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들이 분만실에…“내가 마루타냐”

기사승인 2011-06-28 18: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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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남자들이 분만실에…“내가 마루타냐”

[쿠키 사회] “둘째를 낳는데 남자 학생 7명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산고로 정신까지 몽롱해졌지만 그들이 둘러서 있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수치다”

주부 A씨는 둘째를 출산한 날을 잊지 못한다. 아이를 낳는 전 출산 과정을 일면식도 없는 7명의 성인 남자가 지켜봤기 때문이다. 물론 A씨는 이들의 참관에 동의한 적이 없다.

A씨는 “그 순간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출산과 회음부를 꿰매는 것 등 여자로서 감추고 싶은 순간까지 이들은 쑥덕거리며 지켜보고 서 있었다. A씨는 “수치스러움에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아픔은 출산 1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A씨는 당시 상황을 27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A씨는 “너무나 억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동의도 없이 개인병원에서 이런 일이 어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A씨는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한 느낌”이라면서 “담당 의사는 의료발전에 힘썼다고 생각하라고만 말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같은 일은 비단 A씨 뿐이 아니다. 네티즌 B씨는 지난해 11월 “몇 년 전 모 대학병원서 응급수술로 출산을 했다”며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서있는데 그 때의 기분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다.

네티즌 C씨도 “둘째 출산 때 대학병원을 갔는데 남자 7~8명이 지켜봤다”며 “그 때의 수치심이 정말 끔찍했다. 마루타가 된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수련의와 의대생의 일방적인 분만실 참관이 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A씨 경우처럼 ‘개인병원’에서 참관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금지된 불법이다. 의료법은 수련병원 이외의 병원에서 의대생의 환자수술 참관을 금하기 때문이다. 수련병원은 ‘대학병원’과 같이 전문의를 양산하는 곳으로 국내 산부인과 수련병원은 100여곳 정도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지난해 이같은 의료 현실을 고치기 위해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거센 반대로 입법안을 내지도 못했다. 의료계는 “대학병원에 환자가 온 것만으로도 본인이 수련의의 수술참관을 동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개인병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명백히 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픈 응급환자가 어떻게 병원을 가려 가겠느냐”면서 “수련의의 진료실 사전 출입은 반드시 환자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