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화가 김현정 내면아이 '랄라' 그림 아트링크서 첫 개인전

/ 기사승인 : 2014-06-22 16: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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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데뷔해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를 괴롭히는 장 캡틴 역으로 인기를 모은 배우 김현정(35). 다수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 등에 출연했던 그는 데뷔 10년 만인 2009년 배우 활동을 접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에 5년 정도 출연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을 때였다. 연기 대신 1년 넘게 심리상담을 받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연기 연습을 하는데 주변에서 ‘너는 왜 화를 못 내느냐’고 하더군요. 화를 내야 되는 장면인데 짜증만 낸다고요. 평소에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거죠. 그 뒤로 억눌린 제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상담을 하다 어릴 때 인형을 가지고 논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항상 동생에서 양보하라는 얘기를 듣다보니 자존심 때문에 ‘나는 인형을 싫어하니까 동생 줄게’라며 양보한 것이죠.”

인형치료법도 병행하던 그는 토끼를 닮은 자신의 내면아이 ‘랄라’를 만났다. 어렸을 때 꿈이 화가일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었던 김현정은 심리 치유를 토대로 내면아이 ‘랄라’를 소재로 한 동양화를 선보이고 있다. 연기활동 중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었다. 미술사, 미술이론, 미술품 감정 등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2009년 ‘랄라’를 만난 후 동양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5년간 작업한 그림으로 23일부터 7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트링크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전시 타이틀은 ‘묘사와 연기’로 회화의 본질을 추구하되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를 앞두고 지난 20일 만난 그는 “심리상담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의 성찰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연예활동을 할 때는 다소 소극적이고 앞날도 막막했는데 지금은 나를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를 열면 하정우 조영남 등 ‘연예인 화가 전성시대’에 편승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까봐 심혈을 기울여 붓질하고 또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위안부 연극 당시의 의상을 입은 소녀를 그린 ‘랄라와 소녀상’, 얼룩말과 랄라가 소통하는 모습을 담은 ‘대화’, 아이와 랄라가 함께 놀고 있는 ‘관심’, 사다리에 올라 탄 랄라가 십자가를 쳐다보는 ‘바케트 십자가’ 등 20여 점을 선보인다. 마음속 내면아이를 보듬고 보살피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미술과 심리학이 접목된 그의 작품은 독특한 화법(畵法)으로도 눈길을 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비단을 붙여 수묵이 배어나오게 한 뒤 비단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고안했다. 비단 그림에 자수 기법을 활용하는 ‘화주수보(畵主繡補)’, 비단 배접지에도 그림을 그려 그림을 완성하는 ‘쌍층(雙層)’, 사의화를 공필화로 구현한 ‘출사입공(出寫入工)’ 등을 창안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왜 굳이 동양화를 택했을까.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연극을 할 때도 번역극과 창작극은 느낌이 다르잖아요. 번역극의 대사는 왠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동양화가 꼭 창작극 같은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동양화가 예뻤어요. 전통 계승이 제대로 안 되고 끊기면서 전통이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제게는 도리어 신선했고 도전할 만하다고 느껴졌어요.”

중국 베이징대학 예술학과 펑펑 주임교수는 그의 그림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김현정의 작품에서 그녀의 이중의 자아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아를 묘사하기 위한 타자(랄라)이고, 하나는 자아가 연기한 역할(잠자리)이다. 김현정의 그림은 전통,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는 신(新) 스타일의 도래를 예고한다.” ‘배우화가’라는 꼬리를 떼고 ‘작가’로 거듭나려는 그의 도전이 아름답다(02-738-073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