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 백수로 만들 때는 언제고” MBC ‘나는 가수다’ 진짜 가수 찾을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1-03-07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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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들 백수로 만들 때는 언제고” MBC ‘나는 가수다’ 진짜 가수 찾을 수 있을까

[쿠키 연예] 이 시대의 진정한 가수를 가리겠다는 포부를 드러낼 때부터 불안했다. 저마다 10년 이상 각자 분야에서 활동한 가수들을 경쟁시키겠다는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나는 가수다) 얘기다. 실체는 6일 첫 방송으로 드러났다. 시청률 부진을 핑계로 음악 프로그램 계속 폐지한 MBC는 결국 정체성 모호한 기획을 무리수 가득 담아 내놨다.

△시청률 핑계로 폐지 반복=지상파 3사는 1990년대 후반부터 KBS ‘이문세 쇼’와 MBC ‘수요예술무대’를 시작으로 경쟁하듯 심야 고급 라이브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공연장에서 많은 돈을 들여야 만날 수 있는 뮤지션의 음악을 안방극장에 전해준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야심 찬 목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시청률이 문제였다. 이른바 ‘애국가 시청률’은 광고 판매의 부진으로 이어져 고급 세션 인력을 동원하기에도 벅찼다. 편성 시간은 계속 밀렸다. 주말 오후 9시 이후 황금시간대에서 평일 자정으로, 그리고 주말 자정으로 계속 밀려났다.

그 중에서도 MBC의 행보는 가히 갈팡질팡 그 자체였다. ‘수요예술무대’는 툭하면 요일 이름을 갈아 치우고 편성 시간대를 바꿨다. 마니아 시청자들조차 언제 하는지 잘 모를 정도로 우스운 상황을 보여줬다. 그마저도 폐지됐다. ‘쇼바이벌’, ‘라라라’도 마찬가지였다. 변명은 역시 시청률이었다. ‘쇼! 음악중심’이 토요일 고정 편성에서 절대 밀리지 않고 있고 각종 아이돌 소재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것과는 대비된다.

수많은 고급 뮤지션을 텔레비전에서 사실상 백수로 만들어 놓고 MBC는 갑자기 진정한 가수를 찾겠다며 ‘나는 가수다’를 기획했다. 아이디어는 가요를 소재로 한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용한 수준이다. ‘놀러와-세시봉 특집’에서 과거 싱어 송 라이터 계열의 가수들의 ‘추억 팔기’ 가능성을 확인했고, 엠넷 ‘슈퍼스타K 2’를 그대로 베낀 ‘위대한 탄생’의 시청률 호조가 발판이었다. KBS ‘불후의 명곡’이 아직까지 긍정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도 ‘나는 가수다’ 제작의 숨은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불가능한 경쟁=‘나는 가수다’의 무리한 구성은 첫 방송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MC 이소라와 김건모, 박정현, 윤도현, 정엽, 김범수, 백지영 등 7명의 출연자는 이 프로그램의 척도를 가수의 가창력에 두고 있다고 적나라하게 밝혔다. 1990년대 후반 댄스 뮤직의 번성, 2000년대 아이돌을 거쳐 재편된 가요계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공격적인 자세다.

물론 7명의 출연진은 훌륭하다. 국내에서 가창력으로만 따지면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가수들이다. 그러나 절대 텔레비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진짜 가수라고 홍보하는 것은 엄연한 과대포장이다. 김건모는 텔레비전의 수혜를 누린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이소라와 윤도현은 각각 KBS에서 심야 라이브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인지도를 단번에 끌어올렸다. 브라운아이드소울 나얼에 가려 있던 정엽, 예능으로 외도한 전력이 있는 백지영도 텔레비전과 연관을 갖고 있다. 그나마 박정현과 김범수 정도가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가수다.

가창력이라는 기준도 추상적이다. 가수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보컬에만 치우쳐 출연진을 구성하다 보니 배제될 수 밖에 없는 뛰어난 가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 유재하 같은 뮤지션이 살아있다면 가창력 기준에 밀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기 어렵다. ‘이별의 그늘’의 윤상, ‘마법의 성’의 김광진, ‘달의 몰락’의 김현철 등도 명함을 내밀기 쉽지 않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은 아이돌의 시초라고 몰려 애매하고, 조성모는 뮤직비디오 홍수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어려워 보인다.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드는 윤종신도 뭔가 부족하다. 뮤직비디오의 시초이자, 폭발적인 댄스를 선보여 가수를 넘어 팝의 황제로 불린 이 시대 최고의 엔터테이너 마이클 잭슨도 댄스 뮤직의 원흉으로 몰려 출연하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다.

