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다 “내 눈! 내 눈!”… 도로의 ‘섬광탄’

기사승인 2012-10-24 2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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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다 “내 눈! 내 눈!”… 도로의 ‘섬광탄’

[쿠키 경제] 고광도가스방전식램프(HID) 전조등이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HID 전조등 불법 개조 차량까지 늘어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신문고나 국내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런 고광도 전조등 때문에 눈의 피로와 위험을 호소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HID 차량, 그대로 받아버리고 싶다”, “HID는 멋있을지는 몰라도 살인무기”라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경찰은 국내에 이런 전조등 장착 차량이 300만대가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HID 전조등은 일반 할로겐램프보다 3∼4배 밝고 수명도 길어 BMW 등 수입차와 현대 에쿠스 등 국내 고급차에는 기본 사양으로 장착되고 있다. 또 HID 개조가 유행처럼 번지며 사설업체를 통한 불법 HID 전조등 장착도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HID 전조등이 지나치게 눈부셔 반대 차선에서 주행하는 운전자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멀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성능연구소에 따르면 전조등의 눈부심 측정 결과 일반 램프가 438cd(칸델라·초 1개의 밝기)인 반면, 불법 HID는 최대 4만7578cd로 나타나 최대 100배까지 차이를 보였다. 합법적인 HID의 경우에도 눈부심 정도가 500∼600cd로 일반 전조등보다 밝았다. 시력회복 시간의 경우 일반 램프는 2.6초, 비규격 HID는 4.25초로 나타났다.

HID 전조등은 자동차 제동거리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속 80㎞로 달리는 자동차가 맞은편 자동차의 일반 전조등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는 109.4m에서 제동이 이뤄졌다. 반면 비규격 HID 전조등 차량 불빛에 의한 제동거리는 136.9m로, 정지 거리가 27.5m나 차이가 났다. 그러나 자동차 눈부심에 대한 별도 규제는 없는 실정이다.

불법 개조 차량까지 증가 추세다. 24일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자동차검사 안전기준 위반 전체 적발 건수의 24.6%가 HID 불법 개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전조등을 HID 전조등으로 개조하려면 자동차관리법상 해당 시·군·구청장의 구조변경 승인이 필요하다. 구조변경에는 자동광축조절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장치는 전조등 빛을 하향으로 조절해 상대방 차량에 영향을 덜 준다. 그러나 등화장치 위반 차량 대부분은 이 장치가 없었다.

전조등 불법 개조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통해서 전구와 안정기 구입이 가능하고, 일반 카센터에서도 쉽게 불법 개조를 해주고 있다. 장안동의 A공업사 관계자는 “얼마든지 개조가 가능하다. 10만원 이하로 해주겠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HID 전조등 설치는 세계적 추세인 만큼 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녹색교통 관계자는 “운전자들의 우려는 HID 전조등 구조가 아니라 운전자를 위협하는 과도한 눈부심”이라며 “이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