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SK 등 한국 슈퍼 甲의 10년 전횡…헛구호된 상생경영, 과징금만 3조 육박

기사승인 2013-06-18 0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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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차 SK 등 한국 슈퍼 甲의 10년 전횡…헛구호된 상생경영, 과징금만 3조 육박

[쿠키 집중 해부] 대·중소기업 양극화는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불공정한 경쟁과 부당한 거래 속에서 일부 유망한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국가경제는 멍들어갔다. 정부의 압박에 대기업은 그동안 ‘상생’과 ‘공정’을 외쳤지만 ‘헛구호’에 불과했다. 삼성, 현대차 등 20대 그룹은 10년 동안 연평균 3.35건의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에게 부과한 과징금은 3조원에 육박한다.

국민일보가 17일 공정위의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 의결서 9764건을 분석한 결과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는 669건이나 됐다. 20대 그룹에 매긴 과징금은 모두 2조6665억원이다. 공정위는 전원회의에서 적발·조사한 불공정 행위에 대해 각종 행정처분, 검찰 고발 등 조치를 의결한다. 의결서는 전원회의 결정사항을 기록한 문서다.

같은 기간 공정위가 부과한 전체 과징금은 3조4081억원이다. 20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78.2%나 된다.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뒤 20대 그룹은 자진신고감면제도(리니언시)를 이용해 4548억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20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에 매긴 과징금(7416억원)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는 담합(부당한 공동행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30건에 과징금만 2조3937억원에 이르렀다. 개별 업종에서 막강한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점(시장지배적 지위)을 악용한 것이다. 이어 ‘갑’의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를 괴롭힌 하도급 거래 위반이 59건을 차지했다.

20대 그룹 중 불공정 행위로 가장 많이 적발된 기업은 SK그룹이었다. 자산 규모로 재계 3위인 SK그룹은 공정위로부터 82건의 제재를 받았다. SK를 비롯해 삼성,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은 모두 252건의 불공정 행위에 연루됐다.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10건 가운데 4건(38.3%)은 4대 그룹 몫이었다. 자산 규모 5위와 14위인 롯데, CJ그룹은 각각 76건(2위), 59건(4위)으로 4대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삼성그룹(71건)은 불공정 행위 중 절반에 육박하는 34건이 담합이었다. LG그룹(50건)은 29건의 담합 사건 가운데 17건(58.6%)에서 리니언시를 이용해 과징금을 감면받거나 검찰 고발조치를 면제받았다. 범 LG가(家)로 분류되는 LS그룹도 적발된 담합행위 15건 중 12건에서 리니언시 혜택을 받았다.

과징금 부과액은 SK그룹이 6849억92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삼성그룹(4635억5170만원), GS그룹(2808억900만원), LS그룹(1923억5390만원) 등이었다.

시리즈 상 상생·정도 경영은 ‘헛구호’

‘재벌’과 ‘글로벌 기업’은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이름이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우리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 정부 들어 두 부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이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규칙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키고 따르는 주체는 기업이다. 국민들은 대기업들이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공정거래의 적’이 아닌 공정거래의 주도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시장경제를 ‘역주행’한 20대 그룹의 지난 10년간 행적을 조명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현대모비스 “경쟁사 부품쓰지 말라” 압박… 걸리면 소송 불사

국민일보가 분석한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669건은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은 ‘갑(甲)’의 횡포로 이윤을 챙겼다. 그러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덜미가 잡히면 각종 제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제재가 확정되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무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2008년 공정위에 적발된 현대모비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각 대리점에 “남품을 중단할 수 있다”고 압박하며 경쟁사 부품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자 현대모비스는 허위 자료를 제출하고, 영업직원을 동원해 대리점주를 회유했다. 증거들이 나오자 제재 수위 낮추기에 골몰했다.

현대모비스는 자진 시정조치를 내놓으면서 “경영 악화로 막대한 과징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고 ‘읍소작전’을 폈다. 결국 2009년 6월 현대모비스에 내려진 최종 과징금은 공정위가 당초 산정한 기본 과징금 751억4300만원에서 80% 감면된 150억2800만원으로 결정됐다. 과징금이 부과되자 현대모비스는 돌변했다. 공정위 제재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4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소규모 경쟁 사업자의 팔을 비트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는 대기업만 가지는 ‘특권’이다. 지난 10년간 적발된 20대 그룹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는 7건에 불과하지만 ‘갑의 횡포’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을(乙)’의 관행을 감안하면 숨겨진 불법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20대 그룹에 속하지 않는 프랜차이즈 중견기업의 적발 건수까지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대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일한 불공정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20대 그룹의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하도급 업체의 납품 위탁을 취소하거나 물품 수령을 늦추다 16억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앞서 삼성전자는 2005년에도 같은 불공정 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삼성전자는 당시 115억75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제재를 받았었다.

