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 30 전세 찾아 삼만리...영화 ‘기생충’ 현실로

안세진 / 기사승인 : 2020-11-13 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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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전세 구하는 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최근 전세를 구한 한 친구의 말이다. 이 친구가 한 달 넘도록 전세 찾기에 심혈을 기울인 걸로 안다. 오죽하면 기자인 내게 연락해서 도움 좀 받을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연락을 했어도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가 있었을까. 친구 입장에선 적어도 부동산 출입 기자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었던 심정이었을 거다. 혹은 전세시장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분풀이였을지도.

그렇다. 지금은 ‘전세대란’의 시대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단 한 가지로 귀결되진 않겠지만, 현 사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지난 7월말 시행된 정부의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요구권)일 것이다. 단순 통계지만 지난 7월 1만3190건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는 10월 6292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단독·다가구주택와 다세대·연립주택 거래건수도 마찬가지다. 각각 지난 7월과 10월 4903건에서 3804건, 6999건에서 4465건으로 줄었다.

매물이 줄자 남아있던, 혹은 새로 나오는 전세매물들의 가격은 높아졌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기준 전국 공동주택·다세대연립·단독다가구 전세가격은 0.47% 올랐다. 거기라도 들어가야 했을까.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전세대출 규모가 지난 2016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진행되는 주거 지원 정책은 어떠할까. 청년들을 위한 대표 주거 지원 정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임대주택과 서울시 SH공사의 청년주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들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있다. LH전세임대는 일반 전세보다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세임대의 복잡한 절차와 요건 등을 이유로 집주인들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SH공사의 청년주택에서도 저렴한 값의 공공임대를 찾기란 어렵다. 공공임대와 민간임대 중 민간임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보니 인기지역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9월 역세권청년주택 입주자 모집 최고 경쟁률은 140대1이었다. 민간임대의 경우 시세에 웃도는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 

이제 남은 건 불법건축물이다. ‘증축’ ‘방 쪼개기’ 등은 원룸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불법주택의 모습이다. 불법 건축물인 만큼 당연히 대출은 불가하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건 아니다. 수요가 늘 있으니까. 환경도 열악하고 값도 비싼 불법건축물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청년들이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 대출 가능한 전세매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에 당첨되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들의 주거 선택권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극중 폭우가 쏟아지는 날 기택 가족이 고지대에 위치한 동익네 저택에서 쫓기듯 도망쳐 나와 자하문터널과 무수한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집값을 잡기위한 정부의 노력을 그 누구보다 응원하고 있고 잘 알겠다. 다만 오늘도 청년들은 몸 뉘일 곳을 찾아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