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한라산둘레길: 동백길

전혜선 / 기사승인 : 2020-07-11 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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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쉰두 번째

한라산둘레길은 현재 천아숲길, 돌오름길, 동백길, 수악길, 사려니숲길까지 5 코스, 56.9km가 운영되고 있지만 시작과 끝 지점에서 걷는 버스정류장, 주차장까지의 이동거리를 포함하면 실제 걷는 거리는 훨씬 길다.

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있을 때부터 사람들이 퇴직 후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묻곤 했다. 그때마다 놀겠다고 답했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적어도 다리에 걸을 힘이 있을 때까지는 즐겁고 행복하게 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일단 퇴직하면 곧 제주도에 가서 1년 여행하고, 그 후엔 전라남도 지방을 두루 다니며 한 군에서 석 달씩 지내며 구석구석 가볼 요량이었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버스정류장에서 이곳 동백길안내센터까지는 약 2km를 걸어야 한다.

제주 1년 여행을 마치고 보니 조금 속도를 늦추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어딜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적어도 여름 두 달, 겨울 두 달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하겠다. 무료하면 책 읽고, 먹 갈아 글씨도 쓰고 가끔은 서울 나들이도 좋겠다. 이번 7월과 8월은 집에서 그렇게 놀기로 했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의 탐방로를 통해서도 동백길로 걸어올 수 있다.

제주도로 훌쩍 떠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퇴직 후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도시의 삶이 무료해 직장을 구하려 사방팔방 다닌들 어디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동백길 걷기는 통상 무오법정사 입구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1919년 기미년 1 만세운동이 있기 5개월 전인 1918년 무오년 10월에 이곳의 법정사에서 항일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을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이라 하는데 이런 연유로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무오법정사라는 명칭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제주도 1년 여행은 흡족했다. 직장을 떠나고 서울을 벗어나서도 여전히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음을 알았다. 내년 상반기까지의 여행 계획도 구체화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함께 올레 전 코스를 완주하고, 숲길과 오름을 찾아 걸으며 튼튼한 다리를 얻었다.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제주 걷기였다. 제주를 떠나기 전 올레 수첩 한 권을 다시 샀다.

한라산둘레길을 안내하는 리본은 핑크색이다.

제주엔 올레 말고도 걷기 좋은 길이 많다. 짧게는 비자림처럼 웅장한 숲길이 있고, 한여름 첫발을 디딜 때 슬쩍 겁이 날 정도로 울창한 동백동산 숲길이 있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은 그 숲 일부를 다듬고 길을 내지 않았다면 누구도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없는 숲이다. 머체왓숲길은 자연 그대로의 야생적 숲길이나 그 속에서 문득 언제 적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나타나곤 한다. 사려니숲길은 잘 가꾸어진 커다란 정원 속의 길을 연상시킨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동백길 걷기가 시작된다.

오름은 또 어떤가. 용눈이오름이나 백약이오름은 미리 오름 전체 모양과 그 능선 위를 걷는 사람들까지 보여 누구나 편안하게 사방을 살피며 걷는다. 온통 숲으로 덮여 있는 물영아리오름은 올라보면 분화구의 습지는 신비하고 능선길은 아늑하다. 궷물오름에서 큰노꼬메오름까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숲길의 연속이다. 그 끝에서 오름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지만, 별안간 숲이 사라지고 곧 능선에 섰을 때 보이는 한라산의 장엄한 풍경이 그 모든 수고를 잊게 한다. 그 모든 오름과 그 모든 숲길이 하나같이 계절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동백길을 걷는 동안 이십여 번쯤 한라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걷는데 비가오지 않을 때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험준한 급류가 흐르기 때문에 비가오는 날은 한라산둘레길 대부분이 출입 통제된다.

제주에서 다양한 길들이 개발되면서 한라산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한라산둘레길은 제주도의 해발 600~800 지대를 걸으며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거칠지만 매력이 철철 넘치는 제주도 중산간 지대의 숲길이다. 그러나 한라산 둘레길 걷기는 아직 그리 쉽지 않다. 대중교통 수단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동백길을 걷는 동안 곳곳에서 아직 어린 동백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벌목한 곳에서 새로 싹이 나 자라고 있는 나무다.

