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북한군 개입설 근거 없다”…보수의 내분인가, 선긋기인가

기사승인 2013-05-20 20: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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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북한군 개입설 근거 없다”…보수의 내분인가, 선긋기인가

[쿠키 톡톡] 보수의 내분인가, 선긋기인가. 대표적인 보수논객 조갑제(68)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채널A등 일부 종합편성채널이 제기한 북한군 ‘5.18광주민주화운동 개입설’을 ‘허위’이자 ‘날조’라고 비판했다. 같은 보수 세력의 논객인 변희재씨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과 대조된다.

조갑제 “광주 희생자를 기억하라”

조갑제 대표는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에 “‘대대규모 북한군의 광주개입’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광주사태를 보지 않고 상상하는 이들 중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믿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조씨는 글의 첫머리에 ‘5.18에 북한이 개입됐다’고 수년 전부터 주장해온 한 탈북자의 발언을 소개한 뒤 이 주장에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도 ‘북한군 광주 개입설’에 반박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이유는 11가지에 달했다. 본인을 비롯해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기자들이 수백 명 가까이 되지만 그 어떤 기자도 북한군의 개입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조씨는 193명의 광주사태 사망자 중 무장시민들에 의해 죽은 군인은 단 7명으로 대규모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순 없었을 거라고도 주장했다. 조씨는 “이념적 입장에서, 또는 희망적 관점에서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광주사태 당시 시위대는 반정부적이었지만 친북적이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광주사태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로 비춰질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조갑제도 종북”

하지만 이 글에는 조갑제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댓글이 더 많이 달렸다. “이게 사실로 판판날 경우 갑제의 수명도 끝날테니 당연히 이래야겠지 하지만 너무 불가론의 당위성이 크다. 북한넘들이 김대중이가 어데. 갑제의 생각 처럼 움직일 넘들인가. 거기다 실제 내려왔다는 북한군의 증언은 모조리 신빈성이 없단다 ㅎㅎ”“난 남한의 모든 크고 작은 소요엔 반드시 북의 개입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4.19의 촉발도 마찬가지고 5.18도 같은 생각이다.” 이들은 조갑제의 글을 “분탕글”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편인줄 알았는데 내부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조갑제씨도 ‘종북’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살다 살다 조갑제 보고 친노종북이라니”라며 황당하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조갑제는 5.18 당시 종군기자였다. 광주에 직접 있었던 사람 말도 못 믿냐”는 반응도 많았다.
조씨를 향해서는 “조갑제가 5.18을 부정하는 순간 자기 자신의 인생여정 자체가 부정되는 꼴”이라는 의견부터 “이분 이제 변희재한테 종북소리 들으실 듯”, “자업자득 내가 괴물을 낳았어”라는 자조 섞인 풍자까지 수많은 댓글이 줄을 이었다.

“사법적 대응”에 후다닥 삭제 소동도

그러나 조갑제는 조갑제다. ‘갑제옹’으로 불리며 보수적인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데올로그’로 추앙받다시피하던 조갑제의 광주 민주화운동 북한 개입설 비판에 당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일간베스트에는 이런 글도 올라왔다.

“북한과 엮을 필요가 대체 뭐냐. 어설픈 증거 들이밀며 오히려 좌좀들한테 공격의 빌미만 주는거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역습해도 힘든 상황에서 기존에 팩트 가지고 열심히 논쟁 하던 사람들을 왜 북한군 개입 사실 같은 불명확한 정보 안겨서 같은 진영 사람들 좌좀들 조롱꺼리로 만드냐고”“북한이 개입하고 싶었고 개인 못한걸 후회했을 수는 있겠지만, 개입했다는 주장은 갑제옹 말대로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 개입설 등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양 퍼트리는 이들은 그러나 조갑제씨의 반박글이 아니라도 입지가 극히 위축되고 있다.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은 20일 오전 확대 간부회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5·18을 왜곡하는 글들을 자진 삭제하지 않을 경우 사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일베 회원들이 강 시장의 발언에 불만을 품고 마구잡이식 비난글을 연이어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5·18 폄하·왜곡 행위는 물론 강 시장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글에도 법적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경고가 나가자 일베 사이트에선 이날 하루에만 100개 이상의 글이 삭제됐다.

무분별 방송 종편도 비난 휩싸여

왜곡된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 종합편성채널도 비난을 받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첩이 했다고 민주주의 역사를 왜곡하는 방송에 어떻게 출연하겠나. 우리가 출연하면 또 얼마나 지탄을 받겠느냐.”

민주당 재선 의원은 20일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실체가 된 만큼 이를 인정하고 잘 협조해보자고 해서 출연했는데 자존심이 상해 당분간 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격앙된 목소리였다. 요즘 이렇게 말하는 야당 의원이 한 둘이 아니다. 민주당이 종편에 잔뜩 화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앞두고 ‘북한군 5·18 개입설’을 방영한 TV조선과 채널A때문이다.

지난 13일 TV조선의 첫 방송 후 15일 채널A까지 가세하자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민주당은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18일을 거치면서는 비판성명이 봇물 터지듯 잇따르고 있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된 이날 당 지도부회의에선 “종편 출연 재고”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정신을 훼손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기도에 대해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엄중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법적, 정치적, 행정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원식 최고위원도 “TV조선에 심각한 유감을 표하며 역사왜곡을 사과하지 않는다면 다시 TV조선 출연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노웅래 최민희 홍영표 홍종학 의원은 TV조선, 채널A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며 ‘강력한 제재’를 요구했다. 배재정 대변인은 ‘5·18 민주화운동 왜곡 대책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이쯤 되면 TV조선, 채널A을 향해 민주당이 전방위 압박에 나선 셈이다.

2008년 말 미디어법 강행 통과에 반발해 종편 출연금지 당론을 정했던 민주당은 지난달초 5년 만에 출연 금지 빗장을 해제했다. 하지만 한달 남짓 만에 종편과 다시 틀어진 형국이다. 당내 상황도 덩달아 묘해졌다. 종편 출연금지가 대선 패배의 한 요인이라며 출연을 부추긴 당시 비주류 의원들도 당혹해하고 있다.

채널A 내부에서는 일부 기자들이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며 내부 비판을 하고 있다.

도를 넘은 주장, 익명 뒤에 숨어 조롱과 냉소를 거듭하던 이들이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궁지에 몰리고 있는 셈이다.

백민정 기자, 전수민 정건희 수습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