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甲은 乙을, 乙은 丙을… 알바몬 광고 논란으로 비친 ‘내리갑질’의 사회

기사승인 2015-02-06 15: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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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가 갑이다’ 광고 캡처

[쿠키뉴스=김민석 기자] ‘갑질’ 논란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을과 을’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바몬이 병의 입장을 대변하는 광고를 내놓자 을들이 발끈한 겁니다.

알바몬은 지난 1일 ‘알바가 갑(甲)이다’ 시리즈 광고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TV에 방영했습니다.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가 시간제 근로자들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최저시급’ ‘인격모독’ ‘야간수당’ 문제를 지적해 화제를 모았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마땅히 하소연 할 곳 없던 전국의 500만 알바생들은 “통쾌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법을 잘 지키자’라는 내용을 담은 이 광고가 소상공인들에겐 한없이 불편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PC방 업주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콘텐츠조합)은 알바몬에 광고 중단과 공개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소상공 업주들이 최저임금과 야간수당을 지키지 않는 악덕 고용주로 오해하게 만드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분노와 상실감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콧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이미 일부 업주들은 알바몬 사이트 회원을 탈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소상공인을 발끈하게 만든 것일까요.

‘최저시급’ 편에서 혜리는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입니다. 쬐끔 올랐어요. 쬐끔. 370원 올랐대. 이 마저도 안 주면 히잉”이라고 애교 있게 말합니다. ‘인격모독’ 편에선 “알바를 무시하는 사장님께는 앞치마를 풀러 똘똘 뭉쳐서 힘껏 던지고 때려 치세요”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방영이 중단된 ‘야간수당’ 편에서는 “사장님들, 대한민국 알바들의 야간근무수당은 시급의 1.5배. 안 지키시면 으~응. 협박 아님. 걱정돼서 그럼”이라고 애교 섞인 대사를 이어갔습니다. 전체적으로 알바생들이 흔히 겪는 부당한 처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알바몬은 가장 항의가 거셌던 ‘야간수당’ 편에 대해 인터넷에서 삭제 조치하고 TV 방영을 중단했습니다. 15초라는 광고의 한정된 시간상 5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야간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긴 법적 조항을 일일이 설명하지 못한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최저시급’과 ‘인격모독’ 편은 계속 방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알바몬 측은 “이번 광고는 알바생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알리고 근무여건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라며 “대표적 구인구직 사이트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시간제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예전부터 다양한 캠페인 성격의 광고를 벌여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야근수당’ 편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나머지 두 편은 알바생에게 최저시급을 챙겨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온 업주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이 악덕 고용주가 아니라면 발끈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인터넷에서도 반발하는 업주들에 대한 조롱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 아니냐” “최저임금도 줄 능력 안 되면 사업을 접어야지” “그렇게 알바생 줄 돈이 아까우면 직접 일하면 될 것을” “찔려서 발광하는 것으로 보인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네요. 또 “악덕 업주들이 알아서 탈퇴해주니 자체 필터링에 이미지 상승까지. 알바몬 완전 개이득(큰 이득)”이라거나 “앞으로 청정구역 알바몬만 이용하면 될 듯” 등의 댓글이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한번쯤은 알바를 해봤을 젊은 네티즌들이 비꼬고 나선 건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소상공인들은 법을 어겨가며 알바생들을 착취하려 들 것이 아니라 비싼 임대료, 권리금, 가맹비를 떼 가는 프랜차이즈 업체 등 상대적 갑들에게 저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힘없는 을들이 더 힘없는 병들을 쥐어짜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업주들에 대해 신고운동을 벌이겠다”는 목소리도 냈습니다.

‘내리갈굼’이라는 군대 속어가 있습니다. 장교가 부사관을 나무라면, 하사는 병장을, 병장은 일병을, 결국엔 가장 힘없는 이병이 가장 크게 혼이 나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혹행위의 정도가 후임으로 내려올수록 세지기 때문에 없어져야 할 대표적인 군대내 악습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야말로 ‘내리갑질’의 사회인 것 같네요. 군대에서 들었던 ‘내 밑으로 다 모여’란 말이 생각나 씁쓸합니다. idea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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