현재까지 제주도 서쪽에서부터 남쪽을 돌아 동쪽까지 천아숲길, 돌오름길, 동백길, 수악길, 목장길 그리고 사려니숲길까지 6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이중 수악길과 사려니숲길을 잇는 목장길은 현재 풍력발전단지 건설공사로 폐쇄된 상태여서 실제로는 5개 코스만 개방되어 있다. 코스 전체의 거리는 66.9km, 폐쇄상태인 목장길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는 56.9km를 걸을 수 있다. 그러나 각 코스 시작점까지 가는 거리와 끝 지점에서 다시 도로까지 나오는 거리를 계산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먼 거리를 걷는다.

소나무는 드물게 보이지만 대부분 우람한 고목이다. 많은 소나무가 벌목이나 자연도태 된 자리에 아직 어린 활엽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니다.

한라산둘레길 중 법정사 입구에서 서귀포의 유일한 한라산 등반 코스인 돈내코코스 입구까지 13.5km의 동백길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뿐 아니라 한라산의 다양한 모습을 간직한 길이다. 이 길을 걷기 위해 돈내코코스 입구 아래의 충혼묘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법정사 입구의 동백길 시작점까지는 서귀포 택시를 호출해 이동했다. 제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법정사 정류소에서 내리면 동백길 시작점까지는 약 2.2km를 걸어가야 하고 끝 지점에서 충혼묘지 버스정류소까지 다시 2 km를 걸어야 하므로 총 거리는 17.5km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군사용 병참도로인 하치마키도로 흔적이다. 곳곳에서 바위를 깨기 위해 굴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한라산둘레길은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어 길이 험하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눈에 잘 띄는 핑크색 리본이 촘촘하게 매달려 있고, 길이 애매하거나 위험한 곳에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나일론 끈이 설치되어 있다. 500m 마다 국가지점번호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어 필요시 긴급구조요청 등을 할 수 있다.

수십 년 전에 사용하던 숯가마 흔적이지만 돌 사이로 자라난 나무로 인해 세월이 지나면서 그 모습을 잃게 될 듯하다.

동백길 걷기는 무오법정사 입구의 한라산둘레길 동백길안내센터에서 시작한다. 법정사는 없어진 절이다. 1919년 기미년에 3.1만세운동이 있기 5개월 전, 1918년 무오년 10월 이곳에 있던 법정사 스님들을 중심으로 주민 700여명이 합세한 항일운동이 있었다. 이 항일운동과 관련되어 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렀고, 법정사는 불태워졌다. 

간혹 길이 희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리본과 길을 안내하는 나일론 끈이 이어져 있어 숲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지금은 인근에 무오법정사항일운동기념탑과 당시 항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의열사가 세워져 있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법정사가 아니라 무오법정사라 말한다. 그러나 동백길은 법정사 폐사지 앞으로 지나지 않는데, 동백길에서 법정사 폐사지까지 다녀오는 길이 부담되기 때문인지 대부분은 그대로 지나간다.

동백길에서 만난 3 유적은 1950년 초 한라산 중산간지대로 숨어든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창설된 전투경찰대의 토벌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와 경찰이 오히려 많은 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비극적 사건의 가해자 흔적이다.

동백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걷다보면 스무 번 가까이 한라산 상류의 하천을 건넌다. 하천은 대부분 바위가 드러나 있고 어떤 곳에서는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암반을 볼 수도 있다. 물은 거의 흐르지 않지만 깊어 보이는 암반 웅덩이엔 많은 물이 고여 있다. 평소엔 말라 있는 하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험한 급류가 몰아치기 때문에 비 소식만 들리면 동백길을 포함해 거의 모든 한라산둘레길의 출입이 통제된다.

만화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수령 70년이 넘어 보이는 삼나무들이 뚝뚝 꺾여나간 모습이 보인다. 바람이 드센 제주에서 상대적으로 목질이 약한 삼나무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할 듯하다.

