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있는 기사] 톰 크루즈의 냉소 “일본은 과거를 잊어도, 과거는 일본을 안 잊어”

기사승인 2015-07-08 13: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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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있는 기사] 톰 크루즈의 냉소 “일본은 과거를 잊어도, 과거는 일본을 안 잊어”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한 마디가 현재의 사회 현안을 관통합니다. 뻣뻣하고 장황한 논평보다 단 한마디가 듣는 이들의 가슴을 더 시원하게 해 주기도 하고, 후벼 파기도 합니다. 연재 ‘뼈대(뼈 있는 대사) 있는 기사’ 입니다.

톰 크루즈(사진) 주연의 1999년 작품 ‘매그놀리아(magnolia)’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영화 속에서는 과거의 절망과 악행 등의 기억으로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의 현재가 펼쳐집니다.

병든 삶에 구속된 나머지 여성혐오, 거짓, 마약 등을 동원해 상처와 죄로부터 도망 다니는 이들에 대한 ‘일갈’과도 같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우리는 과거를 잊어도,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We may be through with the past, but the past ain’t through with us).”

지난 5일이었죠.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메이지(明治)시대 산업유산 23군데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의 피와 눈물과 한숨이 서려 있는 이 곳들이 ‘인류가 다 같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중요 재산으로 공식 인정된 겁니다.

조선인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은 등재결정문(decision) 본문이 아닌 ‘각주(footnote)’라는 우회적 형태로 반영됐습니다. 유네스코 결정문에 각주가 도입되기는 처음이라고 하니 우리 정부가 “외교적 성과”라고 들떠있는 게 영 생뚱맞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각주에서 직접적으로는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대신, 그런 내용을 인정한 일본 정부 대표단의 등재 감사를 겸한 공식 “발언(statement)을 세계유산위원회는 주목한다(WHC takes note of the statement by Japan)”는 내용을 언급했죠.

이와 관련해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이날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영어로 “Japan is prepared to take measures that allow an understanding that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at some of the sites, and that, during World War II, the Government of Japan also implemented its policy of requisition”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당연히’ 이렇게 해석됩니다.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 최초로 국제사회 앞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노역을 공식 언급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둘 수 있었죠.

그런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일본은 다시 장난을 칩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세계유산위원회의 등재 결정 직후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사토 대사의 언급에 대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겁니다.

또 일부 일본 언론이 일본 정부의 가번역본이라며 공개한 부분에도 ‘forced to work’라는 부분을 ‘일하게 됐다’는 표현으로 해석돼 있습니다.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을 크게 훼손한 겁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만 바꿔 해당 문장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일하게 됐으며…”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일하게 됐으며’가 강제 노역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전 세계인들을 ‘언어 바보’ 내지는 ‘난독증 환자’로 아나봅니다.

현재진행형인 징용피해자 소송과 자국내 우경화 세력을 의식한 행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 ‘매그놀리아’를 봤을 때 “우리는 과거를 잊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대사를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을 향한 징벌과도 같은 메시지로 느꼈습니다. 한낱 ‘말장난’으로 역사를 숨기려는 그들의 위선을 향해서도 “일본은 과거를 잊지만, 과거는 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일성이 적절해 보입니다. afero@kmib.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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