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그러실 분 아니다” 4년간 묵살된 피해자의 호소

이소연 / 기사승인 : 2020-07-13 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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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3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권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었다.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성희롱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이 처음 공개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3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권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고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피해자의 변호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도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건 경위에 대해 “고 박 시장의 위력에 의한 비서 성추행 사건은 4년 동안 지속됐다”며 “피해자는 오랜 고민 끝에 지난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고 설명했다. 고소장에는 성폭력특례법(통신매체이용음란, 업무상위력추행) 위반과 형법상의 강제추행 등이 적시됐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비서직을 수행하는 4년의 기간 동안 및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이후에도 고 박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 고 박 시장은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피해자에게 ‘셀카’ 촬영을 제안한 후 신체를 밀착했다. 피해자 무릎의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상처에 입술을 맞췄다. 집무실 내부에 마련된 ‘침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적 접촉을 했다. 또한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피해자를 초대해 음란한 문자를 보내고 속옷 입은 사진 등을 전송한 일도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13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권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증거도 있다. 지난 2월6일 당시 박 시장이 텔레그램 비밀 대화에 피해자를 초대한 사실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김 변호사는 “이는 부서 변경 후 이뤄진 연락”이라며 “비서 업무를 하지 않는 피해자에게 야심한 시각에 텔레그램 비밀 대화를 걸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피해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와 친한 친구, 동료 공무원, 비서관 등에게 고 박 시장의 성적 괴롭힘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한 사실도 있다. 고 박 시장이 보내온 사진을 함께 확인한 지인도 있다.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내부에서는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여라”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일도 비서의 업무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가 시장 비서직을 맡게 된 경위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피해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돼 서울시청이 아닌 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서울시청의 요청에 의해 시장실 면접을 보게 됐다. 이후 비서실 근무를 통보받아 근무를 시작했다. 피해자가 시장비서직에 직접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기자회견에서는 피해자의 글이 대독 됐다. 피해자는 “처음 그때 소리를 질러야 했고 울부짖어야 했고 신고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며 “거대한 권력 앞에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용서하고 싶었다.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한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존엄을 내려놓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50만명이 넘는 국민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숨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50만명 이상이 고 박 시장의 장례 절차에 반대 의사를 제기했음에도 그대로 이뤄진 것에 대한 비판으로 분석된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진행됐다 /연합뉴스 
여성단체는 해당 사건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은 “전형적인 직장 내 성추행 사건임에도 피고소인이 망인이 되어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고소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됐다”면서 “그럼에도 결코 진상규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 사건은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상황이 전달됐다”며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 전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목도했다. 누가 국가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는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하며 휴대폰 압수수색 등을 위해 절대적 보안 유지를 부탁했다”고 이야기했다.

최근 SNS에 유포되고 있는 ‘고소장’에 대해서는 “저희가 수사 기관에 제출한 문건이 아니다”라면서 “해당 문건에는 사실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도 들어 있다. 문건 유포자에 대한 적극적 수사와 처벌을 요청해달라는 내용으로 13일 또다른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오후 고 박 시장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고 박 시장의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일대에 대한 수색에 나섰다. 고 박 시장은 지난 10일 오전 0시1분 서울 성북구 북악산 성곽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시는 고 박 시장에 대한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진행했다.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