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함께 꽃 핀 이정은의 눈부신 2019년

이준범 / 기사승인 : 2019-12-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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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 중 이정은만큼 특별한 2019년을 보낸 배우가 있을까. 이정은의 올해 행보는 바쁘고 드라마틱했다. 2월 첫 방송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김혜자(김혜자)의 엄마로 출연하며 시청률 역주행에 성공했고, 5월엔 ‘눈이 부시게’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조연상을 수상했다. 5월에는 지난해 촬영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제 72회 칸 영화제를 방문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이후 국내 개봉한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모았다. 8월에는 OCN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고시원 주인 역을 맡아 연기 호평을 끌어냈고, 10월부터는 KBS2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공효진)의 엄마 역으로 출연하며 마지막회 23.8%(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 기록을 세우는 데 함께했다. 그리고 ‘동백꽃 필 무렵’ 마지막회가 방송되던 지난달 22일 제40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인터뷰마다 이정은에게 2019년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반복되는 게 당연하다.

올해 가장 성공한 드라마와 영화에는 모두 이정은이 있었다. 우연이 아니다. 이정은은 ‘눈이 부시게’를 연출한 김석윤 감독과 대본을 쓴 이남규, 김수진 작가의 전작 JTBC ‘송곳’에 야채청과 직원 김정미 역으로 출연했다. ‘기생충’ 각본을 쓰고 연출한 봉준호 감독과는 영화 ‘마더’, ‘옥자’에서 함께 작업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와는 전작 KBS2 ‘쌈, 마이웨이’에서 만났다. 차기작인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양희승 작가와는 tvN ‘고교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 ‘아는 와이프’에 이어 네 번째 인연이다. 이정은은 이미 방송가와 영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제작진의 작품에 출연해왔고, 차기작에서도 그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비중이 커졌다. 동시대 감독과 작가들이 이정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좋은 작품에 출연한 게 전부가 아니다. 이정은은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 왔다. ‘기생충’에서 비오는 밤 초인종을 누르고 온 몸으로 지하실 문을 장면이나,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를 위해 “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간다”는 대사 톤을 상황에 따라 바꾸는 장면, ‘눈이 부시게’에서 늙어버린 딸 김혜자를 바라보는 눈빛 등 작품을 본 대중들이 잊을 수 없는 순간들엔 이정은이 있었다. 이정도면 이정은이 만들어낸 장면들 덕분에 작품이 더 잘 살아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정은은 지난달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저한테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늦게 비춰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전 이만한 얼굴이나 이만한 몸매가 될 때까지 시간이 분명 필요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5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 중에는 “이렇게 뒤늦게 잘 됐다고 하는데, 제 생각보다는 빨리 잘 됐어요. 전 60세가 넘어서 잘 될 줄 알았거든요”라고 말했다. 겸손보다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2019년이 되기까지 쌓아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시간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정은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2019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는 찬사가 쏟아져도 2020년과 2021년의 이정은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