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누구와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

민수미 / 기사승인 : 2020-11-20 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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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

▲사진=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스틸컷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1995년에 개봉한 네덜란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안토니아’와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계 가족 이야기를 그립니다. 얼핏 가족사에 치중한 내용 같지만, 영화는 더 많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하고 있습니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미래지향적 페미니즘 등 당대 거론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용기 있게 전달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현재의 시각에서 봐도 놀라운 상황과 대사들이 영화에 나온다는 겁니다. 어느 날 홀로 딸을 키우는 안토니아에게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는 ‘바스’가 찾아와 청혼합니다.

“당신이랑 나, 결혼하면 어떨까요. 당신은 과부고 나는 부인이 없어요. 당신은 아름다운 여자예요. 내 아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해요”

“난 당신의 아들이 필요 없어요”

“그럼 남편도 필요 없어요?”

“왜 필요하죠?”

안토니아의 딸 다니엘 역시 기존의 가치관을 깨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엄마, 저 아기 가질래요”

“결혼을 하는 건 어떠니?”

“남편은 필요 없어요”

안토니아와 다니엘 그리고 다니엘의 딸 테레사는 임신과 출산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흔히 말하는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시대가 정한 기존 질서에 맞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이자,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돌연변이기도 합니다.

▲사진=방송인 사유리 SNS
방송인 사유리(41·후지타 사유리)씨가 던진 ‘비혼 출산’ 화두로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찬반 의견서부터 합법·불법 그리고 제도와 개선에 대한 논의까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논쟁을 벌이다니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 말이죠.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특히 온라인상에서 쟁점이 된 건 이겁니다. 사유리씨의 출산이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랄 테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는 고스란히 아이의 몫이 될 것이란 견해입니다. 한마디로 어머니의 ‘이기적인 선택’이 낳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죠.

생각해봅니다. ‘나는 내 가정을 선택해 세상에 태어났는가’ 아닙니다. 누구도 자의로 출생할 수 없고, 가족의 조건 또한 선정할 수 없습니다. 만인에게 평등한 전제가 사유리씨의 아이라고 해서 다를 리는 없습니다. 반대로 말해, 모든 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선택에 의해 태어납니다. 누군가의 선택만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부모가족은 비정상적인 형태의 가정인가’ 이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부모 한쪽의 사망, 이혼, 별거, 유기 혹은 미혼모, 미혼부 등의 이유로 혼자서 자녀를 키우며 부모 역할을 담당하는 한 부모와 자녀를 한부모가족이라 부릅니다. 가족의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다른 것은 그저 다른 것일 뿐, 옳고 그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한부모가족 아이는 무조건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자라는가’ 역시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면은 있겠지만, 여기에 속한 모든 이를 불행하다고 치부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모두 행복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모가 있다고 해서 바르고 훌륭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아이는 어디에서 태어나는 것인가’ 그 모체는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사유리씨가 아니라, 기존 가부장적 풍토와 질서를 토대로 한 우리의 관념은 아닐까요. 가족 구성에 있어 남성은 불가결한 존재이며, 여성이 독립적으로 만든 대안적 삶은 용납할 수 없는 편견 말입니다. 권위주의적 사회와 이로 인한 비합리성 속에서 살았던 이들에게 자아실현, 욕구표현을 하는 여성의 선택이 모난 돌처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유리씨는 아이가 느낄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태권도를 배우고 운동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태권도를 한다고 해서 그가 아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같이 태권도를 하는 엄마는 될 수 있죠. 중요한 건 누군가에겐 여전히 불편할 이 이야기들을 꾸준히 그리고 발전적으로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누구와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