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누구나 처음부터 ‘기레기’는 아니었다

/ 기사승인 : 2020-11-16 08: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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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상품으로서의 기사에 대한 책임감 지녀야”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이현주 연세춘추 기자 = ‘기자정신’의 반댓말은 ‘맨정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레기’라는 오명에 이어 ‘기더기’*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언론은 어째서 불신의 아이콘으로 전락한 것일까? 글 좀 쓴다는 소리를 듣던 기자들은 어째서 ‘기레기’로 불리며 양산형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침을 뱉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조롱이 아닌 비판을 통해 언론계의 근본적 구조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때이다.

기자가 누구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대중의 눈과 귀가 되어 사회 변혁을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 언론은 더 이상 정보의 단일 공급자가 아니다. 국민의 사회·정치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자를 선구적 지식인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졌다. 온라인·모바일 시대에 독자들은 다양한 매체를 저울질하며 읽을거리를 선택하고, 각자의 기준에 의해 기사를 비교 분석한다. 

독자의 권한이 늘어난 데 비해, 기자의 권한은 대폭 축소됐다. 오늘날 기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온연히 글로 쓸 수 없다. 자본이 기사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기자들은 광고주의 압력에 의해, 또는 조회 수에 따른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틀이 정해진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화된 기자들은 정의를 위해 힘쓰는 대신 ‘적당한’ 기사를 찾아 쓰고, 베끼고, 부풀린다. 사명감과 신념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부 기자들은 사명감, 인사이트, 임팩트 삼박자가 두루 결여된 기사를 쓰면서도 ‘언론인’으로서의 권리를 바란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징벌적 손해 배상제**의 도입을 반대한다. 정형화된 ‘직업인’처럼 행동하면서 필요에 따라 ‘언론인’이 되는 모순이 아이러니하다. 두 속성은 양립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언론은 ‘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필자는 그러한 맥락에서 언론계에 징벌적 손해 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언론의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고 ‘기레기’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의무가 따라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상품 서비스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을 치는 가짜뉴스나 악의성 기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실속 있는 기사를 가려내야 한다. ‘기자’라는 감투 뒤에 숨어 매너리즘에 빠진 기자는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순리다.

오늘날의 ‘기자정신’은 누구보다 빠르게 발로 뛰어 속보를 내는 것도 아니고, 선민의식을 앞세워 투쟁에 뛰어드는 것도 아니다. 기자는 완전경쟁 시장의 수요에 맞춰 기사를 공급하는 ‘직업인’이다. 따라서 자신의 기사에 대한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지니는 것이 진정한 기자정신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상품성’ 있는 기사란 무엇인가? 최소한의 품질이 보증된 기사다. ‘일단 써보고, 아니면 말지’식의 허위 뉴스나, 주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쓰는 기사는 품질 테스트에서 탈락이다. 차별성 없이 타 매체의 보도 내용을 붙여넣은 기사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자극적 제목으로 포장된 낚시성 기사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상품으로서의 기사에 대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디자인만 보고 산 소비자가 내용물을 확인하고 AS를 요구하지 않도록 말이다. 

품질성 보증 후에는 자신의 상품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만들지의 문제다. 이제 세상은 완전경쟁 시장이다. 언론계가 당면한 환경도 마찬가지다. 왜 소비자가 수많은 상품 중에 자신의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경쟁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관점이 있는 뉴스’, ‘시사 바로 쓰기’와 같은 기사는 상품성이 높다. 필자는 학보사 기자로서 청년층의 수요를 충족하는 기사를 쓰거나,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기사를 쓴다. 또 누군가는 독창적 인사이트로, 누군가는 정파성에 치우치지 않는 곧은 신념으로 자신의 상품을 어필할 수 있다.

기사가 상품이 된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전히 ‘기사다운 기사’를 쓰는 것이다. 바야흐로 언론 위기의 시대다. 국내 언론계가 시대 흐름에 따른 변혁을 받아들이고 신뢰받는 저널리즘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기더기: ‘기자’와 ‘구더기’의 합성어로, 기자를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징벌적 손해 배상제: 기업 등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그 행위로 인해 생긴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언론계의 경우, 악의성 보도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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