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에 대해 몰랐을 법한 이야기③] 그가 직접 뽑은 ‘나의 명곡’ 15선

기사승인 2014-10-29 15:12:55
- + 인쇄
[신해철에 대해 몰랐을 법한 이야기③] 그가 직접 뽑은 ‘나의 명곡’ 15선

27일 세상을 떠난 신해철은 2005년 9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운영하는 음악 웹진 ‘이즘(IZM)’을 통해 총 15곡의 ‘나의 명곡’을 꼽았다.

1. 킹 크림슨(King Crimson) ‘I talk to the wind’

초기 킹 크림슨의 걸작으로, 중세 음유시인의 분위기와 아트 록의 공식적인 결합점을 제시한다. 피터 신필드(Peter Sinfield)의 작사,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목소리, 이언 맥도날드(Ian McDonald)의 연주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탐미주의의 극치에 도달하면서도 절제의 미덕을 동시에 내포하는 걸작.

2. 포리너(Foreigner) ‘Juke box hero’

포리너의 장기인, 팝과 록의 두 어장이 동시에 교차하는 한류와 난류 사이의 음악의 해협에서 노련한 어부의 솜씨로 건져 올린 수륙양용 양서류 음악. 거친 파도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베테랑들의 솜씨를 보라.

3. 트러스트(Trust) ‘Le mitard’

에이씨/디씨(AC/DC)의 본 스코트(Bon Scott)의 지원으로 세계에 알려진, 흔치 않은 프렌치 메탈 밴드 트러스트의 솔직히 말하면 유일한 걸작. 라 마르세이유의 폭력적인 가사에서 보여지듯 프랑스어가 그리 시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노래가 증명한다.

4. 라우드니스(Loudness) ‘Esper (Japanese ver.)’

‘Disillusion’ 앨범은 라우드니스의 상업적 대성공에 힘입어 훗날 영어 버전으로 재녹음됐다. 그래서 이 앨범이 라우드니스 최초의 영어 음반이 되지만, 그들의 진수는 오히려 일본어 버전에 있다. 트러스트(Trust)의 불어 메탈이 둔탁한 둔기에 의한 연속 타격이라면, 라우드니스는 날카로운 흉기의 질감을 가진 일본어를 헤비메탈에 얹어 일찌감치 메탈의 글로벌화를 실현했다.

5. 티-렉스(T-Rex) ‘Cosmic dancer’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에 삽입됨으로서 재발견된 티-렉스의 걸작. 글램 록 밴드의 음악적 역량을 얕보는 얼치기 록 팬들에겐 통렬한 일격이다.

6. 퀸시 존스(Quincy Jones) ‘Ai no corrida’

상업주의 댄서블 음악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 올린 마스터피스. 디스코, 펑크(Funk), 게다가 재즈와 현대음악의 요소를 버무린 거장의 여유로운 윙크. 자동차로 치면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사가 만들어낸 스포츠카랄까.

7. 카메오(Cameo) ‘Word up!’

콘(Korn), 건(Gun) 등의 록 밴드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한 댄스음악의 걸작. 록의 기준을 전기 기타의 유무나 보컬의 창법으로 분류하는 우리나라의 음악 매니아들에겐 낯설게도, 이 노래는 록을 비트로 파악하는 서양인들에겐 록 넘버로도 분류된다.

8. 맥스웰(Maxwell) ‘Till the cops comes knocking’

온 몸이 녹아드는 끈적거림과 음탕한 가사. 어른의 음악이란 이런 것. 타고난 싱어란 이런 것.

9. 프린스(Prince) ‘1999’

흑백음악의 최소 공배수를 찰나의 감으로 추출한 프린스류의 미니멀 음악. 천재란 이런 것이다.

10. 비쉐이지(Visage) ‘Fade to grey’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헐리우드에서 앞 다투어 묘사하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테크노-뉴 웨이브-신스 팝의 걸작. 고전 SF의 느낌이랄까. 퇴폐와 염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나 댄서블의 비트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11.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 ‘Day after day’

우리나라에서 ‘Old and wise’ 만큼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알란 파슨스의 숨은 노래. 재미있는 것은 ‘애비 로드(Abbey Road)’의 치프 엔지니어인 알란 파슨스가 담당했던 가장 유명한 두 밴드 비틀스(Beatles)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냄새를 동시에 풍긴다는 것.

12. 에이씨/디씨(AC/DC) ‘Hells bells’

세상엔 가끔 유행의 물결 저 위에서 비웃음을 던지는, 영원히 변치 않는 아이템들이 있다. 할리 데이비슨, 기네스 맥주, 그리고 에이씨/디씨. 그들은 등장 당시부터 이미 백화점이 아니라 앤틱(Antique) 숍에 진열 될 모습으로 나타났다.

13.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Bob Marley And The Wailers) ‘Get up, stand up’

밥 말리의 노래는 그 가사를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남국의 휴양지와 어울리는 영원한 태평가다. 그러나 그 가사를 음미하고 나면 그의 목소리는 확연히 분노로 흔들리는 영혼의 깊숙한 떨림이다.

14. 펄프(Pulp) ‘This is hardcore’

오아시스(Oasis)의 상업성, 블러(Blur)의 지성, 일스(Eels)의 의외성을 동시에 갖춘 펄프. 그들은 그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 스틱스(Styx) 만큼이나 과소평가된 밴드다.

15. 인큐버스(Incubus) ‘Stellar’

진정한 의미의 창작이 고갈된 21세기 음악계에선 원액 제조자 보단 블렌딩 기술자가 대우를 받는 법. 젊은 블렌딩 마에스트로들의 영악함과 믿기지 않는 노련함을 보라.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신해철에 대해 몰랐을 법한 이야기①] 잘 가요, 우리들의 ‘시장님’

[[신해철에 대해 몰랐을 법한 이야기②] “서태지는 송곳, 나보다 영리하고 인내심 강해”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