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시간 20분도 채 안돼 임신도 순번제, 보건의료 근로환경 ‘열악’

기사승인 2014-10-31 08: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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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 20분도 채 안돼 임신도 순번제, 보건의료 근로환경 ‘열악’

[인터뷰] 정재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014년도 산별중앙교섭 및 지부 현장교섭 준비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등을 파악하기 위해 2014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재수(사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을 통해 현재 보건의료 현장의 근로자들의 근로여건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정 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실태 조사 기획 의도는 무엇입니까?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임단협 요구와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들의 노동조건, 노동환경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간에 얼마에 걸쳐 누굴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는지요?

-매년 진행되는 이 설문조사는 우리 노조에 소속된 160여개 보건의료사업장, 4만3000여명의 간호사, 의료기사, 시설관리, 조리배식 등 병원에 일하는 전체 직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목표로 진행합니다. 2014년 설문지의 배포 및 구성은 3월부터 5월까지 약 두 달간 진행되었구요. 올해는 1만8000여명의 소중한 의견들이 수거가 됐습니다. 매년 약 50% 정도의 설문수거율을 보입니다. 신뢰도 구간 95% 수준에서 +-0.45정도입니다.

어떤 내용을 주로 해 조사를 하셨는지요?

-설문조사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기초실태 및 의식조사 및 2014년 임단협 요구도를 기초로 이루어집니다. 설문은 연령, 성별, 직종, 동종기간 근속년수, 기혼여부 등 기초사항과, 임금 및 직장생활, 근로조건, 모성보호, 인력, 감정노동, 이직, 노동환경, 노조의 활동방향 등 50여개의 분류별 문항으로 구성됩니다. 말하자면 보건의료산업의 인구총조사와 같은 성격을 포괄하고 있는 셈이지요.

조사한 결과를 보고 노조에서 느낀 바는 무엇이신지요? 그리고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실 예정인지요?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이 갈수록 열악해 진다는 것을 매년 확인하고 있습니다. 올해 조사 결과에도 확인되었듯 충분치 못한 인력상황과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노동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있습니다. 타 직업군의 노동시간이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반면,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요. 제다가 불규칙한 3교대 근무로 인해 야간심야노동은 더욱 강도가 높아지고 있구요. 이러다보니 연차 사용은커녕, 식사시간마저도 20분이 채 안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심지어는 임신순번제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지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더군다나,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타 직업에 비해 심각한 감정노동을 해야 해서 시간이 갈수록 번아웃(소진)되는 경험들을 다들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정말 죽도록 일하는데, 그에 대한 보상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고, 이러다보니 직장생활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이직률은 높아지고 5년 안에 다들 그만 둬서 다시 인력부족의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거죠.

이러한 병원 사업장의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 등으로 인해 병원의 영리행위, 이윤추구의 경향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이러한 영리추구 행위가 가속화될수록, 인력은 비용으로 취급되어 충원 자체를 하지 않거나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이것이 다시 노동 강도의 심화로 이어지는 겁니다.

이런 인력 부족은 결국 의료서비스의 질과 환자안전에 악영향을 줍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 인력부족으로 인해 의료사고의 위험이 늘어나거나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상당히 높게 나오는 것으로도 확인이 가능하죠.

이처럼 보건의료산업에서의 인력확충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보건의료노조는 인력 충원과 이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우리 노조의 핵심 사업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몇 해 동안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책방향에서는 보건의료산업 50만개 일자리 창출 정책과 같은 것이라던가, 보호자 없는 병원사업, 보건의료산업 인력특별법 제정과 같은 사업들이죠.

얼만 전 한 조사에서는 보건의료 분야가 앞으로 유망한 직업군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와 보도가 된 바도 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실태조사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설문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결국 인력충원의 과제를 어떻게 적절히 수행하는가 하는 것인데요.
우리의 간호 인력은 OECD 국가 평균보다 3분의 1, 또는 2분의 1밖에 되지 않아요. 그만큼 절대적인 인력 부족 상태에 있는 겁니다. 이처럼 절대적 인력부족을 극복하는 게 보건의료산업에서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보건의료산업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는 것이 국책연구기관들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3년 보고나, 보건산업진흥원 연구에서도 국민소득 증가나, 저출산?고령화, 첨단의료기술의 발전 등의 다양한 메가트렌드로 의료서비스산업은 미래 국가경제를 견인할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더불어 시장 확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크고, 수요증가에 따라 연관 산업에서의 직간접 고용증대 효과가 높다는 거죠. 일자리 창출은 민간보다 정부가 나서는 것이 좋고, 특히 보건?교육 등 복지 분야 정부 지출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주요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고용정책에서의 정부 정책 접근이 근본적으로 잘못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 등 의료민영화 정책을 내세우면서 보건의료산업 분야에서의 고용을 늘이겠다고 한다거나,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대표 직종으로 간호사 직을 꼽는 등 정책들을 내 놓고 있죠.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정책대로 추진될 경우 늘어나는 고용은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와 같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의료 코디네이터와 같은 의료서비스 상품을 판매하는 고용이 늘어나는 겁니다. 예컨대 병원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각종 부대사업이나 자회사 운영을 위한 직종들이 늘어나는 거죠. 한편, 실제 영리병원의 천국인 미국에서 영리병원이 늘어나자 간호직종은 인력이 줄어들고 의료 코디네이터와 같은 직종은 늘어나더라는 사실은 확인 된 바 있어요.

결국 정부 정책대로라면 현재 부족한 보건의료산업에 꼭 필요한 간호인력, 의료 인력은 병원의 영리추구 욕구가 커지게 되면서 오히려 줄어들게 되고 의료코디네이터와 같은 돈벌이 인력만 잔뜩 늘어나게 되겠죠.

게다가 절대 부족으로 있는 간호 인력을 시간선택제의 유망직종으로 보고 이를 확대하겠다는 건데, 결국 간호 인력의 총량을 늘이기보다, 일자리 쪼개기를 통해 질낮은 일자리를 양산해서 표면적인 인력의 숫자만 늘이겠다는 꼼수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보건의료 근로자도 병원 규모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르러지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의료자원의 양극화 현상도 오래된 일입니다. 인력은 부족하고 그에 대한 보상은 충분치 않다 보니, 대형병원, 수도권으로 인력이 집중되는 양상이죠.

앞으로는 어떤 실태조사를 어떤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실 생각이신지요?

-지속가능한 인력충원을 위한 국가적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실태조사는 꾸준히 필요할 것으로 생각들고, 확인된 것처럼 보건의료산업에서 강화되고 있는 노동 강도의 원인, 예를 들면 병원의 영리추구 행위와 노동조건의 변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문들이나, 노동환경의 변화에 대해 계속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밤 근무, 휴식휴게시간, 성과주의인사제도, 조직 문화와 같은 것들이죠. 한편으로는 유사산, 임신순번제 등 이미 심각한 문제로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더 구체적인 조사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 근로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와 사측인 병원이 어떤 일들을 해야할 까요?

-보건의료산업의 인력확충은 대명제입니다. 이를 위해 시간선택제와 같은 꼼수 정책 말고, 보건의료산업의 인력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정책적 마련이 절실합니다. 그게 우리 노조가 요구하는 50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특별법 제정인데요. 정부는 이러한 정책들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움직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나아가서는 보건의료산업을 영리추구의 아전투구의 장이 되지 않도록, 의료인이 의료인의 사명을 가지고 보람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 등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사용자들도 마찬가지죠. 병원 인력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 환산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 몸집만 부풀리는 것 말고 질을 높이는 투자를 인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