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전우회, 장애인단체인가 중소기업인가

기사승인 2016-03-15 00: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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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전우회, 장애인단체인가 중소기업인가

[쿠키뉴스=정진용 기자] 강남구에 거주하는 김모(30) 씨는 지난달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사다가 낯익은 이름을 보게 됐다. 군복을 입고 정치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으로 익숙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종량제 봉투 제조원으로 적혀있었던 것이다. 고엽제전우회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친목 도모와 상부상조, 자활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회원 수는 2015년 12월31일 기준으로 후유증, 후유의증, 2세 환자까지 포함해 14만1818명에 이른다. 김씨는 “뉴스에서만 보던 고엽제전우회가 이런 사업도 하고 있는 줄 전혀 몰라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종량제 봉투 제조·판매는 고엽제전우회가 하는 수익사업의 일부다. 현재 강남구·금천구·성동구·관악구·구로구·금천구 등이 고엽제전우회에서 만든 종량제봉투를 구매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구청 관계자는 “서울시 구청 대부분이 고엽제전우회 봉투를 구매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종량제 봉투를 모두 고엽제전우회에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서도 같이 구매한다”고 설명했다,

국가 보조금 지급, 수익사업 허용…지난해에는 중소기업으로 간주

고엽제전우회는 지난 2009년부터 수익사업이 법적으로 허용됐다. 2012년 기준으로 고엽제전우회는 15개 품목에 사업장수는 15개이며 이익금 24억100만원, 이익률 3.7%를 기록했다. 고엽제전우회에서 만든 종량제 봉투는 나라장터(국세청에서 운영하는 국가 종합 전자 조달 서비스. 공공분야 물품, 시설, 용역 등에 대한 입찰과 개찰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도 포함돼 있다. 공공기관은 의무적으로 나라장터에서만 파는 물건을 사용해야 한다. 고엽제전우회는 나라장터에서 비영리사회단체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 외에도 LED 투광등기구, 교통신호등, 교통신호 제어기, 의료용 살충제, 재제조 토너를 등록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엽제전우회의 수익 사업을 더욱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고엽제전우회를 중소기업으로 간주하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법 개정안이 11월11일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법은 ‘국가유공자 등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상이자 단체와 ‘장애인복지법’ 제63조에 따른 장애인복지단체 또는 장애인을 위한 단체 등은 중소기업자로 간주해 공공기관의 장의 구매촉진과 판로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이전까지는 고엽제전우회를 중소기업자로 간주하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는 고엽제 후유의증환자, 고엽제 후유증환자 및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로 구성된 사실상 장애인 단체이므로 중소기업자로 인정, 지원을 받도록 해주자는 것이 법안 발의 취지다.

고엽제전우회는 수익 사업 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매년 지원비도 받고 있다. 2016년 국가보훈처의 예산안에 따르면 고엽제단체 등 지원비는 27억원이다.

법적으로 정치활동 금지…고엽제 전우회 “‘특정 정당 지지한다’고 안했다”

고엽제전우회는 법으로 금지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고엽제 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는 고엽제전우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4년 10월 공개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고엽제전우회 서울 지부는 각 지회에 지시를 내려 세월호 ‘맞불 홍보’, 교육감직선제 폐지 운동, ‘육영수 여사 40주기 추모식’ 등의 행사에 회원들이 참석했다. 또한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올해 2월3일에는 국가 보훈처가 업무협조 공문을 14개 보훈단체에 보내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 운동’에도 동원됐다. 입법촉구 서명운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길거리 서명’에 동참한 이후 국무총리와 장관들에 이어 기업들에까지 참여 독려 공문이 돌려지는 등 관제 서명운동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이전까지 기업이 아니어서 지자체 입찰경쟁에서 불리했기 때문에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법 개정을 우리가 요청했다”며 “종량제 봉투 사업은 개정안이 통과되기 이전부터 해오던 사업으로 서울에서는 25개 구청 중 15개 구청과 수의 계약을 했으나 이익이 거의 없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각종 집회 참가에 대해서 “‘특정 정당의 정책이 좋아서 지지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활동이 아니다”라며 “국민으로서 나라가 혼란스럽고 잘못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월호 ‘맞불 홍보’에 대해서는 “우리처럼 전쟁하다 나라 바쳐 죽은 사람은 한달에 30만원 받는데 놀러가다 죽은 사람에게 10억원 준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정치 활동이 아닌 국민으로서 안보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국가 보훈처는 지난 2014년 국감에서 고엽제전우회가 구급차량을 불법개조 해 정치개입 집회 등에 동원한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이를 알면서도 내버려두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아람 변호사는 “그동안 고엽제전우회가 참여하거나 개최했던 모임들을 감안해보면 법 조항 저촉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며 “법에서 규정하는 ‘정치활동’이라는 용어가 굉장히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집회가 시민의 기본권인 만큼 명확히 위법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jjy4791@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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