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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BIFF 리뷰] ‘말도둑들. 시간의 길’ 비극을 대하는 낯선 태도

‘말도둑들. 시간의 길’ 비극을 대하는 낯선 태도

이준범 기자입력 : 2019.10.06 14:37:08 | 수정 : 2019.10.06 14:42:04


말을 도둑맞는다. 아버지가 살해당한다. 어느 날 한 아이의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이다. 이 사건은 평온했던 어느 가족을 뒤흔든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인가. 카자흐스탄의 대자연은 이들을 무심하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감독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리사 타케바)은 아이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잠에서 깨어나서 시작한다. 수십 마리의 말을 장터에 팔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아버지에게 자신도 데려가면 안 되냐고 묻는 아이의 눈엔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말을 도둑맞고 죽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말없이 떠났던 한 남자가 8년 만에 마을에 나타나며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대사보단 영상으로 말을 건네는 영화다. 2013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아지즈 잠바키예프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이야기의 맥락을 짚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정된 카메라 구도를 빠져나가는 아이의 움직임과 극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카자흐스탄의 산과 대지,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고양이와 시계 등 카메라는 잔잔한 영화의 공백을 빈틈없이 메운다. 이야기에 몰입할 만하면 한걸음 뒤로 빠져서 관조하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영화의 주제를 대변한다.


성향이 다른 카자흐스탄과 일본의 감독이 공동 감독을 맡은 것처럼, 잘 연결되지 않는 두 가지 제목이 마침표로 구분된 것처럼,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생명의 죽음과 탄생이란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다룬다. 아버지의 죽음과 새 아버지의 등장, 사라진 시계와 새로 나타난 새끼 고양이 등 영화는 매일 반복되는 일출과 일몰처럼 이 사건들이 자연의 조화 그 일부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크게 실망할 일도,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닌 일을 마주하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자라는 그의 키처럼, 내면도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추측할 뿐이다.

이미 많은 영화에서 봤던 주제와 이야기다. 그럼에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건과 인물이 아닌 시선과 배경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겨도 큰 소리 내지 않는 카자흐스탄의 정서와 이들을 감싸고 있는 경이로운 대자연이 영화의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느끼는 이상한 고요함을 객석에서 일어서면서 느낄 수 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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