가 있다, 없다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반감기가 긴 데다 장기 추적연구가 거의 없는 방사능의 특성상 ‘안전한 수준의 방사능’에 대해 누구도 선뜻 자신 있게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기존의 수입 규제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수산물은 여러 해안에서 잡혀오기 때문에 일본산, 중국산으로 분류하면 특정 지역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다”며 “일본산 수산물도 지역을 세분화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객들 사기 전 원산지부터 물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지상 저장탱크 오염수가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산 공포’가 다시 찾아왔다. 오염수의 영향을 직접 받는 수산물뿐 아니라 과자 맥주 등 가공식품과 기저귀까지 일본산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 이마트 식품매장에서 일본산 과자 라면 간장 카레 등이 진열된 코너는 손님들이 찾지 않아 한산했다. 일본산 수산물은 아예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마트를 찾은 한모(30·여)씨는 “오염수 유출 사태 이후 일본산 농수산물은 물론이고 가공식품도 꺼려진다. 안전이 입증되기 전에는 사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 수산물 코너 직원은 “구매 전에 원산지부터 묻는 고객이 많다. 백화점 차원에서 일본산은 판매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0개월 된 아이를 등에 업고 서울 문래동 홈플러스 유아용품점을 찾은 주부 김모(33)씨는 “기저귀에 방사능 물질이 묻어 있을 것 같아 일본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주부 유옥춘(54)씨는 “또래 모임에 갔더니 일본산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더라”며 “며느리도 아기 기저귀를 국산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매장 직원은 “예전엔 일본산 기저귀가 잘 팔려 진열장 전체를 채웠는데 요즘은 거의 팔리지 않아서 10개 정도만 진열해 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으로 가려던 여행객들의 취소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유치원 교사 김모(34·여)씨는 추석 연휴에 남편과 일본 여행을 가려고 항공권을 예약했다가 원전 오염수 유출 보도를 보고 급히 취소했다. 여행사 관계자는 “최근 일본으로 가는 30명 단체손님이 있었는데 오염수 사고 이후 10여명이 취소했다”며 “일본 여행객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일본 방사능 괴담’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일본 땅의 70%가 세슘에 오염됐고 절반이 고농도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글을 반복적으로 리트윗하며 ‘방사능 이야기’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명태 등 일본산 수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행위를 집중 단속할 방침이다. 사과 배 대추 고사리 도라지 조기 병어 등 제수용 식품에 대한 유해물질 검사도 병행한다. 남해안에서 추출한 해수의 방사능 오염도 측정 결과도 예정보다 앞당겨 추석 전에 발표키로 했다.



시민단체도 시민들의 방사능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섰다. 환경운동연합, 한살림연합, 두레생협연합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 방사능 감시센터’는 지난달 26일부터 방사능 오염이 의심되는 먹거리와 공산품에 대해 성분 측정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시민들이 센터에 방사능 측정을 의뢰하면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 설치한 방사능 측정 장치 ‘감마 핵종분석기’로 오염 여부를 분석해준다.



센터 측은 “본격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관련 안내문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에 퍼져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혜정 센터 운영위원장은 “일반 국민이 느끼는 방사능 공포와 우려, 오염 확산 실태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방사능 측정 장비와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국민 불안감을 없애려면 측정 기구를 확충하고 정확한 정보를 숨김없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이용상 박세환 조성은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