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와 거점약국

한성주 / 기사승인 : 2020-07-30 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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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에스컬레이터와 거점약국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서울역 서부에는 실외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약 10m 길이의 계단 옆에 설치됐는데, 10일 중 9일은 ‘점검중’ 팻말을 걸고 멈춰있다. 걸어 올라야 할 계단을 올려다보면 벌써 다리 근육이 저리고 한숨만 나온다. 멀리서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기대했다가, 계단 앞에 도착해서야 이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이 상당하다.

에스컬레이터 운행 여부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밤샘 근무 후 퇴근하는 직장인,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 다리가 불편한 환자나 노인, 쉽게 숨이 차는 임부에게는 더욱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지하철역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에스컬레이터 신속점검·안전운행을 약속한다. 시민들도 고장 난 공공기물은 당연히 수일 내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작 10m짜리 계단도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에스컬레이터가 점검 중일 때,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 45만m라면 어떨까. 계단 이용료도 몇만원 내야하고, 올라가려면 날 잡고 단단히 채비해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가 언제쯤 다시 운행될지도 알 수 없다.

지난 6개월간 중증 뇌전증 환자들은 치료제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 중구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이하 희귀센터)를 방문해야 했다. 제주도에 사는 환자들도 예외 없이 김포공항까지 비행기로 45만m를 날아왔다. 불가피한 경우 희귀센터 직원들이 직접 환자의 거주지로 약을 들고 찾아갔다.

당초 환자들은 각 지역마다 시범 운영된 희귀의약품 거점약국에서 치료제를 수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희귀센터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거점약국은 사라졌다. 

다행히 거점약국은 재등장할 예정이다. 식약처가 희귀필수 의약품 구매비 명목의 예산을 추가 확보하면서다. 그러나 운영이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거점약국 사업비가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한, 10일 중 9일은 멈춰서는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불편함의 위계를 따질 수는 없다.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는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 희귀질환 환자 수가 적다고, 그들이 겪는 불편함까지 작은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하루에 수천명이 이용하는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와 1년에 수십명이 이용하는 거점약국 모두 신속점검·안전운행이 필요하다.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