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전문] ‘딸기찹쌀떡’ 청년달인의 실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기사승인 2013-08-01 12: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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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전문] ‘딸기찹쌀떡’ 청년달인의 실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딸기찹쌀떡의 눈물 vs 이찌고야의 진실

[쿠키 사회] 지난 28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이 ‘딸기찹쌀떡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김민수씨의 억울한 사연을 다루면서 갑으로 지목된 이찌고야 대표 안홍성씨는 청년달인의 기술을 빼앗은 뒤 거리로 내쫓은 ‘악마’가 됐다.

하지만 안씨는 ‘시사매거진 2580’ ‘딸기찹쌀떡의 눈물’ 편은 편파적 보도라고 말했다. 안씨는 “방송되기 전 시사매거진 측에 자신의 실명이 나갈 것과 얼굴과 목소리를 블라인드 처리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모두 묵살 당했고 장시간 이뤄졌던 인터뷰를 편파적으로 편집해 자신을 마치 죄인처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정론 시사프로그램으로 알았던 시사매거진 2580이 인생극장으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는 8월1일 안씨가 자신의 모든 입장이라며 보내온 전문을 ‘단독 입수’했다.

안씨가 작성한 이 글에는 네티즌들이 의문을 품고 있던 3가지 사항 ‘투자금을 왜 돌려주지 않았나’, ‘상표권을 몰래 등록했나’, ‘기술이 없다는 김민수씨와 동업을하고 그에게 유리한 계약서까지 써준 이유’에 대한 설명이 소상히 들어있다.

먼저 안씨는 돌려주지 않은 투자금에 대해 자신은 돌려주려고 했지만 그 제안에 김씨가 거부하고 가게 문도 스스로 닫았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김씨가 실제로 투자한 금액 3900만원을 돌려받지 않으려 하고 있다”며 “그 정도 돈으로는 이찌고야 명동점과 같은 가게를 마련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씨가 ‘투자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는 식으로 여론 몰이를 하는 중이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안씨에 따르면 김씨의 최종목적은 이찌고야 명동점을 차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투자금을 일부러 돌려받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표권에 대해서 안씨는 “이미 4월부터 김민수씨에게 모든 걸 보여주고 확인하며 충분히 의견이 교환된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표권 중 일본어 이찌고야 상표는 2010년 일본 오사카의 한 유명 서예가로부터 받은 글씨이고, 한글 로고체는 국내에서 2010년 5월에 완성한 디자인으로 증거도 가지고 있으며 당사자로부터 확인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따라서 김씨의 상표권을 공동개발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안씨는 김씨와 동업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 김씨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써주게 된 배경도 밝혔다. 안씨는 “이찌고야 명동점에 이어 2호점, 3호점의 개점 준비를 하기위해서는 명동점을 믿고 말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며 “또 당시 사업 확장을 하다보니 자금도 다소 부족했던 터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동업관계를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김씨의 첫인상이 좋아 그에게 명동점을 믿고 맡겨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수 네티즌들은 “안씨가 김씨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써주며 동업을 제안한 것만 봐도 김씨가 딸기찹쌀떡에 제조 비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따라서 안씨가 김씨의 기술을 빼먹고 내쫓은 것이다”라고 추측해왔다. 이번 안씨의 폭로가 네티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아래에서 안씨가 밝힌 입장 전문을 정리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마녀사냥’을 끝내달라고 호소했다. (증거)라고 적힌 부분에 대해 안씨는 1일 오후 2시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증거자료들을 공개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석 기자

안홍성씨가 밝힌 이번 사건의 핵심 사항

1) 시작 배경? 2) 달인이냐 아니냐? 3) 최초 개발자냐? 4)
계약서 내용은? 5) 대기업과 회장은? 6) 조폭, 건달은? 7) 상표권은? 8) 거래처는? 9) 김민수씨는 쫓겨났나? 10) 투자금은? 11) 스승님은? 12) 앞으로는?


위에 관한 사실 관계를 이 글을 통해 모두 소상히 밝히고자 합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달인을 사칭하고 있는 초보 사업가의 허구성이 밝혀지고, 네티즌들을 선동해 마녀사냥식의 논란을 일으킨 사건의 최종 종결을 구하고자 합니다.

