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바기가 새벽마다 살려달라고 울었다…

기사승인 2011-02-10 18:19:00
- + 인쇄
"
[쿠키 사회] 세살배기 김모(3)군. 우리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발음으로 "살려달라"며 매일 부모에게 빌어야 했다. 김 군은 지난해 12월 16일 아버지에게 맞아 숨졌고 시신은 집안에 방치됐다 인근 공사장 쓰레기통에 며칠동안 방치돼 있었다.

한창 귀여움 받아야할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그에게 짧았던 삶은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죽던 날도 숨이 끊겨 가는 김 군 옆에서 아버지는 잔인하게 폭력을 휘둘렀고 이를 말려야 할 엄마는 술만 마시고 있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다세대주택가 반지하 쪽방 김 군의 집. 인근 주민들은 한결같이 "매일 아버지가 아들을 때려 온 동네에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입을 모았다.

일용직 노동자, 이른바 '노가다'를 하는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에 와 툭하면 아이를 때렸다. 복도 맞은 편에 사는 30대 여성은 "평소 김군의 울음소리가 잦았고 새벽에 갑자기 울기 시작해 몇시간씩 이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이웃 주민들이 밤낮으로 아이가 울어 잠을 못잘 정도라고 토로하곤 했다"고 전했다. 아이의 몸은 항상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아버지는 김군이 조금만 울어도 곧바로 매질을 해댔다는 것이다.

어머니 이모(30)씨는 생활고에 시달린 탓인지 대낮에도 술을 마시곤 했다. 밥은 주로 분식집에서 음식을 배달시켜다 김 군과 동생 두명의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분식집 배달원은 "방안에는 옷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낮에 음식을 주문하면 으례 술을 같이 가져다 달라고 했으며 술은 배달안한다고 하면 직접 사러갔다"고 말했다.

네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이씨는 음주 습관을 그만둘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들 부모의 만남은 2007년 인터넷 채팅으로 이뤄졌다. 결혼 뒤 아버지 김씨가 일자리가 없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지만 사업이 잘 안돼 생활이 어려워지자 이씨는 집을 나갔다.

이듬해 9월 김군을 임신한 이씨가 집으로 돌아왔고 김씨는 아이가 태어나자 "집 나가 임신해 나은 아이가 내 자식이 맞는 지 절대 믿을 수 없다"고 아이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김 군은 죽던 날 설잠에서 깨어났다 여느 세살바기처럼 잠투정을 하며 울었고, 아버지는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수차례 힘껏 때린 다음 그는 김 군의 머리를 싱크대 모서리에 쳐박았다. 한 시간이상 폭행할 동안 어머니 이씨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 군이 숨지자 부모는 시신을 집안 구석에 밀어놓고 태연하게 몇달을 그냥 생활했다. 시신이 썩어 냄새가 나자 그제야 인근 공사장 쓰레기통에 내다버렸다.

아버지 김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아들한테 미안하다"고만 짧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사건을 맡은 경찰관들과 동네 주민들에겐 공허하기 그지 없었다. 심지어 한 경찰관은 "얘기해보면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어보인다"고까지 전했다.

어머니 이씨는 처벌은 면했다. 남은 김 군의 동생들과 곧 세상에 나올 뱃속의 아기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제대로 이들 부모 손에서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어린 생명들에겐 혈육의 손보다는 남의 손에서 자라는 게 더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팀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