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받은 삼성전자 임원의 반전… 제제 받은 임원들 되레 승진·영전

기사승인 2013-06-19 04: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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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받은 삼성전자 임원의 반전… 제제 받은 임원들 되레 승진·영전

20대 그룹 '불공정, 그 불편한 진실'

[쿠키 경제] 2011년 3월 24일 오후 2시30분 삼성전자 김모 한국상품기획그룹장은 수원사업장 지하주차장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 있느냐”고 묻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에게 김 그룹장은 “서울에 출장 중”이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급히 인근 찻집으로 이동, 유선전화로 회사에 출동한 공정위 조사관들의 조사 상황을 파악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떠난 오후 10시쯤 김 그룹장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어 부하직원을 시켜 숨겨뒀던 자신의 개인 컴퓨터를 가져오게 한 뒤 ‘탭(Tab) 가격정책’ 등 주요 파일을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영구 삭제했다. 공정위는 김 그룹장이 삭제한 자료들이 삼성의 휴대전화 유통 불공정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증거라고 밝혔다. 김 그룹장의 당일 조사방해 행적은 공정위 의결서에 자세하게 드러났다.

공정위는 지난해 3월 김 그룹장에게 조사방해 혐의로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했다. 같은 해 10월 홍원표 삼성전자 부사장은 국정감사에 참석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관련자들에게 가장 큰 수위의 징계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2개월 뒤 김 그룹장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국민일보가 2003∼2012년 20대그룹의 불공정행위 669건을 확인한 결과 공정위가 법인이 아닌 법인 구성원에게 제재를 가한 것은 13건(1.94%)에 불과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이 중 9건(22명)은 조사방해에 따른 과태료 부과였고, 검찰에 고발조치된 것은 단 4건(4명)뿐이었다.

불공정행위로 적발된 전체 인원 중 사내 징계를 받은 경우는 1명도 없었다. 오히려 승진 가도를 달린 경우가 많았다. 공정위 조사를 방해했던 인사 중 현재 재직 중인 20대 그룹 소속 임원 8명 가운데 5명은 처벌을 받은 직후 승진했다.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임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대외적인 공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처벌’은 오히려 ‘훈장’이었던 셈이다.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 조치된 4명도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재판이 진행 중인 1명을 제외하고 3명 모두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사회적으로도 이들의 불공정행위 전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7년 주방세제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LG생활건강 조모 상무는 모 기업체 대표이사에 재직 중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불공정행위 주체는 사람”이라며 “잘못을 저지른 자연인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고 기업이 암묵적으로 이들을 감싸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불공정행위는 근절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김찬희 차장(팀장), 이성규·선정수·백상진·진삼열 기자

사회부=박요진·박은애·전수민 기자

(중) 불공정행위 왜 반복되나/4대 그룹 매년 적발… 실형없는 처벌이 상습범 만든다

4대 그룹을 포함해 주요 대기업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빠짐없이 불공정행위에 따른 처벌을 받으면서도 개선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관행과 법 집행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우선 불공정행위의 주체인 해당 기업 임직원에 대해 회사가 처벌보다는 감싸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일보가 2003∼2012년 공정위 의결서를 분석한 결과 669건의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20대 그룹에서 검찰에 고발된 해당 기업의 임직원은 4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징역형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미국 공정경쟁당국은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10개 한국기업의 임직원 1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모두 벌금형 및 징역형이 부과됐다.

공정위는 불공정행위를 적발하면 경중을 따져 고발, 과징금, 시정명령, 시정권고, 경고 등의 조치를 내린다. 과징금은 기업에 금전적 부담을 주지만 담합에 직접 참여하는 개인에게는 아무런 억제 효과가 없다. 공정위가 간혹 법인을 고발할 때도 있지만 결국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과징금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임직원은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아 부담 없이 불공정행위에 뛰어드는 구조다.

낮은 과징금 부과기준, 각종 감경·감액도 불공정행위를 되레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공정위는 담합 사건의 경우 관련 매출액의 10%를 과징금 상한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아무리 부당이익을 많이 올려도 매출액의 10%만 과징금으로 내면 그만이다. 이마저도 복잡다단한 과징금 산정과정에서 대폭 깎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정위 고시에 따르면 과징금을 감경·감액할 수 있는 참작요소는 무려 13개에 이른다. 반면 과징금을 더 매길 수 있는 가중 요소는 7개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불공정행위로 제재를 받아도 영업에는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 국가계약법에 따라 공정위는 입찰 담합에 연루된 업체가 부정당업자로 지정되도록 중앙관서에 입찰참가 자격제한을 요청해야한다. 요청을 받은 중앙관서는 모든 중앙관서에 이를 알려 해당업체의 입찰참가를 막는다. 과거 5년 동안 입찰담합으로 받은 벌점 누계가 5점을 초과한 사업자가 다시 입찰담합을 저지른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공정위가 무소속 송호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입찰참가 자격제한 조치를 요청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불공정 대기업들은 또한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 행정소송으로 맞서 실익을 취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된 행정소송 665건 가운데 20대 그룹은 26.8%(178건)를 차지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판에서 이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지더라도 재판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수년 동안 과징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일단 ‘묻지마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송 의원은 “우리나라는 담합의 최대 형량이 징역 3년인 반면, 미국은 최근 10년으로 상향조정했다”며 “강력한 형사처벌과 함께 실무 책임자는 물론 최고경영자까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공정거래 질서가 확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김찬희 차장(팀장), 이성규·선정수·백상진·진삼열 기자

