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윤여정

인세현 / 기사승인 : 2021-01-23 08:00:02
- + 인쇄

▲사진=영화 ‘미나리’ 스틸컷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배우로 살아온 인생만 55년. 배우 윤여정의 전성기는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다. 윤여정은 21일(현지시간) 제10회 미국 흑인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로 들어 올린 14번째 트로피다. 이 영화로 미국 내 여러 시상식에서 연이어 수상 소식을 전한 윤여정이 한국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본상 후보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다.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딸 모니카(한예리)와 사위 제이콥(스티븐 연)의 부탁으로 어린 손주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는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았다. 가족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퍼주는 한국식 정서와 영어를 하지 못해 빚어지는 어린 손주와의 미묘한 갈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주목받는 것은 영화 속 연기뿐만이 아니다. 오는 3월 한국 개봉을 앞둔 ‘미나리’를 아직 보지 못한 국내 관객들이 먼저 접한 건 미국 홍보 당시 돋보인 윤여정의 말솜씨다. “오래 일한 배우로서, 독립영화인 ‘미나리’가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것을 잘 알아서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윤여정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 것은 선댄스 영화제 현장의 관객만이 아니었다. 유튜브를 통해 공유된 이 순간을 함께한 한국의 관객들도 윤여정식 농담에 찬사를 보냈다. 

윤여정의 화법은 예능에서도 빛을 발했다. 지난 8일 문을 연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 한옥 숙박업소의 사장님으로 변신한 윤여정은 외국 손님들을 직접 응대했다. 전작인 ‘윤식당’서 요리를 담당했던 그가 이번엔 주방 밖으로 나와 손님들을 직접 맞이하고 능숙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며 프로그램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외국인 손님에겐 낯선 음식인 오징어 먹물 부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손님이 “오징어 먹물을 먹냐? 오늘 밤 우리를 독살하려는 것은 아니냐?”고 농담을 건네자 “오늘은 아니고 내일이나, 체크아웃 후에는 장담하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식이다. 윤여정의 영어 인터뷰를 편집한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30만 건을 넘어섰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윤여정을 입력하면 ‘영어’가 뒤따라 붙는다. 

이 같은 전성기는 직업적인 치열함을 삶의 여유로 풀어내는 그의 태도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윤여정은 배우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과 역할에 도전하는 치열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과거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나로 있는 한 계속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부담이나 욕심은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하며 “내가 나로 있는 한은, 기억력이 있고 대사를 외울 수 있는 한은 배우라는 옷을 입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작업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미나리’를 선택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작품 밖 윤여정은 가벼운 대화로 금세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연장자나 선배로서 대우를 앞세우는 대신 먼저 말을 건네고 주변을 웃게 한다. 경험이나 경력을 권위 아닌 농담으로 치환하는 그의 화법은 닮고 싶은 멋진 어른의 것이다. 다만 윤여정은 과거 인터뷰서 “멋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에 손사래를 쳤다. 그 대신 그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은 따로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을 가리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아픔과 치열함을 많이 겪어서 그럴 거예요. 한 번 일을 그만뒀다 다시 시작하면서 특히 그랬죠. 나는 그냥 멋있는 사람보다 재밌는 여자 웃기는 여자 이런 소리 듣고 싶지. 다른 거 싫어요.”(2016년 영화 ‘계춘할망’ 개봉 기념 쿠키뉴스 인터뷰 중)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