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의 커피 이야기] 생두의 잠재된 커피향 이끌어내는 ‘로스팅의 힘’

기사승인 2013-03-27 08: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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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의 커피 이야기] 생두의 잠재된 커피향 이끌어내는 ‘로스팅의 힘’

[쿠키 생활] 4월의 탄생석이자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 가장 흔한 자원 중 하나인 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탄소가 극한의 압력과 온도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거쳐 보석 중의 보석으로 널리 사랑받는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다.

커피는 이러한 점에서 다이아몬드와 닮은 점이 많다. 탄소처럼 농장에서 막 수확한 생두는 그저 딱딱하고 별 맛도 없는 평범한 씨앗에 지나지 않지만 정성이 담긴 특별한 과정들을 거쳐 우리가 마시는 원두커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런 향이 나지 않는 생두가 우리가 마시는 풍부하고 진한 향을 머금은 커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커피콩을 볶아서 마실 수 있는 원두 상태로 만드는 과정, '로스팅(Roasting)'을 거쳐야만 한다.


로스팅은 일반적으로 생두에 8~20분간 180~250?C의 열을 가해 생두 속의 성분들이 물리적, 화학적인 반응을 거쳐 커피 고유의 성질을 갖도록 하는 과정을 말한다. 연한 녹색의 생두가 200?C 이상의 온도 속에서 비로소 짙은 갈색 및 향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로스팅의 목적은 이처럼 열을 이용해 생두가 품고 있던 탄수화물, 지방, 유기산 등 여러가지 성분들을 가장 적절하고 조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로스팅을 통해 커피원두의 향기(Aroma), 상큼한 맛(Acidity), 중후함(Body), 향미(Flavor), 뒷맛(Aftertaste)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생두가 함유한 성분도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어떤 맛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로스팅의 정도는 달라진다. 실제로 로스팅 시 원두의 수확시기와 생산지, 계절, 습도 등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스팅 과정을 통해 원두가 비로소 그 맛과 향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커피의 매력을 한층 더해 주는 일임에 틀림없다.

로스팅은 테스트용으로 쓰이는 라이트 로스트에서 가장 강하게 볶은 이탈리안 로스트까지 일반적으로 볶는 정도에 따라 8단계로 나뉜다. 커피를 볶는 기계는 '로스터기(Roasting Machine)', 커피를 볶는 사람은 '로스터(Roaster)'라고 부르는데, 요즘에는 커피 마니아가 많이 생겨나 직접 커피콩을 사다가 집에서 로스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갓 볶은 커피의 신선함과 집안 가득 은은향 커피향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카페에서 먹던 그 맛을 내기 힘들겠지만 연습을 거듭하면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맛있는 커피를 볶아낼 수가 있다. 가정용 로스터기를 구비하고 있다면 손쉽게 로스팅을 할 수 있지만 오븐이나 프라이팬만으로도 가능하다. 오븐으로 커피콩을 볶는 경우 230?C로 맞춘 다음 커피콩이 원하는 색보다 약간 옅은 상태에서 꺼내어 창문 옆이나 서늘한 곳에서 커피콩을 식히면 된다. 프라이팬으로 커피콩을 볶을 때에는 한쪽 면이 바닥에 붙어 타지 않도록 일정한 방향으로 저어야 하며, 적당한 색으로 익었을 때 선풍기 등을 활용해 빨리 식혀야 한다.

또한 한번 로스팅을 한 커피콩은 보름 정도만 지나도 그 맛과 향이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로스팅 이후 보관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가정에서 직접 로스팅을 한 경우라면 반드시 원두를 진공 포장해 밀폐 용기에 담아두는 것이 좋다.

커피전문점을 지날 때 유난히 고소하고 진한 커피 향기가 여러분의 코를 자극한다면 분명히 로스터가 로스팅을 하는 중일 것이다. 만약 그 향기에 이끌려 커피전문점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면 앞서 이야기한 로스팅 과정을 한번 떠올려 볼 것을 권한다. 이런 과정을 알고 음미하는 한 잔의 커피는 무의미하게 맛보았던 이전의 커피 맛과는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최정화씨는 10년 넘게 커피 맛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이디야커피의 커피상품개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