1) 시작 배경

2012년 12월 본 점포를 계약(증거)하고 2013년 1월 가게를 열었습니다. 10여년 간 일본의 길거리 식품(다꼬야끼)을 국내에 도입(증거)하고 영업을 하던 중 수십 차례 일본을 다니며 연구한 제품을 국내에 적용해보기 위한 점포였습니다.

그 중 딸기모찌(딸기찹쌀떡)가 으뜸의 상품(증거)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에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4월 김민수씨가 찾아왔습니다. 그 동안 제가 판매해온 딸기모찌를 호평한 블로그를 보고 찾아왔다며 두 번을 사먹고 갔습니다. 3번째 쯤 왔던 김민수씨는 딸기모찌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첫 모습은 호감형에다 예의가 발랐고 친절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업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은 대단했습니다. 이 모습은 제가 처음 일본 문어빵 사업을 어렵게 시작하던 2002년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그때 김민수씨와 같은 나이였습니다. 그에게 마음을 열고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김민수씨를 주방으로 불러들여 딸기모찌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당시 사업 초보였고 딸기모찌에 관해서 실전 경험이 없었습니다. 저는 김민수씨를 응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업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김민수씨는 압구정동에서 친구와의 동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고 저와의 동업을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명동이라는 좋은 자리에서 이미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제가 판매하고 있었던 딸기모찌는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김민수씨는 다른 곳에서 압구정 친구와 막막하게 장사를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당시 김민수씨는 저에게 당시 동업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 부모님이 명동점에 방문할 수 있으니 동업을 하게 된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김민수씨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찌고야 브랜드를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해 2호점, 3호점의 개점 준비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었고, 제가 명동의 가게 자리를 비우면 저를 대신해 믿고 일해 줄 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업 확장을 하려니 자금도 다소 부족했던 터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동업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김민수씨와의 만남에서 동업까지 사실 그대로입니다.

2) 달인이냐 아니냐?

본격적으로 김민수씨와 사업을 함께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6월 7일(금) SBS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의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저는 2호점 준비관계로 삼성동에서 일을 보고 있었고 김민수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왔고 담당 PD가 6시에 협의 차 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삼성동 선약으로 그 곳에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PD가 오시면 나에게 전화를 달라고 하였고 자세한 촬영 관계는 내가 직접 협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전 그냥 촬영이 취소되었나 했습니다. 그리고 10시가 넘어 김민수씨에게 전화를 해 물어 보니 담당 PD와 작가는 이미 다녀갔고, 자신이 모든 협의를 마치고 촬영 결정과 스케쥴을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전 너무 황당했습니다. 저에게는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전부터 김민수씨의 영업 방식에 문제가 있어 갈등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틀어지게 됐습니다.

즉시 담당 PD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로 촬영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PD는 방송국에 모든 확정을 받은 터라 일정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저와 어떠한 상의도 없이 일정을 잡은 김민수씨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증거) 생활의 달인 촬영은 불가함을 통지했습니다. 이러한 결정권은 창업자이며 51%지분자인 저에게 있었습니다.

저는 PD에게 김민수씨는 달인이 아니며 실제 그 달인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는 분은 저와 함께 일하신 할머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민수씨는 이제 갓 초보딱지를 떼는 수준으로 영업에 참여한 지 이제 4~5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알렸습니다. 다시 한번 PD에게 사과하며 촬영을 거부했습니다.

이튼 날 6월 8일(토) 친구들과 함께 가게를 찾았습니다. 친구들이 축하차 명동에서 식사도 하고 구경도 하자고 해서 함께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김민수씨가 SBS 생활의 달인 촬영팀과 함께 촬영을 강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제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전화통화로 달인 촬영 관계는 모든 일이 종결 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 “김민수 정말 대단하다”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본인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위 아래도 없고 물불 가리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촬영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 당시 같이 온 친구가 박 회장으로 지칭되는 박모씨, 건달깡패로 보였던 이모씨, 그리고 대웅홀딩스 대표로 있는 후배 권모씨였습니다.

