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당신이 모르던 패션사 ② : 보이시 룩? 13세기에는 사형죄!

기사승인 2013-01-19 1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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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보이프렌드 룩’ 혹은 ‘매니시 룩’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들은 각각의 의미는 다르지만 어쨌든 남자의 옷을 여성이 소화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남자친구의 옷을 입은 듯한 루즈함, 혹은 남성의 매력을 여성의 것으로 재창조해낸 이 멋진 룩들은 이제는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이 멋진 것들도 ‘죄’였던 적이 있다. 대체 언제의 이야기일까.

13세기 후반.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성처녀 잔다르크(Jeanne d'Arc, 1412년 1월 6일 ~ 1431년 5월 30일)일 것이다.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는 이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불과 19세의 나이에 부르고뉴의 시민들에게 붙잡혀 현상금과 맞바꾸어 잉글랜드에게 화형당한다. 이 때 그녀의 죄목은 반역과 이단 혐의.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단 혐의다. 그 당시 잔다르크의 이단 혐의라 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는 ‘자신의 성을 거부한 죄’가 있다. 다름이 아닌 남장을 하고 전쟁에 임함으로서 하늘이 내린 성 역할을 거부하고 남들 앞에 당당히 서 사회에 혼란을 가져다 줬다는 것이다. 이에 잔다르크는 남자들이 가득한 전쟁터에서 수월히 지휘하기 위해, 혹은 강간을 피하기 위해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대의 여성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일이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여자들이 편의를 위해, 혹은 기타 이유로 바지를 입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사타구니를 가리는 옷을 입는 것은 속옷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낮은 신분의 천민들 뿐 이었다.

그리고 그 관념은 18세기까지 이어져, 18세기의 귀부인들은 드레스 밑에 입는 속바지, 즉 드로워즈 조차 밑위, 즉 배에서부터 사타구니를 지나 뒤로 이어진 엉덩이까지의 이음 부분이 이어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나 사타구니를 덮는 것은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던 그 당시의 드로워즈는,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흥미롭게 생겼다. 다름 아닌 짧은 바지의 밑위는 뻥 뚫려 있고, 허리 부분만이 신체 고정을 위해 붙어있는 것.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위생 관념이 생기기 시작하며 조금씩 패션도 변화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 천재 쿠튀리에 이브 생 로랑이 최초로 여성용 정장 바지를 만들어 ‘르 스모킹 룩’을 발표하며 이러한 패션의 흑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고맙게도(?) 우리 나라의 여성들은 서양의 여성들보다는 사정이 좀 많이 나은 편이었다. 남성의 바지처럼 대놓고 밖으로 입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고쟁이, 잠방이 등으로 불리는 여성용 속바지는 고대부터 보편화 되어 있었으며,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고’라고 하여 밖으로도 입고 다녔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밑이 앞과 뒤가 터져 밑위 부분이 좌측과 우측이 걸을 때마다 겹쳐졌다는 것을 보면, 밑위가 붙어있지 않았던 것은 서양과 비슷했던 듯하다.

어쨌든 무시무시한 잔다르크의 일화를 보면, 현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 듯 하다. 적어도 바지를 입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이 찬 겨울에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일이니 말이다. 이브 생 로랑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