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作 ‘상록수’, 결혼식 축가에서 ‘盧 추모곡’으로

기사승인 2009-05-29 19: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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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국민장 기간인 지난 일주일 동안 대한민국은 대중가요 ‘상록수’의 공화국이었다. 그 선율은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이어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에서 가수 양희은씨의 열창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대낮이었지만 캄캄한 밤보다 어둑했을 추모객들의 마음으로 스며든 ‘상록수’의 작사·작곡가 김민기씨(58)는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서울 대학로 극단 학전 사무실에 출근했지만 “‘상록수’와 관련한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몇 마디 추모의 말보다 오히려 침묵을 택한 그가 ‘상록수’를 작곡한 것은 1977년이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 미대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71년 그는 서울 신정동에서 야학을 시작한 데 이어 인천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에 참가해 빈곤층 청소년들의 연극을 지도했다. 그러다 75년 군 당국에 의해 강제 입대한 그는 최전방 근무를 마치고 제대한 77년 부평으로 내려가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자들이 결혼식장을 빌릴 돈이 없어 공장에서 합동 결혼식을 하게 되었고 그는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선물로 ‘상록수’를 작사 작곡해 결혼식에서 직접 불러 주었다. 흔히 ‘상록수’를 투쟁의 노래나 선구의 노래인 줄로 알고 있지만 그 시발점은 축가였다.

스물여섯살의 섬세하고 문약해 보이는 한 청년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내뱉은 조용한 목소리는 그 즉시 대중가요의 판도를 뒤흔들었지만 곧 제3 공화국 정권에 의해 신화로 사라져갔다. ‘상록수’는 금지곡이 되었다. 김민기의 폐부를 꿰뚫는 가사와 선율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비판과 도전의 메시지를 대중가요계에 또 하나의 화두로 던져놓았다. 자의든 타의든 간결한 멜로디에 얹혀진 시들은 시인을 신화적인 사회 운동가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상록수’는 98년 7월 골프선수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신발을 벗고 물속에서 골프공을 쳐내는 모습으로 당시 IMF에 빠져 고생하는 국민을 위로하고자 제작된 공익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자신의 캠페인송으로 ‘상록수’를 비롯,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사랑으로’를 즐겨 불렀다. 직접 통기타를 치며 노래들을 부를 때면 원곡의 분위기에 고인의 굴곡졌던 인생사가 얹혀지며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감동이라는 두 글자를 아로새기곤 했다. 이날 노제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상록수’가 노 전 대통령의 노래로 각인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음악동호회 ‘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의 황정씨는 “김민기의 노래들은 미학과 저항성을 따지기 이전에 당시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르는 저항적 성향의 가요들에 미쳤던 영향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하나의 노래가 우리 나라에서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아침 이슬’을 비롯한 김민기의 노래들이 보여주었고 또한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고 평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기자
chju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