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고’로 변질된 영재고, 국민 혈세로 가르쳐야 하나

최은희 / 기사승인 : 2021-01-21 17: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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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대 진학고'로 변질된 영재학교를 바로잡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쿠키뉴스] 최은희 인턴기자 =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재학교가 설립 취지에 무색하게 높은 의대 진학률을 보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시행된 블라인드 입시가 이를 방지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대 진학고’로 변질한 영재학교를 바로잡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영재고 출신의 의대생이 출연하면서 불거진 논란의 여파로 해석된다.

청원인은 “올해 블라인드 입시가 시행됐지만 많은 영재학교 학생들이 의대에 합격했다. 영재고가 입시실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의대 진학률 은폐를 위한 것”이라며 “생활기록부의 질적 차이로 인해 대학 입사관들은 영재학교 생기부를 보면 바로 알아차린다”고 적었다. 이어 “영재학교는 의대 희망자의 좋은 발판일 뿐”이라며 “120명 정원 중 40여 명이 의대 가는 학교에 세금을 계속 지원할 건지 묻고 싶다”라고 규탄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이공계 및 과학 분야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재 영재학교 8개교, 과학고 20개교 등 총 28교에는 7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문제는 졸업생들의 의대 진학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영재학교의 전체 7% 내외, 과학고의 전체 2% 내외가 의·약학 계열 대학에 진학했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학교지만, 국내 과학 기술 분야 인재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영재학교가 이토록 높은 의대 진학률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일반고와 달리 세금으로 운용되는 각종 고급 프로그램과 관련 제도들로 '특급 생기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재고와 과학고에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학교별로 수십억 많게는 100억 이상의 예산이 지원된다. 장학금, 우수 교원 배치, 각종 고급 실험 연구 등을 위함이다. 

영재학교를 발판삼아 자녀를 의대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의 사교육 경쟁이 심화 됐다. 영재고와 과학고의 최근 3년간 입학경쟁률은 14:1을 웃돈다. 본교 입학을 위해 쉼 없이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일상도 당연해졌다.

교육부는 영재고의 의대 진학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블라인드 평가'를 내놓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학생부 내 학교명 등을 가리는 블라인드 평가는 영재학교가 입시에서 갖는 ‘후광 효과’를 없애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블라인드 입시가 되려 영재학교 학생에 유리한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생활기록부 및 학교 정원수로 영재학교 출신을 구별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블라인드 평가 이전에는 일반고 등 학생별 교육환경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제도 도입 이후 선발 기준 초점이 충실한 교육과정 이수에만 맞춰져 영재학교 출신이 역으로 혜택을 보게 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블라인드 입시 외 교육계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서울과학고를 비롯한 영재학교는 2020학년도 신입생 입학 요강에 의학 계열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본교 지원이 부적합하다고 명시했다. 의학 계열에 지원할 시 3년간 지원받은 교육비를 전액 환수한다고도 밝혔다. 그 외 의대 진학 시 졸업 자격 박탈, 예산지원 환수, 교내 시상실적 및 추천서 취소 등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의학 계열 진학을 근본적으로 막을 순 없었다. 

전문가들은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재 양성 계획에 차질 없이, 세금이 개인의 이익·편법에 따라 낭비되지 않도록 관련 절차 및 제재 방안을 보완하자는 취지다. 

앞서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좋은교사운동·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국회 정론관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 설립 취지에 맞는 입시와 체제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 의원과 교육연대단체는 학교 설립 목적에 반하는  시도를 차단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hoeun231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