결국 생활의 달인 담당 PD, 김민수씨, 저,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모여 촬영 콘티를 협의하게 됐습니다. 내린 결론은 “제가 운영하던 가게를 김민수가 찾아와 수차례 배우고 가르쳐 서로 힘을 합쳐 가게를 성공시킨다”라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반으로 방송을 만든다는 전제 하에 촬영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6월 10일(월) 생활의 달인 방송은 김민수씨의 독무대였습니다. 전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누워 계시던 할머님도 이 방송을 보고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김민수씨의 욕심이 지나치다며 혀를 차셨습니다. 가게 오픈을 함께하신 할머님의 노고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할머님은 저에게 “안 사장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죄송해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습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이 방송으로 김민수씨는 딸기찹쌀떡의 달인이 됐습니다. 이는 저와 할머님이 느껴야 했던 고통의 대가로 만들어진 칭호입니다. 이것인 달인이 탄생하게 된 생생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김민수씨가 달인입니까?

3) 최초 개발자냐?

“2013년 6월10일 384회 생활의 달인에 나온 과일찹쌀떡의 달인 김민수입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사연은 네티즌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에 안성맞춤인 듯 합니다.

하지만 김민수씨가 과일찹쌀떡의 최초개발자라고 알려진 점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2010년 홍대에 있던 ‘카페바바’의 모 여사장님이야 말로 최초 개발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있었고 대한민국의 많은 선배 분들이 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묻혀졌기에 이렇게나마 적습니다.)

김민수씨는 그 여사장님에게도 저에게 접근했듯이 무작정 찾아가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그 게 본인의 장점이라고 말하더군요. 본인의 마스크 때문에 그 분이 호감을 갖고 계신다고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김민수씨는 여사장님이 감동받게 하려고 부산에서 배우기 위해 서울까지 왔다고 말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야 가르쳐준다면서요. 저는 그런 말을 듣으면서 “나도 당한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에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김민수씨는 심지어 홍대 카페바바 레시피를 뺏어오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그 여성 사장분이 홍대에서 장사를 그만두기 위해 정리하는 과정이었는데 김민수가 무작정 들어가 공짜로 배우려 하자 그 분은 공짜로는 안되겠다며 100만원을 달라고 했답니다. 김민수씨는 이마저도 깎으려 하다 절충이 안되자 포기하더군요.

그런데 이제와 김민수씨가 스스로를 “과일 찹쌀떡의 최초 개발자”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가진 그를 아무것도 모르는 네티즌들은 마치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김민수의 영리함이 녹아있습니다. 처음부터 ‘살려 달라’ 눈물로 호소하고 ‘대기업 횡포’로 정당화하여 대담하게 국회 앞 ‘1인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사기의 달인’ 김민수씨의 본 모습입니다.

4) 계약서 내용은?

김민수씨와 제가 맺은 2013년 5월 3일의 계약서는 사실 계약서라기보다 서로의 진실 됨을 확인하는 증명서 같은 의미였습니다. 저 또한 김민수씨의 본 모습을 보기 전 까지 그를 믿었고 모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 저는 김민수씨에게 딸기모찌 프랜차이즈에 관한 포부를 설명했고 김민수씨도 저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계약서를 체결했습니다. 내용을 보시면 의아한 점을 한 가지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5500만원에 51%, 김민수씨는 4500만원에 49%라고 적혀 있습니다.

김민수씨는 당시 돈이 부족하다며 저에게 투자금을 깎아 달라고 요청해왔고 저는 그의 말대로 600만원을 더 깎아주면서도 지분은 높여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열정과 투지를 믿었기에 호의를 베푼 것입니다. 그리고 계약의 범위는 계약서 제1번 사항에 분명히 명동 점포에 관한 것으로만 규정했습니다.

본 계약서는 프랜차이즈 사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명동’이라는 점포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대한민국 1등 영업장소입니다. 돈이 있다 해도 장사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저의 생각대로라면 명동점의 운영을 맡긴 건 자체로 김민수씨에게는 큰 혜택이었고 투자금 이상의 선물을 받아간 것이고 저로서는 큰 배려였습니다.

