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오늘은 날밤 까야죠, 여기저기서…” 갈곳없는 홈리스 청소년들

기사승인 2013-08-07 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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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오늘은 날밤 까야죠, 여기저기서…” 갈곳없는 홈리스 청소년들

[쿠키 사회] “모텔이요? 유천동 하고 용전동이 싸고 좋아요.”

“미성년자인데 재워줘요?”

“히히. 그럼요. 다 재워주죠.”

“돈이 있어요?”

“지금요? 이게 다예요(지갑을 열고 손바닥 위에 백원짜리 둘, 오십원짜리 하나, 십원짜리 셋을 올려놓는다).”

“그걸로?”

“돈 없으니 오늘은 날밤 까야죠(밤을 새운다는 뜻).”

“어디서요?”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여기저기 어디요?”

“예? 그냥, 여기저기.”

지난 1일 밤 11시 대전 은행동 문화의거리. 로드숍의 조명은 꺼지고 지하 노래방에서 올라오는 소음만 쿵쾅대는 캄캄한 거리를 10대 소녀 가은(이하 가명·16)과 딸기(16)가 길고양이처럼 어슬렁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서 자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낯설어했다. 자퇴하고 집 나온 지 일주일. 중학교 2학년 이후 가출 경험만 10번이 넘는 소녀들에게 거리는 집이자 놀이터였다. 친구네에서 씻고, 화장품 가게 샘플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행인에게 구걸한 돈으로 2000원짜리 맥도날드 햄버거와 담배를 샀다.

“아는 택배(업체)도 있어요. 오빠들한테 전화해서 ‘나 좀 꽂아 달라’고 하면 돼요. 저녁 9시부터 하룻밤 분류 작업하면 5만원은 챙겨요.”

인근 쉼터 관계자 말로는, 날품팔이가 가능한 남자아이 몇 명이 3∼4일 일하면 모텔의 한 달 숙박비 30만∼40만원은 거뜬히 번다고 했다. 보증금이 필요 없는 외곽 모텔은 인기 높은 숙소였다. 일자리가 여의치 않은 여자아이들은 ‘보도(술집·노래방 등의 도우미)’를 뛰거나 ‘조건(성매매)’을 했다.

소녀들과 말하는 사이 구석에서 담배 피우던 종훈(15)과 정배(15)가 나타났다. 맘이 맞아 요즘 함께 다니는 동생들이라고 했다. 정배는 요금을 내지 않아 통화 기능이 정지된 공폰(미등록 휴대전화)을 쥐고 있었다. 공폰은 가출 청소년들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이번에는 소녀들이 건너편 길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웠다. 몇 분 뒤 여자아이들이 숨넘어가게 깔깔대며 달려왔다. “저 XX들이 우리한테 같이 자자고 그래.” 길 가던 성인 남성 둘이 성매매를 요구한 모양이었다. 밤 12시를 넘어가는 시간, 집 나온 소녀들이 맞닥뜨리는 첫 번째 현실은 성매매의 유혹이거나 성폭행의 위협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여름 잠자리만 제공하는 대전시청소년드롭인센터가 문을 연 뒤 이들처럼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은 많이 줄었다.

‘가출팸’ 생활 아이들 종일 떠돌다 밤 11시 첫 끼니

6일 오전 5시2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인근의 패스트푸드점 2층 창가. 널브러져 자고 있는 세 아이 중 한 명의 얼굴이 낯익었다. 검은 민소매와 운동복 바지, 맨발에 슬리퍼.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해 6∼7년 동안 집과 거리를 오갔다는 준수(이하 가명·18)였다. 옆에는 “난 가출한 게 아니라 3일째 외박 중”이라고 주장하는 지훈(16)과 긴 생머리의 여학생 하나가 테이블 위에 얼굴을 묻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거리를 헤매다 새벽 3시쯤 아지트인 햄버거집으로 ‘귀가’한 이들은 지금 휴식 중이다. 창 너머로는 신림의 밤이 저물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준수를 처음 만난 건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달 28일 밤, 역시 신림역 패스트푸드점에서였다. 경기도 안산 청소년쉼터 ‘자유세대’ 소장 송정근 목사와 함께 ‘아웃리치(outreach)’에 나선 참이었다. 아웃리치는 쉼터에 오지 않는 가출 10대를 찾아나서는 활동이다. 지난해 조사를 보면 가출 청소년의 쉼터 이용률은 24% 안팎. 나머지를 만나자면 거리밖에 없었다.

돈 없는 10대가 모이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주문 안 해도 눈치가 덜 보이는 패스트푸드점과 빈 종이컵을 놓고 몇 시간을 버틸 수 있는 24시간 카페 같은 곳들이다. 푼돈이 생긴 날엔 한집 건너 하나씩 널린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가출 청소년의 메카로 불리는 신림역 부근은 아이들의 서식지였다. 그중 4번 출구의 패스트푸드점, 6·7번 출구에 몰려 있는 3∼4곳의 커피전문점, 인근 도림천변이 아이들의 거점 역할을 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 머리카락을 뽐내는 2층 창가의 10대 10여명을 보고 송 목사가 속삭였다. “염색한 거 보세요. 우리 애들이 틀림없어요.” 쉼터 소장인 송 목사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긴장했다. 가출 실태조사를 하려 한다고 설명해도 풀리지 않던 아이들의 경계심은 햄버거와 문상(문화상품권), 두 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집 나온 아이들에게 어른은 두 종류였다. 밥을 사주는 어른과 그렇지 않은 어른. “아침에 빵 하나 먹은 게 전부”라는 아이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소녀까지 10명 넘는 아이들은 밤 11시에 버거세트 하나씩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햄버거 하나에 태도가 공손해지는 건 배고픈 아이들의 생존법이었을 것이다. 이틀을 굶었다는 한 아이는 제몫을 해치우고는 케첩 봉지들을 찢어 입안에 짜 넣었다.

