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군도’ 강동원을 위한 영화? 하정우의 내공이 더 빛났다

기사승인 2014-07-28 15: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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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군도’ 강동원을 위한 영화? 하정우의 내공이 더 빛났다

조선 철종 13년,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간다. 잦은 자연재해, 배곯는 기근과 관의 착복까지 겹친 탓이다. 이 틈을 노려 나주 대부호의 서자이자 조선 최고 무관 출신인 조윤(강동원)은 양민들을 수탈한다. 사채업자 저리가라다. 어느새 그는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백정 돌무치(하정우)는 소 돼지를 잡아 근근이 살아간다. 조윤에게 살인청부 요청을 받고 망설이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불태워진 뒤 군도에 합류했다. 이후 지리산 추설의 신거성(新巨星) 도치로 거듭난다. 도치를 필두로 군도는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위해 조윤과 한 판 승부를 벌인다.


영화는 돌무치와 조윤의 대결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흔히 보던 왕실이나 지배층 내부의 권력다툼은 아니다. 백성의 시각에서 조선을 그렸다. 탐관오리들의 학정이 판치던 세상을 의적 떼인 군도들이 뒤집을 때 통쾌하다. 줄거리와 연출이 퍽 신선하진 않지만, 액션 웃음 감동 세 박자가 잘 버무려졌다.

하정우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고, 강동원의 액션은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했다. 특히 하정우는 망가지는 것도 불사하고, 자신을 내려놓는다. 외형적인 ‘멋짐’은 이미 포기했다. 흉터 가득한 빡빡 머리와 꾀죄죄한 몰골은 호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멋있다. 도살할 때 사용하는 식칼을 양 손에 쥐고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뽐내는 동시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내뱉을 때 순박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오늘 네 간땡이 안주 삼아 쇠주 한 잔 해야 쓰겄구만.”

조윤보다 10살이나 어린 설정도 재밌다. 돌무치가 “내가 열여덟 살이란 말이여”라고 말할 때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카리스마에 장난기를 겸비한 인물이지만 가볍지 않게 표현했다. 폭넓은 연기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조윤은 서자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넘치는 인물이다. 그래서 매정한 서늘함과 묘한 슬픔이 공존한다. 차가우면서도 사연 있어 보이는 눈매, 강동원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어찌 보면 그에게 딱 맞는 옷처럼 보인다. 상투 튼 머리가 잘라져 길게 늘어뜨려질 때 여성 관객 여러 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자신의 과거사에 대한 분노와 설움이 끝내 폭발하지만 잘 살려내지 못한다. 마지막 왜 갑자기 동생의 아기를 안고 싸우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의 부성애. 이걸 설명하려면 더 많은 장면이 필요한 듯 했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배우들도 대거 등장한다. 마동석, 조진웅, 김성균, 이경영, 김재영 등은 개성 강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유일한 여성으로 저격수 역할을 하는 명궁 마향(윤지혜)의 재발견도 반갑다. 드라마 다모(茶母) 에서 증명된 남심을 사로잡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중간 중간 나오는 내레이션은 몰입을 방해한다.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이다.

윤 감독은 시사회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오락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윤 감독 말대로 오락 영화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뭉치면 백성이요, 흩어지면 도둑”이라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지만 ‘김치 웨스턴’으로 끝났다. 뜬금없는 웨스턴 풍의 배경음악과 흙먼지를 날리며 말을 달리는 장면 때문인지 언뜻 영화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쉽다. 137분. 15세 관람가. 상영중.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