이것은 앞서 ‘시작배경’에서 언급한 그의 열정을 높이 산 저의 마음에서 나온 호의였습니다. 그리고 그 취지에서 그 이하의 계약서 내용이 작성되었습니다. 참 많은 부분을 양보했기에 김민수씨에게 유리한 조항들로 계약서가 만들어졌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저의 호의를 배신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김민수씨는 명동점을 운영하면서 거짓말을 일삼고 투명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손님한테 거짓말을 청산유수로 늘어놓는 무습까지 보이자 저는 그를 점점 신뢰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를 믿었기에 말도 안되는 계약서를 쓰고 가게를 통째로 맡겼는데 그는 모든 것을 가로채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억울하게 빼앗긴 딸기찹쌀떡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김민수씨의 욕심이 지나쳤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그를 받아주지 않았으면 현재의 김민수씨도 없었을 겁니다. 김민수씨가 저를 찾아온 것이 사업 시작의 첫 단추였습니다. 그런데 김민수씨는 지금 엉뚱한 말들을 지어내며 저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게 김민수의 본 모습입니다.

5) 대기업과 회장은?

이 번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기업은 없습니다. 대웅홀딩스는 제 친구의 후배가 운영하는 대웅제약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중소기업입니다. 자본금 1억의 직원수 10명 내외의 컨설팅회사입니다.

또 박회장으로 등장하는 박모씨와는 더더욱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사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감사도 아니고 주주도 아닙니다. 이 부분의 사실관계는 법인등기부등본(증거)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런데 김민수씨는 무슨 근거로 대기업이라 하고 갑의 횡포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민수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김민수씨가 네티즌들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말을 지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수씨는 이러한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며 대담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 대기업과 회장님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6) 조폭, 건달은?

이것 역시 김민수씨의 조작극입니다. 위와 같이 대기업 주연에 조폭과 건달을 조연으로 출연시켜 극적 효과를 더 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폭과 건달은 역시나 어느 곳에도 없었습니다. 만약 억지로 꾸역꾸역 맞춰 해석한다면 제 친구 중에 있었던 이모씨가 큰 키와 덩치, 스포츠머리 스타일로 조폭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조폭, 건달은 아닙니다.

이씨도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입니다. 오히려 김민수씨는 이씨와 가장 문자를 많이 하며 친한 사이로 지냈습니다. 조폭, 건달 역시 이번 사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민수씨가 인터넷에 뿌리고 있는 집앞 건달, 깡패 이야기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조작이고, 증명되지도 않은 사항입니다.

7) 상표권은?

제가 5월 1일 상표등록하고 5월 3일 계약서를 작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건은 사전에 김민수씨와 계약 전 저의 포부를 설명하며 충분히 의견이 교환된 사항이며 이 상표에 관해서는 한참 협의 당시였던 4월에 벌써 김민수씨에게 모든 걸 보여주고 확인하고 말한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간판에 사용하는 거라 사전 합의가 없었더라면 제작기간이 긴 간판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며 각종 포장지와 인쇄물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이 또한 사전 제작에 따른 상표권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특허청에 등록한 사실을 굳이 이야기할 이유도 없는 사항이었습니다.

상표권 중 일본어 이찌고야 상표는 2010년 일본 오사카의 한 유명 서예가로부터 받은 글씨이며, 한글 로고체는 국내에서 2010년 5월에 완성한 디자인입니다. 위 사실에 관한 증거로 일본인 서예가의 명함을 제시(증거)하겠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디자인한 한국 디자이너의 이름은 조모씨이며 그 증거 자료를 당시의 이메일 자료(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기모찌라고 한 한글 글씨체는 서대문구의 가은 이라는 필명의 서예가(증거)로부터 2013년 1월에 특별히 요청하여 받은 글씨입니다.

김민수씨가 주장하는 상표권 공동개발에 관한 사항은 터무니없는 내용입니다. 김민수씨를 4월 만나기 오래 전에 모든 상표가 개발 완료됐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고 특허청에 재심사를 요구한 것조차 또 한번 순진한 네티즌을 호도하려는 그의 영리한 속셈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행동들은 차후 모두 밝혀질 텐데 김민수씨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8) 거래처는?