아이들은 남자 10명, 여자 4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가출팸’(집을 나온 뒤 함께 모여 사는 10대 집단)이었다. 얼마 전까지 한 아이의 부모가 구해준 인근 고시텔에 모여 살다가 쫓겨난 뒤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근거지는 신림이지만 구성은 전국구에 가까웠다. 전주에서 상경한 지 50일 됐다는 연수(17), 한 달 전 부산 집을 나왔다는 정민(15)까지 출신 지역은 제각각이었다. 4∼5월부터 몰려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은 신림 일대에서는 유명했다.

인근 24시간 커피전문점에서 밤 근무를 한다는 20대 점원은 “새벽에 몰려와서 낮까지 소파와 테이블에 드러누워 자곤 한다. 영업 방해로 몇 차례 경찰에 신고도 했다”고 말했다.

한창 설문조사를 하던 중간 한 아이가 주황머리 소녀 수혜(16)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때렸다. 수혜는 느닷없는 구타에도 별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사연은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 두 번째 만남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수혜는 얼마 전 소주병을 깨 손목을 그었다. 살짝 본 수혜의 왼쪽 손목에는 10여개의 붉은 상처가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었다. 수혜의 자해는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수혜의 행동을 가출팸은 구타로 응징한 것이다. 단짝이라는 승미(16)는 “수혜가 나 좀 때려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들끼리의 작은 사회. 그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느끼고, 말하고, 행동했다.

신림역 주변은 하루 14만명의 유동인구가 움직이는 서울 서북부 최대 상권 중 하나다. 이곳에 유독 집 나온 아이들이 많은 이유를 송 목사는 ①원룸·고시원 ②도림천 ③저렴한 상권 3가지로 요약했다. 신림역 일대 가게들은 강남이나 신촌, 명동 등지에 비해 이용료가 싸다. 24시간 문을 여는 각종 업소와 찜질방, PC방, 노래방에 인력소개소가 신림역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안에 밀집해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온갖 업소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셈이다. 불판 닦기 같은 아르바이트 거리는 순대골목이, 싼 주거지는 도림천을 따라 즐비한 한 달에 20만∼25만원짜리 고시텔이 제공한다. 특히 도림천변은 아이들이 눈총 받지 않고 놀 만한 외진 공간이 많다.

밤 12시를 향해가는 시간, 배를 채운 아이들은 돈을 들고 나타날 거라는 ‘가출 하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렸다. 모여 있는 10여명 중 돈이 있는 사람은 한 명. 그것도 딱 1000원뿐이다. 돈 가진 아이들이 오면 그 1000원을 보태 노래방에 갈 계획이다. 노래방 다음엔 24시간 카페, 카페에서 쫓겨나면 패스트푸드점, 그도 마땅치 않으면 도림천변을 배회한다.

“쉼터에 가는 게 어때요?” 따로 앉은 소녀 둘에게 살짝 물었다. 아이들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쉼터 같은 데는 안 가요. 쉼터도, 어른들도 아무도 안 믿어요. 우리는.”

서울 신림역 일대, 가출 청소년 최다 유입

번화가라고 모두 가출한 아이들이 모여드는 건 아니다. 서울에서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로와 직장인이 몰리는 영등포 일대는 의외로 가출 청소년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역이다. 가출 청소년 유입이 많은 곳은 단연 신림역 부근이다. 가출 청소년들이 인터넷 채팅으로 가출팸을 찾는 일명 ‘번개팅’ 약속장소로도 일대는 유명하다.

이외에도 성매매 업소가 많은 천호동, 쇼핑타워가 밀집한 동대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인근도 서울의 주요 거점들이다. 2007년 노숙소녀가 폭행 후 숨진 사건이 일어났던 경기도 수원은 수원역 앞 유흥업소 거리, 인천에서는 부평역 및 주안역 인근 모텔과 PC방 골목에 아이들이 주로 모였다. 안산의 경우 고시원에서 공동생활하는 가출팸이 여럿 확인됐다.

세계빈곤퇴치회(이사장 강명순)가 지난해 발표한 ‘가출-팸 청소년 문제 해결을 위한 보고서’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뤄진 전국 단위 가출 청소년 현장조사였다. 2012년 5월 1일부터 6월 9일까지 꼬박 40일간 서울 인천 안산 성남 안양 울산 부산 제주도 등 28개 도시의 주요 번화가를 밤 11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직접 돌며 그린 일종의 가출청소년 지도를 그렸다. 연구조사원 2명이 거리에서 만난 청소년을 1대 1로 면접설문조사한 방식이어서 지역별로 가출 청소년들의 특징, 주거형태, 일자리, 놀이문화, 지역사회와의 관계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전주에서 발견된 가출 청소년들은 인근 농촌 출신으로 자립생활에 대한 의지가 높고 실제 자립도가 높다는 게 특징이었다. 시골에서 중소도시로 상경한 청소년들의 경우 빈곤을 이유로 집을 나온 뒤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 착실하게 독립생활을 했다. 이들에게는 체계적인 직업교육과 주거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에서는 아파트 지하에 혼숙하고 있는 4명의 청소년이 발견됐다. 그중 한 명은 임신한 상태였으나 아이들은 끝내 쉼터 입소를 거부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출한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한 것은 ‘배고픔’(53.8%), ‘돈이 없는 고통’(47.7%), ‘잠을 잘 곳’(46.2%) 순이었다. 외로움, 범죄 피해, 친구 등과 관련한 고민은 5∼13% 정도에 불과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기본 의식주 해결이라는 얘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