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달린다①] 7인 독도레이서 “독도가 한국 땅 이유…323일 뛴 우리가 산증인”

기사승인 2010-07-23 16:05:01
- + 인쇄


[쿠키 사회] “우리가 ‘독도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것이고, 그 씨앗이 싹을 피운 나무가 모여 독도를 지키는 숲이 될 것입니다.”

지난 2006년 3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반기를 들고 오토바이로 세계를 돌며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린 4인의 ‘독도라이더’(Dokdo Rid12er). 리더 김영빈(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이 해단식에서 외친 말이 정확히 2년 9개월 만에 그 ‘싹’을 틔웠다. 두 다리를 모터 삼아 323일 동안 세계를 누빈 7인의 ‘독도레이서’(Dokdo Racer). 17개국의 현지인과 릴레이 달리기를 하면서 ‘독도 수호’를 외쳤다.

“희생이 아닌 진심”

한상엽(27·서울대 중어중문)을 필두로 정진원(25·서울대 기계항공), 최가영(24·서울대 경제학), 이한나(24·서울대 서양학), 배성환(28·연세대 체육교육학 졸), 윤지영(21·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고 김도건(20·서울대 조선해양공학), 국내 매니저 김영주(24·연세대 기계공학)는 ‘독도레이서’의 대원들이자 자랑스러운 대한의 얼굴이다.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취업대란과 제 입 하나 건사하기 버거운 이 시기에 직장을 관두고 학교를 휴학하는 등 크고 작은 욕심을 내려놓고,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 새겨진 대한민국의 땅 독도를 알리기를 위해 합심했다.

“‘독도라이더’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마음이 설렜는데 ‘독도레이서’ 친구들을 보니 다시 한 번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더라고요.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중학교 체육교사직을 그만두고 뛰어들었어요(웃음).”(배성환)

“어느 누구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은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유익한 시간이 될 거라 믿었죠. 유학이나 군대에 가는 기간이 1,2년 정도 늦춰졌지만, 훗날 인생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기는 뜻 깊은 일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이한나)

동료 도건이의 죽음, 그러나…

‘세계 속 독도 알리기’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첫 걸음을 뗀 독도레이서. 하지만 불행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조용히 찾아왔다. 해외 방문에 앞서 국내 종단 행사를 갖던 중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2008년 2월23일 대원 김도건이 경북 영덕의 한 국도에서 릴레이 레이싱을 하던 중 음주 운전자가 모는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도건이의 죽음으로 모든 일이 전면 중단됐다. 대원들은 마치 자신이 친구를 사지로 내몬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곁에 있던 친구의 목숨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기에 세계를 품고 달리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해산 직전까지 갔을 때, 도건이 어머니 양금옥(47) 씨가 이들을 먼저 감싸 안았다. 의기소침해져 있던 대원들을 불러서 ‘자책하지 말고 하던 일을 마저 해라. 그게 도건이를 위한 길이다’고 격려해줬고 후원금까지 손에 쥐어주었다. 해외에 나가 있었을 때에도 수시로 안부를 물어왔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돼 주었다.

“도건이 부모님은 우리에게 사랑보다 더 큰 희생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어요. 저희를 낳아주신 부모님은 따로 계시지만, 우리 가슴에는 늘 도건이 부모님이 살아 숨 쉽니다.”(한상엽)



패기와 열정이 통했다…후원사 줄이어

1년에 가까운 긴 일정은 마냥 슬픔에만 잠겨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팀워크부터 재정비해야 했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해 2월5일 서울 신림동 고시촌 부근에 둥지를 틀고 6개월 동안 합숙하면서 차근차근 알아갔다.

“‘독도라이더’와 달리 우린 여성 대원이 있어서 남녀가 함께 사는 법을 익혀야 했어요. 1층과 2층을 나눠 방을 각자 쓰면서 요리, 청소, 빨래 등 역할을 분담해 서로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파악해갔죠.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마음을 터놓기 쉬워졌고, 호흡 맞추기도 수월했던 것 같아요.”(한상엽)

어렵사리 의기투합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생활비를 끌어 모으고, 등록금을 깨서 경비에 보탰지만 홍보 활동비, 항공료, 물품비, 숙박비 등 1억 원을 웃도는 비용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기업을 찾기 위해 기획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독도레이서’의 패기와 열정이 CEO의 마음을 두드렸던 것일까. 농협, SK텔레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 기륭전자, 산돌커뮤니케이션, KT, 블랙야크 8개 기업이 후원금, 통신비, 의류비 등 물심양면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58년 후 ‘역사의 현장’에 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 14일 미국을 시작으로 캐나다, 과테말라, 멕시코,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호주, 체코,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17개국을 누빌 수 있었다. 첫 행선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한 것은 독도 영유권 분쟁의 단초가 됐던 곳이기 때문이다.