지난 10년간(2003~2012년) 공정위에 적발된 20대 그룹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는 모두 59건에 이른다. 연평균 6개 대기업 계열사가 하도급 업체를 괴롭히다 적발되는 셈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각각 11건으로 하도급법을 가장 많이 어겼다. 롯데그룹과 두산그룹이 6건씩 적발됐다. SK그룹이 5건, 포스코그룹과 LG그룹이 각 4건의 제재를 받았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나 하도급법 위반 행위는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고 이익은 대기업이 챙기는 전통적 불공정 행위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기업의 눈 밖에 나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온갖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 10년 동안 ‘경제 살리기’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보다 우선순위였다”면서 “대기업의 대표적 불공정 행위인 두 유형에 대한 감시 활동이 기업이 긴장할 만큼 활발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겉과 속 다른 甲…

삼성 계열사, 현금결제 6개월만에 휴지조각

현대차, 계열사엔 특혜·협력사는 단가 깎아

LG·SK도 ‘상생협약’ 수개월 만에 뒤집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고 대·중소기업이 참여하는 ‘대·중소기업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제도(TCP·Triangle Cooperation Program)’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5개 대기업, 2만7741개 중소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20대 그룹의 동반성장 협약 체결 현황과 공정위 의결서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은 겉으로는 상생을 외치면서도 뒤로는 불공정 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 계열사 8곳은 2008년 7월 하도급 업체와 반드시 서면계약을 하고 현금 결제 비율을 100%로 유지하겠다는 하도급 공정거래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협약은 6개월 만에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협약에 참여한 삼성SNS는 이듬해 1월 하도급 업체 A사와 용역 계약을 맺으면서 정작 서면계약서는 지연 발급했다. 현금 결제 비율 100%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삼성SNS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04~2006년 현대하이스코, 글로비스 등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을 한 혐의로 5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과징금이 부당하다며 현대차가 낸 소송에서 법원은 2009년 8월 “사업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준 뒤 과다한 이익을 제공하는 등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했다”고 밝혔다. 계열사에 특혜성 지원을 했던 현대차는 2006년 2월 경영실적 악화를 이유로 들며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10% 내리겠다고 했다. 상생협력추진위원회를 구성(2005년 5월)하며 ‘상생’을 외친 지 불과 7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LG전자 등 LG그룹 6개 계열사는 2008년 11월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을 선언했다. 6개 계열사는 협약식에서 “LG의 진정한 경쟁력은 ‘정도경영’을 기반으로 한 공정한 거래질서에서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LG전자는 이 시기에 대리점에 가격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며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갑의 횡포’를 부렸다. LG전자는 2007년 3월~2009년 1월 대리점에 일정 가격 이하로 노트북 컴퓨터를 팔지 못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억4100만원을 부과받았다.

SK건설은 2009년 6월 인천 청라지구 교량공사 경쟁 입찰을 진행하면서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단가 후려치기’를 해 1억3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SK그룹 차원에서 하도급 대금의 부당한 감액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상생협력을 선언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17일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 행위가 단순히 사회적 캠페인이나 대기업 스스로의 자정능력으로 달성되기는 어렵다”면서 “경제민주화 관련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기본적 규칙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분석했나

국민일보는 지난 두 달 동안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2003~2012년 공정위 의결서 분석 작업을 벌였다. 1차적으로 과징금 이의신청 사건 등 불공정 행위 제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의결서를 뺀 9764건을 추려냈다. 이 중 의결서 내 피심인 명단에 20대 그룹이 1곳이라도 포함된 사건은 669건이었다.

국민일보는 669건의 의결서를 그룹별, 불공정 행위 유형별 등으로 분류하고 자진신고감면제도(리니언시) 적용 여부를 가려냈다. 법인뿐 아니라 불공정 행위로 제재를 받은 자연인들의 처벌 이후 행적도 추적했다. 여기에 무소속 송호창 의원실을 통해 공정위로부터 지난 10년간 ‘과태료·과징금 체납 현황’ ‘기업 행정소송 제기 현황’ 등 자료를 추가로 입수했다. 국민일보는 이렇게 검증·공개된 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자료를 통해 20대 그룹의 불공정 행위 행태를 심층 분석할 수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특별취재팀>

경제부=김찬희 차장(팀장), 이성규·선정수·백상진·진삼열 기자

사회부=김동우·나성원·문동성·박세환·박요진·박은애·전수민·정건희·조성은·황인호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