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talk] ‘별을 쫓는 아이’ 별리의 신화 통해 소녀의 성장을 담아 내다

기사승인 2011-09-03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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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Z talk] ‘별을 쫓는 아이’ 별리의 신화 통해 소녀의 성장을 담아 내다

[쿠키 영화] 별리(別離), 이별(離別), 헤어짐.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다. 하지만 개개인에 따라, 자신이 처해진 상황과 심정에 따라 그 다가옴은 사뭇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그 중 가장 감성적이고 시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역시 별리다.

사람들은 성장하며 많은 이들과 만나고 이별한다. 어린 시절 마음속에 담아뒀던 소중한 이와 이별하게 되면 사무치는 그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그저 어른들의 가르침에 따라 ‘會者定離 去者必返’(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순리를 믿으며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반드시 만남이 있다’고 믿으며 어린 시절을 지내버린다. 그리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버리고 모든 것을 잊게 되기 마련이다.

작렬하던 태양도 슬그머니 그 빛을 잃어가고 지루하게 쏟아지던 장맛비도 어느새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풀벌레의 그윽한 노랫가락이 채워주고 있다. 그렇다. 신카이 마코토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별을 쫓는 아이:아가르타의 전설’(星を追う子ども)과 함께 어느 샌가 가을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그리움을 찾아 떠난 여행

매일 산에 올라 자신의 아지트에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아버지가 남긴 광석라디오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인 소녀 아스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누구보다 외롭게 지내는 소녀지만 언제나 일등을 독차지하며 엄마를 위해 집안일도 열심히 하는 착한 딸이다.

어느 날 아스나는 산에 오르다 괴물을 만나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지만, 그 때 나타난 슌이라는 소년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다. 소년 슌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스나는 소년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절망에 빠진다.

새로 부임한 모리사키 선생님에게 지하세계 아가르타의 설화를 듣고 희망을 품게 된 아스나는 선생님이 지하세계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아크엔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아스나는 모리사키 선생님과 함께 지하세계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신화, 그리고 성장을 담은 애니메이션

이 작품은 일본 고지키(古事記)에 나오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또한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와도 맥이 닿아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사후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찾아가 잃었던 소중한 이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 줄거리다.

신카이 마코토감독은 열 살에 채 되지 않던 초등학교에 시절 읽었던 책에서 감명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첫사랑, 모험을 떠날 친구들, ‘맛’을 지닌 물, ‘색’을 담은 공기 같은 수수께끼가 가득한 세상 이야기와 고민하는 어른들,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처럼 양면성을 지닌 세상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청소년의 지적인 흥분과 가슴 아픈 성장을 담아내려 했다.

풍성한 판타지를 담은 스토리텔링

아스나와 모리사키선생님이 잃었던 소중한 사람을 찾아 떠난 곳은 아가르타라는 죽음의 세계다. 저승, 명부, 황천 등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개념의 장소다. 이곳은 현실이 아닌 인간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곳으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한 신들이 임무를 다하고 소수의 인간들과 새롭게 건설한 지하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별이 뜨지 않고, 죽음과 삶이 연결되는 공간이다.

아카르타에는 수많은 판타지가 존재한다. 특히 아카르타 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케찰코아틀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인류에게 지혜와 문명을 선사한 각기 다른 모습의 신들을 표현하고 있다. 신들이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하늘을 끊임없이 날아다니는 배 사쿠나 비마나, 아카르타 세계의 끝에 있는 거대한 구멍으로 케찰코아틀이 죽기 직전 모든 기억을 남기러 오는 장소인 피니시 테라 등 다양한 판타지가 작품에 가득 펼쳐있다.

‘별을 쫓는 아이’의 또 하나의 배경은 여름, 그리고 숲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시작해 푸른 숲 속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담고 있다. 싱그러운 햇살이 가득힌 여름이지만 깊은 내면의 분위기는 さびしい(寂しい, 淋しい, 쓸쓸하다, 적적하다, 외롭다)이랄까? 일본 고유의 감성인 ‘さびしい’한 감성을 곳곳에 배어 놓았다. 그렇다고 염세적이거나 퇴폐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작품의 엔딩은 벚꽃이 떨어지는 화려한 신록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희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일본의 숲은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특히 오래된 숲을 지닌 곳은 더 없이 신비롭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잇는 ‘이웃의 토토로’가 살고 잇는 떡갈나무도 그렇고, 일본의 숲에서 느껴지는 진기한 느낌은 사실 글로 설명하기에 너무 오묘하다. 그런 오묘한 신비감을 ‘별을 쫓는 아이’에 판타지로 녹여 담아 놓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위협하는 신세대 감독

이 작품을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しんかいまこと, 新海誠)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흔히 ‘미야자키 하야오를 위협하는 신세대 감독’이라 불리는 그는 2000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彼女と彼女の猫)라는 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별의 목소리’(ほしのこ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雲のむこう, 約束の場所)을 연출했고, 2007년 ‘초속 5센티미터’(秒速 5センチメ-トル)로 평단의 극찬과 흥행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만의 섬세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특별한 감성으로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펼쳐온 그다 30년 동안 가슴속에 담아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유년시절에 읽었던 동화의 내용을 장편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사한 것이다.

마치 ‘초속 5센티미터’를 상기시키듯 스크린을 가로지르며 떨어지는 벚꽃을 이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심금을 울리는 신카이 마코토 만의 감수성 여린 목소리, 그리고 일본만이 지니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섬세한 스토리텔링을 맘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봄에 만남을 이뤄 사랑을 시작하고, 여름은 사랑을 성장시키며, 가을은 튼실하게 그 사랑의 열매를 영글어간다. 그리고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서글픈 별리를 맞이해 겨울을 맞아 덧없는 사랑을 정리하게에 이른다. 자의든 타의든 헤어진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고, 조금 더 성장하는 가을을 맞기를 바라며 ‘별을 쫓는 아이’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마지막에 쿠마키 안리(熊木杏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주제가 ‘Hello, Goodbye & Hello’를 끝까지 감상하길 바란다. 엔딩크리딧이 나오자 마자 바쁘다고 벌떡 일어나 상영관을 나서지 말고 끝까지 영화를 감상하며 아스나와 함께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성장시켜봄은 어떨까?


정지욱(鄭智旭, 영화평론가, nadesiko@unitel.co.kr )
현재 일본 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으로 일하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본심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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