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마음이 아파 못 보겠다” 日서 TV광고가 중단된 사연

기사승인 2014-07-07 16: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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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달 전이었습니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남성이 보내는 문자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에 남색 양복을 말끔하게 입고 있었는데요. 메시지 내용은 이랬습니다.

“방금 끝났어요. 이번엔 꼭 합격해서 효도 할게요.” ‘면접 끝나고 부모에게 문자를 보내는구나’라는 생각에 난생 처음 본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화이팅’하고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남성이 다시 생각난 건 일본의 한 TV광고 관련 소식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마이니찌신문은 인터넷판에 “최근 일본 SNS에서는 도쿄가스 광고 ‘어머니의 성원(母からのエ-ル)’ 편이 화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2월 첫 방영 후 “취업준비생의 딱한 모습을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 마음이 아프다”는 하소연이 이어졌고, 결국 한 달도 못 가 중단된 광고입니다. 그런데 수개월 후 “감동적이다” “방송에 다시 내보내달라”는 의견과 함께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겁니다.

한 여성 취업준비생이 주인공입니다.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이력서를 쓰거나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게 일과입니다. 오는 문자메시지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야속한 말만 적혀있습니다. “나 합격”이라는 친구의 문자메시지에 한숨을 쉬며 축하답장을 보내고, 지하철 건너편 자리에 면접관이 앉아 있는 환상이 보일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한 번은 최종면접을 잘 봤다는 확신에 설레는 마음으로 케익을 사들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하필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불합격 문자메시지가 옵니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놀이터 그네에 멍하니 앉아있는 이 여성. 기다리던 어머니가 나와 “역시 여기 있었네”라며 등을 밀어주자 꾹 참았던 눈물보가 터집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해 준 저녁식사를 먹고 다시 힘을 냅니다.

이 광고에 “속상해 보기 싫다”는 푸념이 이어졌고, 광고주가 방영중단이란 ‘배려’를 해야만 했던 건 그만큼 일본의 취업난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취업난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고민입니다. 정치인들의 입에선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는 외침이 단골로 나왔지만 나아진 건 없습니다. 사람들은 “환경미화원 채용에 해외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지원했다”는 뉴스에도 더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고용시장을 보여주는 자료와 기사들은 차고 넘쳐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이 듭니다.

7일에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건설근로자 중 20대 비중이 2009년(5.5%)보다 두 배 가까이(10.2%) 증가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간하는 퇴직공제 통계연보인데요. 갈 곳을 잃은 젊은 인재들이 공사장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의 광고 중단 사건을 그저 다른 나라 해프닝이라며 웃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지하철 남성은 합격했는지 궁금해지네요.

* 도쿄가스 광고 ‘어머니의 성원’ 보기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