김민수씨는 “제가 거래처를 모두 끊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기회에 주요 거래처 리스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떡집(풍년떡집-011,739,0887), 과일집(세원청과-010,8722,3625), 앙금집(용천상회-02,2272,5047) 어느 한 곳 끊었던 사실이 없습니다.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 과일 찹쌀떡 상품을 위한 가장 중요한 거래처였던 풍년 떡집을 거래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풍년떡집은 제가 2012년 12월 경 명동에 본격적으로 가게를 준비할 당시 거래처 떡집으로 찾아간 곳입니다. 그 사장님에게 제가 명동에서 찹쌀떡 사업을 준비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필요한 재료에 관한 연구와 개발을 요청하였습니다. 일반 찹쌀떡피와는 전혀 다른 제품이기 때문에 시중에는 없는 찹쌀떡피입니다. 따라서 별도 개발이 필요했고 그 이후 약 2개월에 걸쳐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제품을 완성하고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월 개업을 하고 그 찹쌀떡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였습니다. 김민수씨가 4월 저를 찾아와 5월 말 가게를 이찌고야로 재 오픈 했고 6월 찹쌀떡 달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본인이 스스로 그만 둘 때까지 모두 그 풍년떡집의 찹쌀피를 사용하여 제품을 만들고 판매했습니다. 달인 방송에 나간 찹쌀떡피도 풍년떡집의 찹쌀떡피 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사고가 터졌습니다.

한참 이찌고야 영업 중에 풍년떡집 사장에게 김민수가 “떡을 가져가는 물량을 안 사장님께 말하지 말라”(증거)라고 한 것입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떡집 사장은 찹쌀떡피를 개발하고 그 비용을 모두 지불했던 사람은 안홍성씨인데 이를 숨겨달라고 말한 김민수씨가 무척 의심스럽다고 하며 확인증을 써주었습니다. 풍년떡집 사장은 김민수씨가 물량을 숨겨달라고 하며 매출을 속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해왔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저는 풍년떡집 사장에게 앞으로는 김민수씨가 주문을 하면 저에게 알린 후 주문을 받아 달라고 요청하고 주문 방식을 바꾸게 되었음을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날 오후 김민수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풍년떡집에 전화를 하여 떡을 주문하자 떡집 사장님이 안 사장을 통해 주문해 달라고 했고, 그 다음날 김민수씨는 떡집 사장을 찾아가 왜 내가 사장인데 내가 주문하지 못하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풍년떡집 사장이 개발을 안 사장과 했고 지금도 명동점의 사장인데 당연하지 않느냐고 대답하니 김민수씨가 성질을 내고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민수씨는 풍년떡집에 한 번도 전화하거나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말이 있음에도 김민수씨는 인터넷에다가 제가 거래처를 끊었다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저와 떡집 사장님을 가족관계라고까지 하며 어이없게 퍼뜨리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가족 관계는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임씨는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거래처를 끊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김민수의 파렴치한 행동이 정말 미웠지만 현실의 영업은 해야 하기에 저를 통해달라고만 전한 것입니다. 결국 김민수씨 스스로 풍년떡집과의 거래를 끊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터넷과 언론에 제가 거래처를 끊었다 라고 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저를 대신해 밝혀 주십시오. 이런 모습이 달인 김민수의 본 모습입니다.

9) 김민수씨는 쫓겨났나?

김민수씨는 대기업의 횡포로 본인이 가게에서 강제로 쫓겨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렸듯이 대기업도 갑의 횡포도 없었습니다. 김민수씨는 스스로 가게를 그만두고 나갔습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전부의 내용으로 김민수씨와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민수씨를 수차례 만났습니다.

