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존엄사 허용,찬반 논란

기사승인 2009-05-19 0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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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이 18일 연명 치료 중단 허용을 공식화한 것에 대해 병원 관계자는 “그동안 진료 현장에서의 판단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해 의료계를 대표해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시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 등 법적인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려면 미리 환자 주치의와 관련된 증빙 자료를 마련해 둬야 하는데 현재의 의료시스템에서는 이를 기대할 수 없어 앞장서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병원의 이번 조치는 서울고법 민사9부가 지난 2월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에서 밝힌 ‘회생 가능성이 없을 것,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가 진지하고 합리적일 것, 치료 중단 대상은 연명치료에 한정할 것, 반드시 의사에 의해 치료 중단이 시행될 것’ 등 4가지 연명치료 중단 요건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의 존엄사 허용은 앞서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이 ‘인간의 생명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취지로 서울 고법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4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경제적 이유를 내세운 가족의 뜻에 따라 치료를 중단한 의사들을 살인방조죄로 형사처벌한 전례도 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내과 김종진 교수는 “우리는 현행 법에 따라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존엄사를 공식 허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사회적, 법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문제로, 병원 자체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순표 전 조선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말을 못해도 내면적으로 겪을 고통, 또 가족들이 겪을 경제적,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소극적 안락사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다만 경제적 문제 등으로 악용될 여지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봉쇄하는 사전 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 전 교수는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 뿐만 아니라 사회적 종교적 법률적으로도 하자가 없도록 병원내 윤리위원회에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안전 장치 또는 스크리닝 시스템을 강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존엄사에 대해 기독교계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무엇보다‘사전의료 지시서’ 작성 제도가 제대로 실행될 만한 제반 기준 역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종화 경동교회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결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더불어 더 이상 자연적인 생명연장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의술적으로 죽음을 유보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황필규 국장은 “환자 본인이 서명을 한다고 해도 가족과 의사, 보호자간의 동의와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병원비가 드니까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등 강제된 존엄사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상은 샘병원 의료원장도 “돌이킬 수 없는 말기 암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과연 그 제도가 실행될 수 있는 각론 부분이 마련돼 있는지는 잘 살펴봐야한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서울대병원의 존엄사 공식화와 대법원 판례를 계기로 존엄사 논란에 종지부가 찍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