사회부=박요진·박은애·전수민 기자

공정위 조사방해 백태… 숨기고 막고 증거인멸 지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의결서에 나타난 대기업 임원들의 조사방해 행태는 다양했다. 자료를 탈취하는 ‘행동형’부터 조사에 대비해 미리 컴퓨터를 교체하는 ‘지능형’까지 있다. 이들은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 회사를 위하는 길인 양 행동했다. 그리고 그만큼의 보상을 받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료 폐기=2005년 6월 공정위는 밀가루 담합 정황을 포착해 CJ 본사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를 피해 외부에 있던 신모 부장은 중요자료를 회사에서 50m 떨어진 쓰레기통에 버렸다. CJ는 2011년에도 외장하드디스크를 사옥 외부화단에 은닉하는 비슷한 수법을 동원했었다.

임원부터 말단직원까지 ‘릴레이’로 증거자료를 파기한 사례도 있다. 삼성토탈 이모 상무는 2005년 4월 공정위 조사관이 살펴보던 자료 중 일부를 낚아채 엄모 팀장에게 전달했다. 옷자락을 잡는 조사관을 뿌리치고 엄 팀장은 복도에 있던 차장에게, 차장은 과장에게 자료를 건네줬다. 이들은 온몸으로 비상구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SK C&C 김모 상무도 2011년 7월 조사관이 보는 앞에서 증거자료를 빼앗아 부하직원에게 건넸다. 이 증거물은 문서파쇄기로 들어갔다.

SK커뮤니케이션은 공개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하다가 적발됐다. 이 회사 오모 실장은 2006년 10월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교체 등 공정위 현장조사 대비 행동요령을 공지했다. 오 실장은 이런 내용을 사장이 참석하는 임원회의에 보고까지 했다.

적반하장형도 있다. 현대하이스코 안모 상무는 2005년 9월 공정위 조사관에게 “감히 영업본부장을 조사할 수 있느냐”며 호통 치며 조사를 거부하다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 받았다.

◇불공정행위는 승진 지름길?=공정위 조사를 방해했던 인사 중 현재 재직 중인 20대 그룹 소속 임원 8명 가운데 5명은 처벌을 받은 직후 승진했다. 나머지 3명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승진과 별개로 불공정행위에 가담했던 인사들이 인사조치 없이 해당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3월 시장 지배적 지위남용행위와 관련해 공정위 조사를 방해했던 삼성전자 박모 전무는 현재도 같은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 공정위로부터 4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CJ제일제당 박모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2005년 주방세제 담합을 주도했던 LG생활건강 조모 상무는 공정위 처벌 이후 경쟁사 대표이사로 스카우트됐다.

<특별취재팀>

경제부=김찬희 차장(팀장), 이성규·선정수·백상진·진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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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맨얼굴 드러낸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자진신고감면제도 손질하고 임직원 처벌 강화해야


지난 10년간 불공정 행위를 자행한 20대 그룹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체 의결서 9764건을 분석해 보도한 내용이다. 취재 결과 공정위는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669건을 적발해 과징금 2조6665억원을 물렸다. 이는 공정위가 부과한 전체 과징금 3조4081억원의 78.2%에 해당한다. 우리 산업계를 쥐락펴락하는 20대 그룹이 불공정 행위를 밥 먹듯 했음을 보여주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한 담합이 230건으로 가장 많았고, ‘갑’의 입장에서 ‘을’인 하청업체에 고통을 준 하도급 거래 위반이 59건이었다. 불공정 행위를 가장 많이 한 SK를 비롯해 삼성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는 252건이었다. 4대 그룹이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10건 가운데 4건을 자행한 것이다. 대기업들은 담합이나 하청업체의 희생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적발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읍소하고, 공정위 제재가 확정되면 막강한 변호인단을 동원해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재계 반대를 무릅쓰고 ‘하도급 거래 공정화 법률(하도급법)’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대기업 횡포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여야 견해가 대체로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은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손해배상 대상 행위에 기존의 기술 탈취 외에 부당한 대금인하·발주취소·반품행위를 추가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도 부여했다. 하도급법과는 별개로 정부는 최근 부당한 거래로 적발되면 최고경영자를 고발하고 하도급 계약·대금지급 여부를 점검하는 종합대책도 내놨다. 대기업은 정부와 여론의 압박이 강화되면 상생을 이야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진신고감면제도(리니언시)가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큰 문제다. 공정위는 여러 기업이 담합했을 때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신고한 기업에 각각 과징금의 100%와 50%를 감면해준다. 담합을 주도하고도 가장 먼저 신고하면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담합한 기업이 독과점 업체 2곳뿐이어서 먼저 신고한 기업이 과징금 100%를, 다른 기업이 50%를 면제받은 사례도 있다. 짬짜미를 통해 제품 가격을 올려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폭리를 취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혔는데도 징계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리니언시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처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허점투성이의 이런 관행을 유지하면 안 된다. 과징금 감경률을 대폭 줄이되 담합을 주도한 기업은 감경 대상에서 배제하고, 조사 기법을 선진화시켜야 한다. 또 불공정 행위에 가담한 기업 임직원들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잘못한 임직원에 대한 공정위의 처벌도 약하고 기업이 이들을 감싸고돌면 불공정 행위는 근절되지 않는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