달인 프로그램에 나간 것이 6월 10일, 그 이후 수차례 만나 속 깊은 전후사정을 서로 이야기한 것이 6월 17일, 그 이후 다시 한번 6월 18일 만나 최종 이야기를 서로 했습니다. 하지만 김민수가 모든 제의를 거부하였습니다. 협의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런 후 본인 맘대로 6월 19일부터 25일 까지 스스로 가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증거) 그 이후 월세를 내야 할 날이 돌아오는 상황과 손님과의 약속, 점포 이미지 등 때문에 26일부터 제가 직접 들어가 영업을 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김민수씨는 쫓아냈다고 하니 마지막까지 어이가 없습니다. 김민수씨는 자신의 행동은 생각지 않은 채 본인만의 주장만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10) 투자금은 왜 안돌려주나?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인 것 같습니다. 사실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6월 17일, 18일 양일간 만나 김민수씨의 투자금을 돌려주려는 저의 제안에 본인이 모두 거부했습니다. 19일 가게 문을 스스로 닫아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와 계약한 금액은 4500만원입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돈은 3900만원입니다. 그리고 별도로 500만원은 양측이 각각 500만원씩 각출하여 인테리어 비용, 집기비품 구입, 포장재 제작, 해외 출장으로 공동 투자하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정확히 돌려줄 돈은 3900만원입니다. 500만원은 감가와 서로의 합의에 따라 추후 결정되는 액수입니다.

김민수씨는 3,900만원으로 명동점과 같은 가게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정답이 있습니다. 김민수씨에게는 오히려 투자금을 돌려받으면 많은 것을 잃어야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김민수씨가 주장하는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쫓아냈다”는 말의 본질은 이랬습니다.

이 말은 김민수씨가 자신의 명분을 만들기 하기 위한 고도의 작전이 녹아있습니다. 저와의 감정을 떠나 김민수씨의 머리 속계산은 투자금을 돌려받으면 당시에는 답이 안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명동점을 본인이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6월 27일, 제가 26일 어쩔 수 없이 영업을 시작한 다음날 김민수씨는 본인의 카카오스토리에 ‘대기업 갑의횡포’, ‘달인 김민수’, ‘살려달라’고 올리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명분을 만들고, 언론을 이용하고, 여론 힘을 얻어, 보기 좋게 명동 가게를 다시 차지하고 싶었던 게 김민수씨가 그린 가장 행복한 해피엔딩일 것입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 모든 일은 김민수씨의 치밀한 돈 계산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이제 큰 강을 건너도 너무 멀리 건넜습니다. 김민수씨는 자의건 타의건 그것마저 힘들게 되었습니다. 김민수씨는 끝까지 가야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젠 김민수와 저와의 문제를 넘어 큰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김민수씨가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저는 그에 따른 분명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 스승님은?

김민수씨는 일본에 2013년 1월부터 5월까지에만 10번 이상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본인이 달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수씨가 일본에 얼마나 자주 일본에 갔는 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닙니다. 김민수씨가 스승님이라 부르는 그 장인에게 언제 찾아가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간 배우고 실제로 큰 가르침을 받았냐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민수씨가 찾아가 스승님께 배웠다고 하는 그 날은 2013년 4월 말 또는 5월 초 경으로 기억합니다. 김민수씨가 일본을 마지막 간 이유는 저와 장사를 논의 하던 중에 영업 준비물인 빙수기계 구입이 목적이었습니다.

제가 일본 오사카의 ‘에비스야’라는 7년 정도 거래한 주방 기물 거래처에 빙수 기계를 주문해 놓고 김민수씨에게 픽업해 오라고 보낸 일본 출장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협의는 제가 다 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왕 간 김에 일본의 딸기모찌 상점도 잘 견학하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민수씨의 출장경비, 모든 여행 비용는 제가 50%, 김민수 본인이 50% 부담하였습니다.

일본을 다녀온 김민수씨는 모찌 할아버지로부터 무언가 배워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잘됐다고 하며 무엇인가 했더니 냉동 모찌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별것 아니구나 하며 한귀로 듣고 넘어갔습니다. 이 내용이 지난 2580 에 방송된 일본 스승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게 된 그 날의 경위이자 내용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저의 심부름으로 일본 가서 빙수기를 가져오라 한 것인데, 방송에서는 스승님께 엄청난 큰 가르침을 받고 왔다고 하니 정말 이상합니다.