동백길의 가장 멋진 구경거리는 나무다. 특히 아직 어린 동백나무가 곳곳에서 빽빽하게 자라는데 나무 벌채 후에 자리잡은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활엽 고목들은 대부분 뿌리가 큰 바위를 끌어안고 자라고 있어 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간혹 보이는 우람한 소나무는 곧게 하늘 높이 솟아 있어 이리저리 휘며 자란 나무들 사이에서 경이롭게 보인다. 아마도 많은 소나무들이 점차 활엽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몇 그루만이 남아 여전히 이 숲을 호령하고 있는 듯하다.

한라산둘레길에는 500m 간격으로 국가지점번호 표지가 설치되어 있고 동시에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유사시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2인 이상이 함께 걷기를 권하고 있다.

동백길을 걷기 시작해 약 4.5 km쯤 가면 하치마키도로라는 생소한 이름의 길을 설명하는 표지를 만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군사용 도로라고 한다. 바위를 깨어 평탄한 길을 만들었는데 곳곳에 바위에 구멍을 뚫은 흔적이 남아 있다. 

동백길 끝에서 한라산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돈내코탐방로를 만나는데 핑크리본만 바라보며 걸으면 다음길인 수악길로 접어들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돈내코탐방로 안내소를 향해 내려오면 눈앞에 서귀포시와 그 너머의 바다가 넓게 펼쳐지며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걷어간다.

동백길에는 여전히 표고버섯재배장이 있고 오래 전 사용했던 숯가마터와 이러한 생업 현장을 드나들던 길이 남아 있다. 겨울철에도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은 한라산 중산간지대에서는 자연과 유사한 조건에서 지금도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다. 오래 전 버섯을 재배하고 숯을 굽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 자리마다 동백나무와 다른 여러 활엽수들이 싹을 틔워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6월 하순의 동백길에는 아직 노루발풀 꽃이 피어 있었다.

동백길에서 만나는 4.3 주둔소는 안내표지판이 없다면 그냥 널려 있는 돌무더기로 보일 수도 있을 만큼 많이 무너져 있다. 제주 4.3 사건이 진행되던 시기인 1950년 초에 창설되어 무장대 토벌에 투입된 전투경찰사령부 산하 토벌대의 주둔지로 추정하고 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과 경찰이 수많은 제주도민을 무차별 학살하던 비극적 사건의 가해자들이 남긴 흔적이다.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그 비극이 불과 30년 후에 광주에서 되풀이 되었다.

하트모양의 잎이 특징적인 개족도리풀은 섬족도리풀이라고도 한다.

숲속에서 하늘을 거의 잊고 걷다가 숲이 열리며 곳곳에 부러진 삼나무 고목들은 만났다. 베어낸 밑둥의 나이테를 세어보니 70년이 훌쩍 넘는다. 하늘 높이 곧게만 자라 오른 삼나무들이 제주의 강한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듯했다. 제주에서 상대적으로 목질이 강하지 못한 삼나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파란 하늘 속에 묻혔다. 그러나 곧 길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고 하늘도 사라졌다. 

옥잠난초의 꽃이 지고 꽃대만 남아 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오직 내자리만 지키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데 이들 숲을 벗어나 만난 활엽수 숲은 훨씬 편안한 모습이다. 어린 나무들이 촘촘하게 자라면서도 이리 양보하고 저리 양보해 나무는 조금씩 이리저리로 구부러지긴 했지만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잘 어울려 보기에 좋고 듣기에 즐겁다.

작고 흰 꽃이 특징인 은대난초 꽃이 지고 씨방이 크고 있다.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 길을 걷느라 발바닥과 발목은 물론 무릎까지 피곤함을 느낄 때쯤 동백길은 한라산의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돈내코코스를 만난다. 이곳에서 돈내코 안내소로 향하는 길을 찾아 걷지 않고 핑크색 안내리본만 보고 걸어가면 한라산둘레길의 동백길에서 이어지는 수악길로 접어드니 주의 깊게 길 안내 표지를 읽어야 한다. 

돈내코탐방안내소를 지나 주차장을 향해 걷다보니 수국이 한창이었다. 제주의 7월은 수국과 산수국의 계절이다.

돈내코 탐방안내소를 향해 내려오다 숲을 벗어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서귀포시 전경과 그 너머의 바다 풍경은 쌓인 모든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 보낸다. 다시 힘을 내 주차장까지 2km를 더 걸었다. 동백길에서 총 15.5km를 걸었는데 휴대전화는 19km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