1952년 연합군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한국으로 영입됐던 ‘독도’가 일본의 끈질긴 로비 끝에 넘어갈 뻔했고, 이에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가 거세게 항의하자 조약문에서 ‘독도’ 기재를 아예 누락시켜버린 것이다. 일본은 당시 조약을 근거로 들며 ‘독도’가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땅에 첫 발을 내딛은 소감은 어땠을까.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독도 세미나를 열었는데요. 강화조약이 체결된 곳이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미래의 꿈나무가 모인 곳이라 독도의 중요성을 알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수십 년 전 비합리적으로 체결됐던 역사 한가운데에 서니 가슴이 답답했고, 힘이 부족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한상엽)

막노동으로 사수한 ‘독도 사랑’

샌프란시스코와 솔트레이크시티를 거쳐 순조롭게 일정이 진행되는 듯싶었으나,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거금 1000만원을 도난당한 것이다.

남미 일정까지는 근근이 버틸 수 있었으나 추후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됐다. 김치와 고추장 그리고 간간이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지만 결코 낙담하지 않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호주에서 커피숍, 음식점, 막노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하며 경비를 충당했다. 고락을 함께 하며 만든 ‘우정’과 ‘신뢰’라는 끈은 갈팡질팡했던 이들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줬다.

무릎에 물이 차고, 발에 무좀이 가실 날이 없었을 정도로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독도 알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전 세계를 돌며 손수 익힌 판소리, 상모돌리기, 사물놀이, 태권도 등 한국의 전통 문화로 독도를 알린 ‘독도레이서’.

[독도가 달린다①] 7인 독도레이서 “독도가 한국 땅 이유…323일 뛴 우리가 산증인”


일본에서 ‘독도’를 다시 보다

마지막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독도 영유권 분쟁을 몰고 온 장본인이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알려야 하는 곳이기에 각오는 비장했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한 뒤에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시마네현 의회는 한국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5년 3월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고 답하잖아요. 일본에선 많은 사람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고 선뜻 말하는 분들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아 우리보다 차가운 마음으로 외치는 공허한 울림에 이렇게 마음을 졸였던 건가’ 허탈함이 들었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한편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만 외쳤지 독도에 대해선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독도레이서의 공식 일정은 끝났지만, 독도를 알아가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한상엽 김영주)

발 도장에 담은 ‘세계인의 마음’을 독도로

독도레이서가 국내를 비롯해 해외 17개국을 돌면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원한 영토’임을 기원하며 받은 3000여 명의 발 도장은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독도로 가져갈 계획이다. 여러 가지 사정상 한국을 찾지 못하는 외국인이 발 도장으로나마 독도에 갈 수 있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독도레이서의 국내외 공식 활동은 이쯤에서 마무리 됐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내달 1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경복궁역 메트로 미술관과 서울대입구역 내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열며, 11개월 동안 온갖 고생을 겪었던 독도레이서의 활약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해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세미나를 할 때 독도가 한국 영토인 이유를 이렇게 증명했어요. 첫째 사료나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 정당성을 확보했고, 둘째는 바로 우리가 산증인이라고 외쳤죠. 이 먼 땅까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지금 당신들 앞에 서서 독도에 대해 외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증거라고요.”(이한나)

독도레이서가 뿌린 씨앗…우리가 키워야할 때

스무 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독도’ 앞바다에 아로새긴 고 김도건과 ‘독도레이서’ 7인의 땀과 열정으로 ‘독도’는 세계로 향하는 문턱에 섰다.

이들이 뿌린 ‘젊음의 씨앗’을 건강한 잎으로 키워내고 세계 속에 뿌리 내리게 해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8인의 독도레이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할 때 ‘독도’(獨島)는 이제 더 이상 고독을 홀(獨)로 이겨내는 외딴 섬이 아니다.

한편 국민일보가 만드는 케이블 채널 ‘쿠키TV’에서는 3부에 걸쳐 특별 제작한 ‘독도가 달린다’를 방송 중이다. 1부는 오는 26일(오전 8시)과 28일(오후 1시 및 8시), 2부는 29일과 31일(오후 1시 및 8시), 3부는 26일과 30일에 이어 8월1일(오후 1시 및 8시)까지 전파를 탄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