짧은 2박 3일 동안 다녀왔는데 방송에서 묘사된 얼마나 큰 가르침을 받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2580에 방송된 내용 중 가르침의 정확한 내용은 없습니다. 노트에 몇자 적어온 내용이라면 가르침이라 할 수 없습니다. 기술도 배우고 익히고 그 제조법과 다양한 관련 지식들을 시간을 가지고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두 달은 걸리지 않을까요?

시사매거진 2580 방송 중에 제가 인터뷰한 내용 중 김민수씨 출입국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민수씨는 평생 5~6번 아님 많아도 7번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본행이 모두 그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으러 갔을까요? 이 건은 김민수씨에게 기자님이 직접 묻고 그 명확한 답변을 요청해 보십시오. 제 말이 맞는지 김민수씨 말이 맞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제가 보기에 김민수씨가 배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듣고, 보고, 사진 찍어 오는 수준입니다. 2박3일, 3박4일 정도의 여행 중에 얼마나 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장인 그분도 장사를 해야 되는데 말이죠.

이것을 엄청난 비법을 배워왔다고 하고 큰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아무나 누구나 일본을 몇 번 다녀오면 ‘비법 달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도 그 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봐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딸기찹쌀떡도 제대로 만들려면 복잡해 집니다. 원재료 문제, 제조법 문제, 판매와 보관의 문제, 원가의 문제, 도구와 장비의 문제 등 다 만들어진 모습과는 달리 그 과정은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하루, 이틀 만에 배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30년간의 노하우를 단 하루, 이틀 만에 가르쳐 준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그럼 김민수씨는 무엇을 배우고 왔을까요? 추측컨대 단순 지식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부터 열가지 모든 걸 전수받아 배워 온 것처럼 포장하고 미화하면 사실 관계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 다음은 여러분의 판단에 맞기겠습니다.

12) 앞으로는?

김민수씨는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누구의 심판이든 받아야 합니다. 그는 그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 사기행각으로 이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들끓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아직도 김민수씨에게 놀아나며 동정표를 날리실 건가요?

저를 떠나 이번 사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의 불쌍한 모습입니다. 그 동안 인터넷 댓글 사건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되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그것을 사용하는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을 죽이고 살립니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사리사욕이 치밀하게 인터넷, SNS 를 통해 번져나가며 개인을 떠난 사회문제화 되어 버렸습니다.

김민수씨는 이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메신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실제로 당해보니 자살이라는 단어가 그리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웃고 있지만 그 당사자는 울고 있습니다. 그것이 심해지면 극단적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지경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걸 경험했습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의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김민수씨는 한편으로는 불쌍합니다. 하지만 절대 용서되어서도 안 됩니다. 제가 앞으로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경청하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사회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네이버에 명동 딸기모찌라는 블로그를 개설하겠습니다. 그 곳에 여러분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소중한 의견을 주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젠 인터넷 장난의 글 이젠 정말 삼가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의견을 고견으로 받아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신중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위 모든 글의 작성자는 안홍성 본인이며 상기 보든 사항은 있는 사실 그대로 작성하였음을 맹세합니다.




2013년 7월 31일



안홍성

안홍성씨가 밝힌 사건일지

2012년 12월 : 안홍성 명동점포 계약

2013년 1월 : 별별스낵 상호로 창업

2013년 3월 : 딸기모찌 상품 블로그에 올라옴

2013년 4월 : 김민수가 찾와와 취업 요청, 김민수 가르침

2013년 5월 : 김민수와 동업계약 체결

2013년 6월 3일 : 이찌고야 상호로 재 오픈

2013년 6월 10일 : 김민수 생활의 달인 출연 (갈등 심화)

2013년 6월 17일 : 투자금 환불 1차 협의

2013년 6월 18일 : 투자금 환불 2차 협의, 김민수 거부로 결렬

2013년 6월 19일 : 계약해지통보

2013년 6월 19일 : 김민수 자진 영업포기

2013년 6월 25일 : 이찌고야 명동점 영업 중단

2013년 6월 26일 : 안홍성 이찌고야 명동점 영업 개시 ? 월세문제 등

2013년 6월 27일 : 김민수 카카오스토리로 “갑의횡포” 유포

2013년 7월 : 김민수 1인 시위, ‘시사매거진 2580’ 보도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