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페어웰’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한 온 가족의 거짓말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1-27 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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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어웰'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페어웰’의 시작 전 “실제 거짓말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독특한 문장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이야기입니다’나 ‘실제 사건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도 아니고 ‘실제 거짓말’이라니. 영화가 시작하고 초반부를 지나며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문장 그대로 이 영화는 ‘거짓말에 기반한 이야기’이고, 그건 룰루 왕 감독이 실제 겪은 일이다.

‘페어웰’은 뉴욕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빌리(아콰피나)가 할머니(자오 슈젠)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평소에도 자주 통화하지만 만날 수 없어 애틋했던 할머니의 소식을 들은 빌리는 당장 중국으로 향하고 그곳에선 사촌 동생의 갑작스런 결혼식을 핑계로 친절과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할머니에게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암에 걸린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중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란 얘기에 빌리는 혼란스러워한다.

‘페어웰’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와 가족, 삶의 의미를 짚는다. 빌리의 시선에서 낯설었던 베이징의 거리와 건물들은 점점 친숙해지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가족의 결정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가족 전체가 공모한 거짓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 이어진다. 영화는 기승전결로 이뤄진 극적인 상승-하강 구조를 따라가는 대신, 빌리 가족의 일상 속에 들어가 그저 지켜보는 형식을 취한다. 점점 마음을 열고 고향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느끼는 빌리처럼 관객들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안식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 '페어웰' 스틸컷

가족의 착한 거짓말 외에도 극장을 나오며 되새기게 되는 소소한 장면들이 많다. 고향인데도 타인처럼 느껴지는 이민자의 정체성부터, ‘미국이 좋냐, 중국이 좋냐’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순간, 가짜 결혼식의 준비 과정과 할아버지의 납골당에서 이어지는 대화 등은 어깨너머로 실제 중국의 한 가정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빌리는 낯선 고향에 점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자신이 중국인임을 깨달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적의 경계를 넘어 가족의 모습에서, 가족에 비치는 모습에서 몰랐던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에 가깝다. 그건 빌리를 온전하게 품는 가족의 부드러움과 다정함 덕분이다. 영화가 관객을 설득해내는 지점도 그와 비슷하다.

‘페어웰’은 룰루 왕 감독이 자신의 첫 영화인 ‘러브 인 베를린’을 작업하던 도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첫 영화를 완성하기도 전에 두 번째 영화를 기획한 룰루 왕 감독은 지난해 ‘페어웰’로 ‘기생충’(감독 봉준호)을 제치고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시상식에서 33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실제 거짓말을 다룬 영화가 거짓말 같은 실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