이런 문제를 다소 비약시키는 이유는 도저히 비교하고 경쟁시킬 수 없는 가수를 무리하게 경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김건모와 이소라의 음악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가수다’의 폭력성은 아이돌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SM과 JYP, YG 등 3대 대형 연예기획사가 만든 아이돌 가수들은 진짜 가수가 아니라는 주장이 프로그램 전체에 흐른다. 하지만 10년 정도 경력을 가진 싱어 송 라이터 계열의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가 진정한 가수라는 공식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 이후 깨졌다는 것이 대중과 평단의 정설이다.

과거 조동진 사단을 발굴한 동아기획의 김영 대표는 “빠른 가요 시장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이 있다”는 통렬한 자기 고백을 했다. 가요 시장이 무너진 이유에는 음악 파일(MP3)의 범람 등 빠르게 진행된 인터넷 시대와 더불어 기존 가수들의 답보도 한몫 했다는 뜻이다.

작금의 가요계 세태를 ‘가수 같지도 않은’ 아이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기성 가수 못지 않은 가창력을 가진 JYJ의 시아준수, 소녀시대의 태연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싱어 송 라이터 지드래곤과 윤하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첫 방송에서 드러난 장르의 편향성도 문제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윤도현을 제외하면 모두 팝 발라드에 기초를 두고 있다. 댄스 뮤직과 전자 계열, 포크와 트로트 등은 아예 배제됐다. 인디 밴드는 아예 출연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발라드를 택해 철저히 흥행을 노리고 있다.

△내부 구성 낙제점=본격 서바이벌 장르는 무엇보다 정확한 통계와 냉정한 구성을 담보로 해야 한다. 출연진을 선택하는 전문가 집단은 어떤 기준으로 구성됐는지, 제작진 사전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현장 방청객의 선정 기준, 시청자 투표의 공정성 등이 모두 불투명하다. 언변이 가장 앞서는
김제동을 제쳐놓고 이소라를 왜 MC로 기용했는지, 출연진이기도 한 이소라가 탈락하면 누가 진행을 맡을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출연진의 매니저로 활동하는 콘셉트로 나온 방송인들의 선정도 아쉽다. 김구라와 이윤석 등 음악평론가 못지않은 팝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커녕 음악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인위적으로 웃음 코드를 삽입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아무리 ‘일밤’이 개편돼도 새로운 코너에 늘 기용되는 박명수는 이제 정체성마저 흔들린다.

프로그램 내부 구성도 산만하다. 촬영과 편집은 낙제점 수준이다. 클로즈업과 점프 컷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수의 노래 뒤로 시도 때도 없이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코멘트와 자막은 진정한 가수를 찾겠다며 만든 프로그램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국내 굴지 대기업의 타블렛 PC를 간접 광고로 삼아 연신 손으로 두드리며 점수를 매기는 장면이나 방청객 하나 없는 객석 가운데서 담당 PD가 반말을 섞어 최종 순위를 발표하는 장면은 실소가 나온다.

△시청률 부진하면 또 폐지?=물론 희망은 있다. ‘나는 가수다’의 첫 방송이 나간 직후 대다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나는 가수다’ 관련 게시물로 도배됐다. 오랜만에 기성 가수들에 대한 왁자지껄한 난상 토론도 펼쳐졌다. A가 B보다 낫다, C가 D보다 우월하다 등의 가요 팬들의 논쟁은 다소 무의미하지만 과거 PC통신 음악 게시판에서나 볼 수 있던 추억의 장면이다.


첫 방송의 시청률은 8.9%(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로 전주 대비 2배 정도 올랐다. 시청률 호조는 앞으로 섭외할 가수의 폭을 넓혀줄 외연을 확보해준다. 그러나 KBS ‘해피 선데이-1박 2일’이 이미 시장을 선점했고 SBS ‘런닝맨’이 가파르게 추격하는 마당에서 전체 ‘일밤’의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적은 ‘대망’, ‘퀴즈 프린스’,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 ‘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 ‘헌터스’, ‘노다지’, ‘단비’, ‘우리 아버지’, ‘오빠밴드’ 등 최근 2년 동안 제작된 숱한 프로그램들을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한 MBC의 조급증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