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작품 훔쳐 문학상 휩쓴 그 남자...리플리증후군일까?

전미옥 / 기사승인 : 2021-01-23 0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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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보다 겉모습⋅타이틀 중시하는 세태 반영...'사회병리현상' 분석도

김용래 특허청장이 지난해 10월15일 서울 강남구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열린 ‘제2차 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식에서 손모씨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다른 작가가 쓴 문학 작품을 그대로 표절해 다수의 문학상을 받고, 온라인에서 접한 타인의 아이디어를 특허청 공모전에 출품해 ‘특허청장상’을 수상하는 등  손모씨의 역대급 표절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거짓말과 관련된 성격장애로 알려진 '리플리증후군'이 주목된다. 

리플리증후군은 미국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인격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거짓이 탄로날까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나 사기꾼과 달리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리플리증후군의 특징이다.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성격장애 환자에서 증상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알려진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리플리증후군은  실제가 아닌 허구를 실제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병적인 증상을 이르는 말이다. 무의식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를 꾸며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행태"라며 "그 자체로 병이 아닌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다. '신데렐라 증후군', '코로나 블루'등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 성격장애가 A,B,C 3가지로 분류되는데 리플리증후군은 클러스터 B타입에 속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격장애 B타입에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계선 경격장애, 연극성 성격장애 등이 포함돼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진료현장에서 리플리증후군에 해당하는 성격장애 환자는 다소 드문 편이다.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해서 모두 정신병적 문제를 갖고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손모씨 또한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리플리증후군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병적일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권 교수는 "진료현장에서 리플리증후군을 보이는 환자는 흔하지 않고 드문 편이다. 또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는 진단이 불가능하다"며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거짓말과 행동을 일삼은 점에서 성격적 문제가 있어보이지만, 그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병적 행동이라기 보다는 단순 거짓말, 교묘한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말했다. 

겉모습과 피상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세태에 따른 사회병리현상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분석도 나왔다. 

노대영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손씨의 행동을 보면 '다재다능하고 능력이 많은 나'를 과시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자존감 결여를 외적성취로 채우기 위해 가짜로 얻은 수상경력을 SNS에 자랑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성취감을 느끼면서 점점 과감해진 것 같다"며 "거짓으로 쌓은 성취인만큼 현실세계에서는 어려움을 겪거나 현실 적응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이번 사건은 SNS와 인터넷상에서 만연한 보여주기식 소통, 가볍고 피상적인 관계, 그리고 단편적인 평가 등 겉모습이나 타이틀에 열광하는 사회분위기와 과시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이 맞물려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며 "분명 개인의 문제가 클테지만, 내실보다 타이틀에 열광하고 허술한 검증-평가시스템을 용인해온 사회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소통' 강화로 또 다른 손씨 사태가 만연해질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노 교수는 "온라인 소통이 중심인 비대면 사회가 될수록 비슷한 문제는 늘 수밖에 없다. 힘들게 쌓은 실력보다 단순히 '보여지는 것'에 점수를 더 주는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가 너무나 피상적인 가치만을 중시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하겠고, 진짜 능력과 내실을 제대로 검증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